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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희


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백여 년 전, 그곳의 한 카페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왕자비로 내정되었다가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어 꿈이 좌절되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납치가 아니라 사랑의 도피였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마리아노플 시민이라면 카페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보면 모르는 체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 온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간 소녀는 귀걸이를 꺼내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슬쩍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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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나라면 그런 짓은 절대 안 할 텐데."

-흠칫.

딴에는 조심스러웠을 그 일련의 행동들을 내내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던 것일까. 소녀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가장하려 애쓰며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따가운 햇살을 등지고 선 누군가의 검은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처음에는 단지 햇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라 생각했지만, 곧 그 누군가가 온통 새카만 옷으로 온 몸을 칭칭 동여맨 낯선 사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얼 말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스스로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는 것에 약간의 뿌듯함과, 그와 동시에 스스로가 이렇게나 거짓말을 잘 하는 인간이었나 싶은 생각에서 오는 약간의 자괴감이 교차한다.

되려 당당한 듯해 보이는 그 모습에 사내는 당황이라도 했는지,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약간의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초면에 무슨 오해를 하신건지는 모르겠지만, 바쁜 일이 있으니 길을 비켜주세요."

비록 시골서 온 소녀라 하더라도 스스로의 행동을 감추고 일말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던 것이리라. 할 수 있는 모든 용기를 다 해 도도한 숙녀의 표정을 연기한 채, 그렇게 그녀는 현장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하는 듯 보였다.

사내는 자신이 말을 붙였던 소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의외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우두커니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정말 처음 건넸던 말이 그의 것이 맞는 것이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웠기에, 심지어 소녀도 그가 시야에서 사라져갈 무렵 한 번쯤 뒤를 돌아보기까지 했다.

구름은 흐르고 흘러 따스한 햇살이 살짝 구름에 가리워질 때 이윽고 사내의 입이 열렸다.

"설마 너였을 줄이야."

사내는 칠흑 같은 망토를 살짝 뒤로 젖히고 뒤춤에서 낡은 목함을 꺼내어 들었다. 무심한 눈빛에 잠시 의혹의 빛이 서리는가 싶더니, 한 손만으로 능숙하게 목함을 반 즈음 열어 그 속을 흘끔 보고는 다시 순식간에 목함을 닫아 품속에 갈무리했다.

틀림없었다. 그 자신의 눈은 못 믿을지언정, 존재의 유무조차 판별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눈을 달고 다니지는 않았다.

목함 속의 빈자리에 꼭 들어맞았을 사파이어 귀걸이는 분명 온데간데없고, 그 소녀가 가져간 귀걸이는 결단코 자신이 뿌려둔 '미끼'가 아니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자신이 당혹스럽고 자괴감이 드는 것은 그간 그의 노력과 수고가 한 순간에 허사였음을 깨닫게 된 탓이다.

"여태 허공에 낚싯줄을 드리웠단 말이지. 이 내가. 하하하하..."

이미 얼굴을 기억한 작은 소녀 하나를 찾아내는 일은 이 유능한 낚시꾼에게는 너무도 쉬운 일이다. 물론 낚아낸 수확물을 처리하는 것 역시.

하지만 그에겐 100년을 기다려온 기회가 아니던가? 쉬운 결말은 이 사내에게도, 그리고 그녀에게도 아쉬움만을 남겨줄 것이다.

-두 번은 놓치지 않아.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과거를 악취미 가득한 소문으로 덮어두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도망쳤을 뿐인 그녀를 스스로의 못난 약혼자였던 양 위장한 것과, 심지어 그녀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를 보석들로 꾀어낸 것 까지도 모두가 이 순간을 위한 길고 긴 준비에 불과했다.

인고의 시간 끝에 날 선 확신 하나가 그를 인도하리라.

영원한 사랑의 길로...

  • 프랑지아 @키프로사 | 52레벨 | 지휘관 | 엘프
    사내를 묘사할 때 뭔가 멋진 미친놈처럼 써 보고 싶었는데, 쓰고 보니 그냥 스토커네요 ㅎㅎㅎ...

    전민희 작가님 팬이다 보니 이런 글 써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영광입니다. (제 아이디도 작가님 소설 등장인물과 나름 관련이 있는 아이디에요.)

    글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좋은 하루 되시길 :)
    2014-10-28 13:19
  • 고귀한방랑자 @에안나 | 29레벨 | 길잡이 | 누이안 프랑지아 @키프로사
    어쩐지 익숙하더라니...방랑자라는 뜻 맞죠?
    2014-10-28 19:35
  • 프랑지아 @키프로사 | 52레벨 | 지휘관 | 엘프 고귀한방랑자 @에안나
    넵 맞습니다. ㅎㅎ
    세월의돌에서 엘다렌의 별칭이 모나데 프랑지아 (가을의 방랑자) 였고, 10번째 달인 방랑자 아룬드를 상징하는 별이 에프랑지아였죠.
    2014-10-28 20:02
  • 나범 @진 | 55레벨 | 사제 | 페레
    좋은데요?
    2014-10-29 10:50
  • 닝양 @루키우스 | 55레벨 | 수호의 노래꾼 | 누이안
    뒤가 궁금해서...... +_+ 잘읽었어용!!!!
    2014-10-30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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