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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희 작가의 이야기

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백여 년 전, 그곳의 한 카페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왕자비로 내정되었다가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어 꿈이 좌절되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납치가 아니라 사랑의 도피였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마리아노플 시민이라면 카페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보면 모르는 체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 온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간 소녀는 귀걸이를 꺼내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슬쩍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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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이야기

"잠시만요 이야기좀 나눌게요"
소녀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나눠?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잔뜩 기쁜 얼굴을 한 암컷(?) 페레와 어깨에 이상한 것을 짊어진 하리하란 남성이 있었고 그 뒤로 몇몇 하리하란과 페레들이 있었다.

처음 말을 건넨 암컷 페레는 느닷없이 이상한 막대기를 들이밀며
"방금 주은 귀걸이, 도시 경비병에게 주인을 찾아달라고 가져가고 있던거 맞으시죠? 그렇죠?"

제발 그렇다고 말해달란듯이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물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소녀는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었다.
'으아 뭐야 이거'

그도 그럴것이 갑자기 이야기좀 나누자는 목소리 큰 페레와 그 뒤의 하리하란들만으로도 놀랄 지경인데 까페에서 차를 마시던 귀부인들도 부채로 입을 가린채 어머어머 거리며 소녀를 주시했기 때문이다.
'창피해'

소녀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 손에 쥔 귀걸이를 떠올렸고 문득 엄마가 항상 하던말도 떠올랐다.

'나쁜짓하면 콩밥먹는다!'
소녀는 콩이 싫었다.
엄마가 콩밥 먹는다고 겁을 줄때면 늘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

'아빠 정말로 나쁜짓하면 콩밥 먹어요?' 물었고
아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럼 왕창먹지 더 이상 먹지 못할만큼 먹인단다' 하고 더욱 겁을 줬다.

콩밥, 귀걸이, 경비병 등, 싫고 좋고 무서운것들이 동시에 떠올라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어찌해야할지 모르는데,

"저기?"
"힉?!"

갑작스런 부름에 요상한 소리를 내버린 소녀는 이내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눈감으면 코베어 간다'

시골에선 흔히 듣는 말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촌장님이
'에구 못생긴 얼굴에 코까지 베이면 얼마나 흉할꼬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했고

아빠가 '어떤놈이 내 딸을 건드냐' 하자 촌장님은 허허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주 손을 흔들던 소녀는 아빠에게 진짜로 코를 베어가는지 물으려 했지만 보나마나 겁을 줄것이 뻔했음으로 묻지 않았다.

"방금 주우신 귀걸이, 저희가 일부러 떨어뜨린거거든요"

눈앞의 페레 여성의 발톱은 소녀의 코 정도는 손쉽게 베어갈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 귀걸이를 주워서 주인을 찾아 주려고 하는 양심적인 분들을 찾아서 상품을 드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갑작스러워서 놀라셨죠?"

소녀는 방금 숙녀답지 못한 소리를 낸것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럼 다시 갈게요 후우, 안녕하세요 마리의 양심 냉장고, 말재주꾼 마리 입니다."
"네...안녕하세요"

소녀는 목소리를 크게 해주는 막대기가 신기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그 사이에 코를 베어갈지도 모르니까

"실례지만 이름과 나이를 말해주실수 있나요?"
"앤이라고 해요. 10살이구요"

"앤! 정말 양심적인 소녀에요. 비싸보이는 귀걸이를 주웠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고 경비병에게 가져다 주려했어요. 사람들은 주운 물건은 경비병에게 가져다 주어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거든요"

"네..."

앤은 자신의 거짓말에 경악 했다. 사실 경비병에게 가져다 주려한게 아니라 마침 가는 방향에 경비병이 있었을 뿐이고 이 마리라는 페레는 단순한 착각에 의해 앤을 착하다며 칭찬해 주고 있었지만 거짓말도 나쁜짓이기 때문에 앤은 이제 꼼짝없이 콩밥을 먹을 판이었다.

"착한소녀 앤은 마리아노플에서 살고 있나요?"
"아니요. 마리아노플은 아빠를 따라 왔을 뿐이에요"

"그럼 앤은 어디 출신인가요?"

앤은 망설였다. 이대로 거짓말을 계속 이어가야 하나 그럼 콩밥을 배가 터질때까지 먹을텐데... 내가 왜 귀걸이를 주웠을까 그래! 이 사람들이 일부러 귀걸이를 떨어뜨렸고 이 페레가 말을 걸었어 전부 이 페레가 나쁜거야!

어린아이 특유의 자기합리화를 하며 지금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찾기로 했다. 앤은 머리가 좋았다.

"엄마가 모르는 사람한테 알려주지 말라고 했어요"

마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모자 쓴 남자를 바라봤고 그 남자는 팔짱낀 손을 풀며 손목을 공중에 휘휘 저었다 아마 빨리 끝내라는 의미인것 같았다.

"호호호 정말 훌륭하신 부모님이에요, 여러분 이 작은 소녀가 가진 양심, 과연 우리도 가지고 있을까요? 5회 양심 냉장고의 주인공 앤 입니다!"

짝짝짝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의 작은 박수소리를 들으며 앤은 정말로 착한 행동을 한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약간 으쓱 해졌지만 이내 경품을 보낼 주소가 필요하니 아빠가 계신곳을 알려달라는 말을 듣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빠는 모르는것이 없으니까 내가 거짓말 한걸 금새 알아차릴거야'
아빠에게 혼나는건 콩밥이나 코를 베이는것보다도 무서웠다.

결국 앤은 으앙 눈물을 터트렸고, 귀걸이도 같이 준다는 말에 설득당해 막내 제작자라는 오빠와 작가라는 언니와 함께 아빠가 있는 여관으로 향했지만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앤이 떠난 후, 자리를 정리하던 제작진은 연신 다행이라는 말을 연발했다.
사실 그들은 새벽부터 자리를 잡고 양심 냉장고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이다. 잘 발견했어 처음에 떨어뜨린 자리가 아닌데 모르는 사이에 발에 채여 거기까지 날아갔나봐 부자 동네라 그런지 아무도 줍질 않더라고 그 아이 전에 지나간 부인은 아에 귀걸이를 피해가더라니깐 부자 눈에는 가짜인게 한눈에 보이나봐 근데 뭐하냐"

마리는 앤에게 돌려받은 귀걸이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거리에 향수냄새가 가득해서 몰랐는데 이 귀걸이 우리가 떨어뜨린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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