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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희 작가님 글

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백여 년 전, 그곳의 한 카페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왕자비로 내정되었다가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어 꿈이 좌절되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납치가 아니라 사랑의 도피였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마리아노플 시민이라면 카페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보면 모르는 체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 온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간 소녀는 귀걸이를 꺼내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슬쩍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이어쓰는 글

“...그 귀걸이가 마음에 드나봐요?”

소녀는 깜짝 놀라 얼떨결에 귀걸이를 주머니 속에 숨겼다. 소녀는 자신을 부른 여자를 바라보았다. 은발에 화려하지 않지만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대귀족의 여식으로 보이는 여성. 소녀는 잘못 건드렸다고 생각했다. 물건은 주인과 격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소녀였다. 만약 저 여자가 귀걸이의 주인이라면 돌려줘야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느끼며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혹시 이 귀걸이가 아가씨의 것인가요?”
“아뇨. 저도 방금 봤을 뿐이에요.”

그 말에 소녀는 다행의 한숨을 내쉬며 귀걸이를 부드럽게 쥐고서 의자에 힘없이 앉았다. 여자는 소녀의 반응이 재미있는 듯 피식 웃었다. 그리고 정말 다행이라고 주절주절 떠들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정리가 안 돼서 대충 질끈 묶어버린 머리, 군데군데 닳아 무척 낡아 보이는 신발과 옷. 딱 봐도 이 도시 사람이 아닌 타지에서 온 여행자로 보였다. 여자는 재미있겠다는 듯 소녀 맞은편에 앉아 몸을 가까이 다가가서 소녀의 손을 잡았다. 소녀는 여자의 손이 너무 차다는 것에 깜짝 놀랐지만 귀족 영애에게 차갑다고 손 놓으라고 했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신경을 쓰지 않는 척 하였다.

“차림새보니 이 동네 사람이 아닌가봐요?”
“네.. 전 솔즈리드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왔어요. 여행 중에 어머니께서 이곳에서 연락이 두절되서 와봤어요. 그러고보니 여행한지 어느새 2년이나 되었네요...”
“흐음. 꽤나 여행을 길게 했네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행이야기 해주실래요?”
“그럼 저야 영광이죠!”

소녀는 기쁜 얼굴로 2년동안 돌아다니면서 본 것들을 여자에게 이야기했다. 은둔하며 사는 엘프들이 모여 있는 그위오니드, 전설로만 나온다는 용의 알이 있는 뼈의 땅. 그리고 얼마 전에 왕국에서 보낸 순찰대들이 발견한 선조가 살고 모든 종족의 고향 원대륙. 소녀는 신나라 이야기했지만 여자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똑같은 표정으로 웃고만 있었다. 자신의 여행이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을 정도로 재미없었나 생각하고 금방 시무룩한 표정으로 변했다. 가만히 듣다가 소녀의 표정을 본 여자는 당황해하며 미안하다고 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여자는 살며시 귀걸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저.. 아까 주운 그 귀걸이. 가졌을 때 무척 기뻐보이던데... 당신하고 무슨 관계라도?”
“아. 제가 가지고 있는 귀걸이 한 짝이랑 똑같이 생겼거든요.”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실래요?”

소녀는 알 수 없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아였던 어머니께서 유일하게 부모님, 즉 소녀의 조부모에 대한 증거였다는 물건이라는 것. 어머니가 마리아노플로 가셨다가 연락이 끊겨서 여행을 다니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점도. 여자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지만 소녀는 그 미소가 오싹하게 느껴졌었다. 여자가 다른 귀걸이 한 짝을 보여달라고 하자 살짝 꺼림칙하게 여기면서 가방 깊은 곳에서 귀걸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 두 개를 가만히 바라보던 여자는 소녀의 팔목을 붙잡고서 광장을 가로질러 귀티나는 건물 구석쪽으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소녀는 순간 공포에 휩싸여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힘도 강한데다가 방금 전보다 손이 더 차가워져 금방 기가 죽어버린 채 그녀가 가는 곳으로 이끌렸다. 한창 걷다가 여자는 잔디가 깔끔하게 손질된 작은 공원에 도착했다. 소녀는 이곳이 어디냐고 물었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앞쪽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세요?! 갑자기 이러시면 좀 당황스럽잖아요!”
“당신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어요. 마리아노플의 소문 알아요?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
“알긴 아는데...”
“그 유령이 왜 귀걸이를 떨어뜨리는지 알아요? 그 유령은 죽기 직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그녀가 떠올렸던 마지막 기억은 자신을 죽인 자가 귀걸이 한 짝을 뺏어간 것이었어. 그리고 그 한 짝을 네가 가지고 있고. 몇 달 전에 너랑 비슷한 여자가 이 귀걸이에 끌려 나에게 죽었었는데. 그게 아마 네 어미였나보구나.”
“그럼...어ㅁ...컼..!”
”참 이상해. 날 죽인 너의 조부모가 너희에게 다 떠넘긴건가? 너도 참 불쌍하군.”
“자...잠깐....크헉”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 아닌 붉은 눈을 한 여자가 소녀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간 죽는다. 소녀는 겁을 먹고 옆구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 여자에게 찔렀지만 유령에게 물체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나보다. 여자는 그런 멍청한 행동에 비웃음을 날리며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네년의 조상의 업보라고 생각하거라. 내가 죽은 것과 같이 똑같이 죽여주마.”

-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는거지. 귀걸이가 제 짝을 찾았다라.”
“네, 마스터.”

창문도 없는 방 안에서 단 초 하나에 의지해 두 남자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 방엔 커다란 제단과 붉다 못해 검게 변색된 피가 이곳저곳 남아있었다. 마스터라 불린 남자는 붉게 물든 장갑을 제대로 끼며 킥킥 웃어댔다.

“설마 그 기억은 못하는건가? 자기 손녀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그녀의 어린 시절과 많이 닮았던데.”
“유령이 되면서 기억이 왜곡된 듯합니다. 그녀는 저희 피묻은 손이 귀걸이를 가져간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하하하하. 지금 잡고있는 놈이 들으면 미친 듯이 울겠군.”

선대 마스터께서 그 녀석을 그 옛날 왕자비의 수하로 위장해서 넣은 것이 이런 결과를 낳을 줄이야. 피묻은 손의 마스터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하가 가져온 귀걸이 한 세트를 무미건조하게 바라보았다. 이 귀걸이는 본인들이 건들지 않았다. 오히려 건든 것은 소녀의 조부이자 피묻은 손의 간부 중 하나였던 마이크였다. 마이크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서 언제부터인가 그녀와 사랑에 빠졌었다. 예비 왕자비였던 그녀는 자신을 사랑했던 수하가 피묻은 손이었다는 것을 납치 후에 알았지만 사랑 앞에선 모든 것이 용서되었었나보다. 그렇게 1년을 넘게 갇혀있다가 둘의 사랑의 열매로 여자아이가 태어났었다.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지트를 뒤졌지만 아기는 사라지고 간부 마이크와 귀걸이 한 짝이 사라진 채 고개를 숙인 그녀만 서있었다. 선대 마스터는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둘 모두를 죽이려 했지만 마리아노플의 위상을 꺾기 위한 좋은 수단이 될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녀를 처참한 꼴로 다시 집에 돌려놓았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자신이 아꼈다는 공원에서 목매고 자살했다는 소문이 자자했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묻은 손에서 그 소문은 이야깃거리가 되어서 현재 마스터인 본인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 녀석에게 알려라. 부인과 네 딸이 그녀에게 처참히 당했다고.”
“네.”
뒤돌아 그에게 가려던 순간, 다른 부하 하나가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마스터. 그녀석이 탈출해 도망갔습니다.”
“...”

그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냥 두라는 지시를 내렸다. 나가려던 자가 이유를 묻자 그는 웃으면서 흘리듯이 말했다.

“어짜피 이 곳을 나가봤자 그 녀석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저 죽은지도 모르는 자기 딸과 부인을 미친 듯이 찾아다니는 한심한 놈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걸로 형벌을 대신하지. 원래 세대를 이어서 형벌을 내려야하지만... 이것도 재미있겠군.”
-

2년 후

‘아빠가 미안해. 이 귀걸이, 잘 가지고 있어 알았지? 아빠가 곧 찾으러 갈게.’

초췌한 남자가 제대로 낫지 않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마리아노플에 들어왔다. 성문을 넘자마자 꽤나 아픈 듯 인상을 찌푸리며 넘어지자 경비병이 괜찮냐며 다가와서 그를 부축했다. 그는 괜찮다고 말하고 경비병에게 질문했다.

“혹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들고 다니는 여자아이를 보시지 못하셨습니까? 제 딸인데 그 아이를 찾아야 해요.... 아기였을 적에 잠깐 보고서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

경비병은 설마하며 요새 새롭게 퍼지고 있는 소문을 떠올렸다.



『장신구를 흘리고 다니는 영애의 귀신이 아닌 한 여자아이가 ‘부모님이 주신 귀걸이가 없다’며 사람들을 죽이며 그 공원을 떠돌고 있다』는 것을.









*처음 글을 써보는거라 긴장되지만 다 쓰고나서 수정하기 되게 힘들었네요..ㄷㄷ 초반에 시간설정을 잘못해섴ㅋㅋ큐ㅠㅠㅠ
이것도 줄인건데 왜이리 길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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