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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백여 년 전, 그곳의 한 카페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왕자비로 내정되었다가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어 꿈이 좌절되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납치가 아니라 사랑의 도피였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마리아노플 시민이라면 카페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보면 모르는 체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 온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간 소녀는 귀걸이를 꺼내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슬쩍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꼬마 아가씨가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 화려한 물건인데? 어디서 났어?"
소녀는 귀걸이는 양손으로 꼭 쥐고,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건넨 사람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평범한 키,목에 닿는 부드러운 갈색 머리,흰피부와 얇은 입술,높고 얇은 코가 매력적인 인상을 풍긴다.
입은 옷도 아주 비싸보인다. 이 귀걸이의 주인일까?
'밤이나 새벽에 카페에서 귀걸이를 잃어버렸는데 이제서야 깨닫고 다시 찾으러 온건가?
남자가 왜 이런 귀걸이를 가진거지? 혹시 부인한테 줄 선물이었나?
아니야,아니야 나랑 비슷한 나이같은데 어떻게 부인이 있겠어
혹시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인가? 아,살면서 처음으로 본 사파이어인데 이렇게 내 손을 떠나가는건가?'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소녀는, 소년의 웃는 얼굴을 보다가 가장 신경쓰이는 것부터 물어보기로했다.
얼굴을 찌푸리면서. "꼬마 아가씨라고요? 내가 꼬마로 보여요?" 맙소사,10번째 생일이 지난 이후로 꼬마란 말도,아가씨란 말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데.질문을 들은 소년은 입을 벌리며 잠시 당황하더니,다시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여서 그랬지.난 아직도 19살이거든.19살이면 꼬마잖아?그리고 아가씨는 확실히 맞는 것 같은데."
소년은 소녀와 동갑이다.하지만 생각의 차이는 상당하다.요즘 같은 시대에 19살이 꼬마라니...소녀가 살던 솔즈리드에서 19살이면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나이다. 도련님이라 노인네들한테 둘러쌓여서 살았나?
"그런데 그 귀걸이, 어디서 났냐고 물어 보잖아"
추궁하는듯한 목소리는 아니다.그런데 계속 물어보는 걸 보면 분명히 관계가 있는 물건이다.
"그 쪽 거에요?"
소년은 여전히 웃으면서 대답한다."아니,내 건 아닌데,내 친구 귀걸이랑 너무 비슷해보여서"
"그래요? 그 친구가 어제 밤이나 오늘 새벽에 이 카페에 왔었대요?"
"아마 아닐걸?"
"그러면 당신 친구 물건은 아닌 것 같네요.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방금 이 카페에서 주웠거든요"
소년은 놀랐다는듯이 눈을 크게 뜨면서 대답했다.
"정말로?"
"네"
소년은 입을 앙다물고 생각하더니,다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내 친구 물건은 아닌 것 같네.그런데 혹시 외지 사람이야?"
갑자기 왜 이런걸 물어보는 걸까?이 사람 설마 귀걸이를 슬쩍하려고 그러는건가? 잘사는 것 같은데 이런 귀걸이 하나가 뭐라고?
"네,솔즈리드 바라기 마을에서 왔어요"
"그러면 마리아노플은 처음이야? 아니,일단 나이도 비슷해보이는데 말부터 편하게 해"
확실히 무슨 속셈이 있다.
"응,처음이야 근데 그런건 왜 물어봐?모르는 남자가 그런거 물어보면 좀 무서운데"
"예쁜 아가씨가 길을 잃어서 소매치기들이라도 만나면 어쩌나...걱정돼서 그렇지.여기는 길이 복잡해서 오래 산 사람들도 헤메는 걸로 악명이 높거든.그러다가 소매치기들을 만나기도 하고.원래는 밤에만 활동하던 녀석들인데,요즘은 여행자들이 많아져서 지금같은 낮에도 얼굴을 보이더라고.그래서 처음이면 마리아노플 안내해주고 싶어서"
이렇게 말해서 날 안심시킨 뒤에 귀걸이를 뺐어가려는 건가?아니야 그랬으면 처음부터 말을 걸지 않고 뺐어서 도망쳤겠지.소매치기는 아닌것 같다.예의를 차리는 말투도,행색도.그러면 이 사람은 뭐지?말을 할 수록 모르겠다.
"정말 그 뿐이야?" 높은 집안 출신이라 여행객이 마리아노플에서 불쾌한 기억을 만드는게 참기 힘들다고 생각하는걸까?
그렇다면 안내를 받아도 괜찮을 것 같다.소매치기를 만나서 귀걸이를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으니까.마리아노플은 넓고 볼것도 많을테니,도시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그러면 안내를 부탁해도 되?"
"물론이지.아,난 에단이야.성은 가르쳐줄 수 없으니까 넘어가고,넌 이름이 뭐야?"
"...마리안.그렇다고 '세 가문'출신은 아니고.그냥 아버지가 나는 공주처럼 살기를 바란다면서 지어주신거야."
에단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설명하는 마리안을 보며 웃더니,마리안의 손을 잡아끌며 걷기 시작했다.
카페 거리에서 벗어나 상업지구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다는 극장의 꼭대기에 올라 가보고,골목 몇개를 지나더니 예술관의 입구에 서 있었다.안에 들어가보니,아름다운 조각상과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진 왕들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초상화는 아주 자세했다.갈색 머리와 높은 코가 돋보이는,남자다운 얼굴이었다.어디에선가 본듯한...
"어...에단 이리로 와 봐...이 그림 누구인지..."
마리안이 말을 꺼내는데,에단이 손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오늘 안에 마리아노플 구경 제대로 하고 싶으면 빨리 다른 곳으로 가자.예술관 같은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에단은 도로를 따라서 광장으로 갔다.온갖 사람들이 모인 광장은 여러가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무기,방어구,장신구,일상적인 옷,식재료,음식까지 온갖 물건이 팔리고 있었다.
광대들도,악사들도,음유시인도 각각 실력을 뽐내고 아이들은 뛰어다닌다.
천천히 광장을 구경하던 에단과 마리안에게 시인 하나가 다가오더니 전단지를 주며 말한다.
"이야,굉장히 잘 어울리는 한 쌍이구만,혹시 자네들 일리온 1세와 마리안 위어드윈드의 이야기를 아나? 당연히 알겠지,이 곳,마리아노플에서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분들을 알아야하고 말고,하지만 말야,아무래도 자네들 같은 연인 사이라면 그 두 분의 사랑 이야기가 좀 더 궁금하겠지?최고의 시인 바이렌이 곧 있으면 광장에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쓴 서사시로 공연을 시작할거야.와서 꼭 보게.그분들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다면 말야!!"
연인이라고 오해하는건 그렇다치고,마리안은 광장에서 공연을 한다는것에 놀랐다.광장에서 공연을 한다고?그러면 누구나 듣게 될 텐데?그녀의 고향에서 공연은 큰 천막에 돈을 낸 사람들만이 들어가서 즐기는 것이었다.하지만 에단이 마리아노플에서는 누구나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예술가들은 지원을 받고,광장에서 공연을 하면서 모두가 그 공연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해줬다.바이렌이라면 시골에 사는 마리안도 알만큼 엄청난 시인이다,그 사람의 공연을 볼 수 있다니!이번에는 마리안이 에단의 손을 끌며 걸었다.걸어가며 자신이 자연스럽게 에단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잠시 흠칫했다.오늘 처음본 남자의 손을 잡고 걷는다니, 평소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하지만,에단은 뭔가 달랐다.뭔가 익숙한 느낌이 있었다.아까 시인이 자신과 에단을 연인이라고 말했을때도,아니,카페 거리에서 처음 손을 잡았을 때부터 극장,예술관,지금까지 에단의 손을 잡으니 계속 익숙한 느낌과 따듯함,그리움이 느껴졌다.오래 전에 잃어버린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난것처럼.
그런 생각을하며 광장을 돌아다니다가,분수대 근처에 서서 말을하는 바이렌을 찾을 수 있었다.마리안과 에단이 자리를 잡고 바닥에 앉아서 조금 기다리자,바이렌은 사람들이 충분히 모였다고 생각했는지 노래를 시작했다.한 시간 동안 그는 노래와 낭송을 번갈아가면서 일리온1세와 마리안 위어드윈드의 로맨스를 묘사했다.
에단은 그저 웃는 표정으로 마리안이 모르는 부분을 설명해줬고,마리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반짝이며 감상했다.
바이렌은 일리온 1세와 마리안 위어드윈드의 이야기가 끝나자,다른 여러가지 이야기를 시작했다.바이렌이 어떤 이야기를 하던 에단은 막힘없이 풀이하면서 마리안에게 들려줬다.그런데 '두번째 왕자 에단과 마리안의 노래'를 시작하자 에단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내용은 우울했다.100여 년 전,일리안 왕의 두번째 아들 에단은 상업지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가문의 딸인 마리안과 약혼했다.첫째인 에단의 형은 왕가를 이어갈 의무가 있었으므로 '세 가문'인 위어드윈드,노르에트,트리스테 중 한 가문의 출신인 여자와 결혼했지만,에단은 마리아노플을 돌아다니다가 만나게된 마리안에게 반했고,마음을 솔직히 표현했다.
어려운 역경이 많이 있었지만,서로를 의지하며 견뎌낸 그 둘은 결국 미래를 약속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궁의 생활을 견디지 못했던 마리안은 자신이 옛날에 사랑했던 남자에게 도망치다가 죽었다.
그리고 에단은 그런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살했다는,뒤가 씁쓸한 이야기였다.
그 때,에단이 굳은 얼굴로 일어나서 사람들을 헤치며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마리안이 놀라는 사이에 에단은 관객들에게 가려서 이미 보이지 않았다.마리안이 관객들에게서 벗어나 에단을 찾는데,에단은 마리아의 전당 앞에서 얼굴을 감싸 쥐고 서있었다.
마리안이 가까이 가자,에단은 다시 웃으면서"공연이 너무 길었어.벌써 저녁이잖아"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다.
"에단...넌 누구야?"
입술만 움직여서 웃는 표정을 짓던 에단은 마리안의 질문을 듣자 천천히 입꼬리를 내렸다.하지만 슬픈 눈은 변하지 않았다.
"넌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마리아노플을 골목길까지 구석구석 다 알고 있어.극장,예술관을 몰래 들어가는 방법도 자세히 알고,바이렌이 말하는 모든 작품을 해설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해.처음에는 그냥 도시에서 살아서 그런가보다 했지만,넌...너무 이상해.넌 도대체 누구야?"
마리안이 한 마디,한 마디를 더 내뱉을수록 에단은 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에단은 한숨을 크게 쉬고 마리안의 눈을 쳐다봤다.맑은 검은 눈과 슬픈 빛을 띄는 갈색 눈이 서로를 마주 본다.
과연 그럴까?마리안은 에단을 쳐다보고 있지만 에단은 마리안의 눈 너머에 다른 것을 찾는 것 같다.
이윽고 에단이 먼저 입을 열었다."여기서 얘기하긴 싫어. 서문 밖에서,노을 보면서 조용히 얘기하자."
광장에서 서문까지 걸어가면서 둘 다 서로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에단은 가다가 술을 한 병 사고,마리안은 샌드위치를 사러 한 번 멈췄을 뿐이다.경비병의 지분거림을 무시하면서 서문 밖으로 나가서도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노을을 보면서, 에단은 술을 들이키고 마리안은 샌드위치를 깨작거렸다.
술이 동나고 샌드위치가 반쯤 사라졌을 때,에단이 말을 시작했다.
"'두번째 왕자 에단과 마리안의 노래'는 원래 그런 내용이 아니야."마리안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고 싶었지만,에단의 붉어진 얼굴만 바라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단은 두 번째 왕자였어.형이 있었기 때문에 왕위는 생각도 안했지.그래서 그냥 자유롭게 돌아다녔어.배우고 싶은건 배우고,싫
은건 안하면서 마리아노플을 돌아다니다가,정말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게 됐어.그 여자의 아버지는 엄청난 상인이었기 때문에 귀족 작위를 받은 사람이었어.에단은 정말 기뻣지,상인 집안 출신이라도 어쨋건 귀족이니 신분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지.에단은 그녀에게 마음을 표현했고,그녀는 마음을 받아들였어.둘은 미래를 약속한거지.그런데 신분차이를 극복해준 그녀의 아버지가 문제였던거야.그녀의 아버지는 옛날에 귀족이 되자마자 딸에게 마리안이라는 이름을 붙여줘서 상류 사회로 진출하겠다는 야망을 여지없이 들어냈던거야.에단은 어려서 몰랐지만,'세 가문'의 연장자들은 그 사건을 똑똑히 기억했어.상인 출신 주제에 마리안이란 이름을 주는건 건방지다고 생각했지.그냥 평민이 마리안이라는 이름을 가지면 자식을 위하는구나,하고 넘어가지만 장사로 귀족이 된 사람이 그러는건 부끄러움을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지.그래서 에단이 약혼사실을 알렸을 때,제일 반대했던건 왕과 여왕이 아니라 '세 가문'의 장로들이었어.여자의 아버지가 건방지다는 이유와,두번째 왕자라도 자신의 가문 출신인 딸과 결혼하면 그 만큼 권력을 불릴 수 있으니까.하지만 사랑에 빠진 에단을 설득할 길이 없었지.에단은 결혼을 허락해주면 둘이서 솔즈리드로 떠날테니 허락해달라고 했지만,장로들의 반대 때문에 결혼을 할 수가 없었어.그러던 중에 장로중에 하나가 일리안 왕에게 악의적인 소문을 들려줬지.'이 결혼이 성사된다면 여자의 아버지가 더 큰 권력을 위해 태자에게 해를 끼칠지모른다'라고말이야.일리안 왕은 훌륭하고 공정한 성격이어서 오랫동안 그런 헛소리를 무시했지만,장로들이 계속 그런 주장을 하고 거짓 증거까지 가져오자 장로들의 말에 넘어갔어.왕은 에단에게 절대 결혼을 승낙할 수 없으며 '세 가문'의 여자와 결혼을 해야한다고 명령했지.에단은 장로들에게 치를 떨면서 마리안과 도망치려고 했어.하지만 발각돼서 마리안은 솔즈리드로 도망치라고 말하면서 혼자 이즈나로 끌려갔어.꼭 찾아가겠다고 약속하면서 사파이어 귀걸이를 한짝씩 나눠 가졌지."
마리안은 주머니에 넣어둔 귀걸이를 손으로 문지르며 생각했다'혹시 이 귀걸이가...?'
"그런데 경비대는 에단의 생각 이상으로 빨랐지.마리아노플의 모든 문과 하수구를 닫고 마리안을 찾으려고 애썼어.그래서 그녀는 오빠가 운영하던 카페에서 숨어 지낼 생각이었는데,결국 장로들이 보낸 첩자에게 걸린거야.그래서...잔인하게...목이 졸려 죽었대.그녀를 구하려던 마리안의 오빠도 같이 죽었어.장로들은 에단을 굴복시키려고 마리안이 옛 연인에게 떠났다고했지만,길거리 친구들을 통해서 진실을 전해들은 에단은 삼일동안 울부짖었어.일리안 왕이 직접 왕자를 찾아가서 사과했지만,그래도 에단이 사랑하는 여인을 불러오지는 못했지.마리안이 죽고 2달이 지나자,에단은 외출을 허락받아서 마리아노플로,그녀가 죽은 카페로 바로 달려갔어.
한쪽 귀에는 증표로 삼은 사파이어 귀걸이를 하고...그녀가 죽은 카페,처음만난 거리,처음으로 같이 차를 마신 가게,추억이 서린 곳을 다 돌아본 에단은, 다시 그녀가 죽은 카페로 돌아가서 미리 준비해둔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어.그게 '두번째 왕자 에단과 마리안의 노래'의 정확한 내용이야"
이야기를 끝낸 에단의 눈시울은 붉었다.자조적인 미소를 띄는 얼굴은 외로워 보였다.난 이제 네가 누군지 알아.하지만,하지만,너무 믿기 힘들어서,확인해 줬으면 해.
"에단, 그 이야기 속의 에단이...너야?"
"맞아.두번째 왕자,사랑하는 사람을 따라서 누이 여신의 품으로 간 에단.그게 나야."
에단은 목에 닿는 머리카락을 넘기며 귀를 보여준다.있었다.마리안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것과 똑같은 사파이어 귀걸이가.
마리안은 주머니에서 귀걸이를 꺼냈다.이런 소중한 물건은,단순히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켜주는 게 아니다.누군가에게 정말 소중한,그런 추억을 만들고,유지하는,에단의 보물이다.
"미안해...이건...나한테 주어진게 아니구나."
에단은 처음 본 순간처럼,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그 귀걸이,껴 봐.잘어울릴 것 같은데."
마리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에단을 쳐다본다.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담은 귀걸이를 내가 끼라고?이름이 같기 때문에? 아니,애초에 날 만나서 같이 돌아다닌 것은 나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봐서 그런건가?그래서 극장,예술관,광장을 함께 손 잡고 돌아 다닌건가? 백여 년 전에 죽은 여자 대신에?
하지만 그러는 동안 마리안 자신도 행복했다는건 부정할 수 없다.귀걸이를 껴서 에단이 행복해진다면,그 정도를 못해줄 이유는 없지않은가?마리안은 손에 쥔 귀걸이를 귀에 꼈다.
그 순간,눈 앞이 깜깜해지면서 마리안은 다시 상업지구,카페 거리에 돌아왔다.시간은 낮,햇빛이 화창하다
마리안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에단이다.머리가 짧다는 것을 빼면 다른 점이 없었다.다음 순간 둘은 같이 차를 마시고,극장에서 공연을 보며,노을 빛을 보면서 마리아노플 주위를 산책하고,마리아노플 전체를 돌아다니며 추억을 쌓는다.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그러자 다시 해질녁의 마리아노플,서문 바깥 쪽으로 돌아왔다.머리가 다시 길어진 에단은 눈물을 흘리며 마리안을 바라본다.
"마리안.보고싶었어.솔즈리드는 아니지만,백여 년이나 시간이 흘렀지만,결국 이렇게 볼 수 있네.넌 우연히 같은 이름을 가지고 내 앞에 나타난게 아니야.넌 백여 년 전에 죽은 여자의 대용품이 아니야.그 귀걸이는,당연히 너와 나만 찾을 수 있는 우리의 증표니까."
에단의 손이 마리안의 뺨을 어루만진다."고마워,시간을 넘어서 다시 날 보러 와줘서.널 지키지 못했던 날 보러와줘서,정말로 고마워"
이미 백여 년 전에 죽은 남자의 손이 왜 이렇게 따뜻할까.
마리안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방울져서 흘러내린다.
끌어안는다.사랑하는 사람에게,우는 얼굴을 보여 주고 싶지않다.

소설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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