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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 깊숙한 곳, 전 대륙의 의뢰를 받아 우수한 물건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장인들의 비밀스런 장소.
그곳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 역시 몇이 되지 않으며, 이곳의 위치는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지고 있다.

사건의 그 날.
이슈바라 승전 축제 선물로 지급했던 고양이 가구에 문제가 생겨 한바탕 난리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이곳을 찾아오는 이는 한 달에 한 번쯤 찾아와 여러 곳에서 받은 의뢰들을 전해주는 가구 상인들뿐인데, 그 날 이곳을
찾아온 아리폰 역시 그 일로 찾아왔을 거라 모두가 예상했다.
하지만 아리폰의 곁엔 수상한 행색을 한 이가 서 있었고, 아리폰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벌벌 떨며 우리를 가리켰다.

"…저…저자들입니다."

그러자 아리폰과 함께 들어온 낯선 방문자는 아리폰 허리에 겨누고 있던 칼 끝을 우리에게로 돌리며 마른 입술을 열었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낯선 방문자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이걸 만든 장인을 찾아왔다."

그의 반대편 손에 올려져 있던 것은 문제의 그 고양이 가구였다. 우리는 이 불청객으로부터 어떻게 빠져나갈지 서로 눈치만 볼 뿐이였다.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골치 아픈 일에 휩싸이는 것은 사양이야. 근데 저 고양이 무늬 패턴이 익숙하다. 제길, 혹시나 했더니 내가 만든 고양이다. 그때 용기 있는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그 사람은 왜 찾는 거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의 목소리는 처음 보다 많이 누그러진 말투였다. 말을 끝낸 뒤에도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한 채 눈동자 굴리는 소리만 들릴 무렵
'털썩'
그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다들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고개 숙인 채로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를… 그녀를 만날 수 있게 해줘…."

흐느끼듯 털어놓은 그 뒤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그의 부탁을 들어주게 만들었다. 이것이 지금의 지독한 악순환의 시작이 될 줄은 그때의 난 상상하지 못 했다.
그의 부탁은 어려운 것이 아니였다. 발로 그린 듯한 어떤 여성의 초상화 한 점을 인형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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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걸 인형으로 만들면 희대의 얼간이로 남겨질지도 모른다. 말려야 해.

"음…."
"제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 부끄럽습니다만, 그녀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습니다."

맞다. 사람이였지. 순간 그림 때문에 그림의 대상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을 뻔 하였다.

"이거는 느낌만 참고하시라고 보여드린 거고……."

그가 품속 깊은 곳(차마 설명하기 싫은 신체 부위)에서 꺼낸 또 다른 한 장의 그림은 오랜 시간 때가 묻은 듯 종이가 누렇게 바래있었다. 좀 씻고 다녀라…인간아.
새로 건네받은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의뢰인을 암살하고픈 충동에 빠졌다. 진작 내놓으라고 이런 건 좀. 니 feel은 참고할 필요가 없어요. 그림에 찍힌 낙인은 낯설어 무명작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음을 생각하게 할 만큼 그녀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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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새로 꺼내 준 초상화와 의뢰인이 직접 그린 발그림(5살짜리 남자애가 그려도 더 잘 그렸을 것 같음) 두 장을 놓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험난한 작업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던 것일까, 그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제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아니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만날 수 없어…."

아, 들어서 안다고요. 아는데 제발 이것 좀 놔주세요 남자 손잡으니 기분이 나쁘네요.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로 하면 실례이므로 정중하게 부탁했다.

"족발 좀 치워주세요."

그의 표정이 굳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다. 나로썬 최대한의 예의를 지켜 대답한 것이므로.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작업은 시작되었고, 혼신의 힘을 다해 '그녀'를 만들어갔다.
동틀녘 반도에서 생산되는 석분점토로 피부를 만들고, 하슬라의 탄성 있는 대나무는 뼈대가 되었으며, 마하데비 항구도시에 사는 똥개의 꼬리털이 '그녀'의 찰랑찰랑 한 머리카락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장미와 새벽 호수 빛 첨가제를 연금술로 가공하여 만든 선홍빛 장미 염료가 입술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그녀가 완성되었다.
아직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라 미안했지만, 완성되면 의뢰인이 옷을 가져온다고 하였다. 부엉이 우편을 날린지 불과 10분 만에 그는 헉헉대며 공방으로 찾아왔다. 그는 내가 만든 '그녀'와 마주한 뒤 한참 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그리고

"사쿠라쨔응!!!!!!!!!!!!!!!!!!!"

응? 지금 쟤가 뭐라고 한 거야?

"사쿠라쨔응! 많이 추웠지? 응? 오빠가 옷 가져왔어!!"

아 쉣더…. 이게 무슨 상황이야 지금. 의뢰인은 이내 다 뜯어져가는 가방에서 옷으로 보이는 걸 꺼냈다. 아니 저건 이번 썸머 시즌 대 히트를 친 의상!

"[비칠랑 말랑]이야 사쿠라쨔응. 어때 이쁘지? 맘에 들어 사쿠라짜응?"

추울 거 같다며! 그래서 옷 가져온 거라며! 그래놓고 비키니냐! 의뢰인놈님아! 어이가 없어서 노려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고개를 획 돌리며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흥. 우리 사쿠라 그만보라능! 그치~사쿠라? 우리 집에 가자."

그렇게 뻥진 나를 두고 의뢰인은 포털을 열어 사라졌다. 처음 의뢰할 때 울먹이며 말했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제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아니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은데, 그런 슬픈 기분인걸…."]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나는 그대로 그가 사라진 포털이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못 했다. 순간 새 부엉이 우편이 도착했다.

[우리 사쿠라쨔응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능. 보답이라능~ 1000G]

돈이라도 받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금액을 수령하는 순간 또 우편이 도착했다. 이번엔 의뢰인의 필체가 아닌 여성이 쓴 걸로 보이는 귀여운 필체였다. 거기엔 잘생긴 남성의 초상화가 한점 같이 들어있었다.

[사쿠라쨔응을 보고 연락드려요. 우리 빈느님도 만들어주세요(수줍수줍)?]

"휴…. 다 팔고 귀농이나 해버릴까…."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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