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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는 파도가 백사장에 쓰러진 몸을 두드린다.
폭음 뒤의 숙취 같은 무거운 기운이 머릿속을 짓누르고 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본다.
여긴 어디지? 그리고 나는...
내 이름은 이요르!
마리안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로의 시험에 도전한 상태였어.
그런데 왜 내가 여기 있는 거지?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미로의 시험에 도전한 뒤의 기억이 전혀 없다.
짙은 안갯속에서 손을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답답하다.
마리안 위어드윈드!
그녀를 만나면 이 답답한 마음이 금방 해결 될 것만 같다.

.

비틀거리며 몸을 겨우 가누어 일어난 나는 몸의 모래를 털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백월만의 한 귀퉁이였다.
뜻밖의 장소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참에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요르!!! 걱정했잖아!"
멀리서 한 손을 흔들며 한손으로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달려오는 그녀는 바로 로나였다.
"로.. 로나?"
나의 첫사랑, 로나가 집을 나가기 전의 그 생기발랄한 얼굴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내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울먹였다.
"흑.. 어제 마일즈랑 술먹고 바다구경 갔다 해놓고 없어져서 밤새 찾았어.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어디 다친데는 없지?"
"마일즈? 난 분명 미로의 시험에.. 아! 마리안! 마리안은!"
"뭐, 마리안? 너 설마 어젯밤 밤새 여자 만난거야? 여기는 백월만 우리가 어릴때부터 살아온 마을이고 넌 이요르야.기억 안나니? 오 누이여신이여.."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내가 솔즈리드를 떠나온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을텐데 여전히 앳된 얼굴의 그녀라니.
"있잖아, 지금 내가 몇살이지?"
로나는 걱정하는 눈동자를 거두지 않은채 이상하다는 듯 대답해주었다.
"스무살이잖아. 너 어저께 마일즈랑 할 말이 있다고 둘이 밤새 술마시더니.. 도대체 나 빼고 무슨얘기를 한거야?"
어젯밤이라니.. 그 보다 지금의 이 상황은 나와 마일즈가 로나를 두고 한창 사랑의 신경전을 벌일때와 같지않은가.
그때 우리는 밤새 술잔을 기울이다 서로 로나의 마음을 먼저 묻고 존중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뒤 술에 취한 마일즈가 로나에게 먼저 고백을 했었다.
그의 배신으로 둘이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상황을 참을 수 없었던 내가 집을 나가게 되었었지.
"그..그게.."
아직 지금이 현실인지 미로의 시험의 일부인지 구분이 어려워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있는 날 보더니 갑자기 로나가 나의 품에 달려들었다.
"너희가 어떤 얘기를 했는지는 묻지 않을게. 하지만 다음부턴 이렇게 걱정시키지 마. 너가 없으면 난..."
이게 무슨 소린가. 설마 로나가 날?
"이요르.. 나 널 오래전부터 좋아했어. 내 맘은 전혀 몰랐던거야? 넌 내가 그저 소꿉친구니?"
첫사랑의 소녀 로나가 내 품에서 서글픈 얼굴로 날 쳐다보자 나는 도저히 그녀를 뿌리칠 수가 없었다.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마일즈는 로나의 마음이 그렇다면 따르겠다며 기꺼이 우리 둘을 응원하겠다고 하였고, 로나는 마음을 고백한 이후로 나와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모험가 소설을 많이 읽어서 그런 꿈을 꾼거라고, 마리안을 단지 꿈속의 연인으로 치부하기에는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이 아직도 아릴만큼 생생하다는 걸 알고 있지않은가.
"오늘은 저녁에 맷돼지 스튜를 할까 생각중인데. 이요르, 어때?"
어느새 우리집에 반쯤 눌러앉아 벌써부터 아내노릇을 하는 로나. 그녀가 스튜를 만들며 부르는 작은 콧노래를 들으며 나는 결심했다.
"로나. 할말이 있어."
"뭔데?"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난 사랑하는 여자가있어. 그게 설사 꿈이라고 해도. 마리안 위어드윈드, 난 평생 그녀를 잊을 수 없어. 어딘가에서 분명 그녀도 날 기다리고 있을거야. 난 다시 그녀를 만나고 여행을 하고, 미로의 시험에 도전하겠어. 너의 마음은 고맙지만, 난 이 마을을 떠나야 할 것 같아."
로나에게 내 진심이 전해졌을까. 요리를 멈추고 뒤를 돌아본 로나의 얼굴에는 눈물어린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이요르, 너가 그런 마음이라면.. 알았어."
조용히 눈물을 훔치던 그녀는 갑자기 책을 하나 꺼내어 나에게 건넸다. 겉표지는 아무것도 쓰여지지않은 책이었다.
"이게 뭐야?"
열어보라는 그녀의 손짓에 첫장을 연 순간, 제목을 보고 나는 얼어붙어 버렸다. 책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이요르의 누이아 대륙 여행기"


그 때 갑자기 온 세상이 빨려들어가는듯한 느낌을 받으며 난 어둠속에 휩싸였고, 칠흑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문이 하나 보이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다가가 열었다. 문을 열자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미..미로의 시험의 통과자가 나왔다!! 새로운 왕의 탄생이다!!"
수많은 인파와 초승달 왕좌의 귀족들.. 그리고 날 보고 울먹이며 달려오는 아름다운 마리안을 보며 나는 두 팔을 벌려 그녀를 껴안았다.

"다녀왔어요, 나의 마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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