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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른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는 파도가 백사장에 쓰러진 몸을 두드린다.
폭음 뒤의 숙취 같은 무거운 기운이 머릿속을 짓누르고 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본다.
여긴 어디지? 그리고 나는...
내 이름은 이요르!
마리안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로의 시험에 도전한 상태였어.
그런데 왜 내가 여기 있는 거지?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미로의 시험에 도전한 뒤의 기억이 전혀 없다.
짙은 안갯속에서 손을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답답하다.
마리안 위어드윈드!
그녀를 만나면 이 답답한 마음이 금방 해결 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는것은 왕이 된 다음이다.
멍하게 그녀만을 생각하다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었다.
미로의 시험을 통과했다면..
기억은 없지만 혹시라도 통과했다면 무언가 있을꺼다!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고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미로를 통과했단 증거가 될만한건 없었고 기억조차 없다.
한숨이 나오지만 하지만 괜찮다.
아직 기회는 많다.
그 중 한번을 소비했을 뿐이다.



몇번을 미로의 시험에 도전했다.
매번 같았다.
기억은 나지않고 증거가 될 그 무엇도 없었다.
습관적으로 미로의 시험대에 오르기를 수십번.
그저 그녀에 대한 흐릿한 기억만을 전제로 미로의 시험대에 오르고 있었다.


미로의 시험에 오르기 시작하자 모든일이 단순해졌다.
매일 아침에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미로의 시험을 치고 쓰러져있다 일어나 친구들과 돈을 벌기 위해 향하고 일이 끝나면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다.
오늘도 약속을 잡고 미로의 시험을 치기위해 걸었다.
미로의 시험을 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장난삼아 도전하는 자.
복수를 위해 도전하는 자.
구경을 위해 왔다가 도전하는 자.
신비한 경험을 위해 도전하는 자.
심지어는 귀족들도 간간히 보인다.
이 중에 가장 많은자는 장난삼아 들어가거나 신비한 경험을 위해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기억을 잃는 신비한 경험 때문에 도전한다나 뭐라나..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도전해도 초승달 왕좌의 왕은 탄생하지 못했다.


또 다시 미로의 시험이 이뤄지는 곳에 도착했다.
나는 익숙하게 앞으로 걸어들어 간다.
그녀와 걸맞는 상대가 되어야 하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왕이 되어야한다.
그런데 앞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머리가 아파온다.
왜 갑자기 머리가 아픈거야?
몸이 아프면 화가 나기 일쑤다.
화를 내고 있으니 내가 왜 미로의 시험에 도전하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데 미로의 시험이 뭐였지?
그 자리에 멈춰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을 더듬을수록 기억은 폭풍우 속 등불처럼 흐릿하고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녀만 생각하고자 다짐하고 걸었지만 또 다시 문제가 생겼다.
그녀도 생각나지 않던 것이다.
나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던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만 아프다.
하지만 미로의 시험을 쳐야한다는 생각은 강하게 든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았지만..
다시 미로의 시험 앞에 선 나는 습관속으로 뛰어들었다.
기억이 잊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건 이때부터였다.
하지만 다시 떠올리진 못했다.


사소한 약속들을 잊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나를 보며 자꾸 약속을 잊는다며 정신 좀 차리라고 낄낄대며 놀려대기 일쑤였다.
다시 미로의 시험을 치겠다고 일어나자 친구들은 혀를 차거나 오늘도 힘내라며 소리친다.
내가 어제도 미로의 시험을 치뤘나?
모르겠다.
그저 습관처럼 굳어진 길을 오늘도 반복하는거다.
심심풀이로 나와 함께 미로의 시험을 치르러 간다던 친구가 수다를 늘여놓았다.
초승달 왕좌의 왕비가 결정됬다고 한다.
마리안, 마리안 트리스테가 왕비가 됬다고 한다.
녀석은 왕이 된다면 후궁들을 마구 들일꺼라며 저 귀족 아가씨만으로 자신을 상대하긴 힘들꺼라며 낄낄거렸다.
반대로 나는 왕비의 이름을 듣고 갑자기 힘이 빠져나갔다.
안도감? 아니다 이건 허탈과 안타까움이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거지?
미로의 시험을 치루지 않아도 될꺼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습관은 나를 시험 앞에 올려놨고 미로속으로 밀어넣었다.
의문은 눌러버리고 그대로 미로속으로 뛰어들었다.


기억은 묻혔다.
남은 기억을 붙잡고 있기에는 머릿속은 텅빈 허공이자 횡량한 사막이다.
그런 기억이라도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닿지않아 희미한 잔상만 보였을뿐이다.
사라진 기억에 심각성을 느낀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아니 이미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로속으로 들어갔을때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 사실조차 잊었을지도 모른다.
더는 미로의 시험에 도전하지 않는다.
그 시험에 도전할 이유조차 잊어버렸기에.. 목표마저 잊었기에.. 나 자신도 잊기전에 도전을 멈췄다.
초승달 왕좌의 왕은 탄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


왕은 탄생하지 못하겠지.
미로를 통과하지 못하는자는 미로속에서 나오지 못한다니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한 아무도 왕이 될수는 없을껄?
뭐? 내가 방금 무슨 말이라도 했어?
자꾸 헛소리를 짓껄이게 되는거 같군.


아 그런데 말이야
그거알아?
여기 미로의 왕좌에는 괴이한 소문이 돌아..
계속 미로를 돌면 모든 기억이 묻혀버린다고 하더라고.
그게 나라고? 무슨 소리야.
난 멀쩡하다고
뭐? 마리안 위어드윈드? 그게 누구지?
마리안이라면 왕비 후보자의 이름이잖아?
그런 분을 내가 알리가 없지.
어? 우는거야?
어어.. 아가씨 왜 울어?
아 거참.. 아가씨,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 산옥잠화 (꽃말 : 사랑의 망각) - 꽃말이 필요해서 제목이 되었을뿐 소설과는 아무 상관이 없죠..

이건 뭐 끼워넣기에는 글자수가 이미 초과라서..


자료는 아키위키 '이요르의 여행일지, 마리안의 일기' 두곳에서 얻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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