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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나를 원정대장이라 불렀다. 다른 누군가는 나를 국왕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인사했다.

현재 매일 내가 듣는 호칭은 777 전사이다.

우리 마을에서 칠백칠십 일곱 번째로 태어났다며, 다루 감별사가 붙여준 나만의 이름이었다.

"어이, 777. 이제 행복할 시간이야. 저기, 너의 주인이 다가오고 있어!"

이웃의 동료가 소리치는 방향을 바라보니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오늘도 이걸 먹으란 거야?'

남자가 내민 건 조합 사료였다. 토끼풀, 호박, 짚단이 6:3:2의 비율로 섞인 맛없는 사료다.
물론 내 옆집의 동료는 배가 고픈 척 징징거리며 꼬박꼬박 두 개씩 챙겨 먹지만...
그래,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다. 현재 나는 한 마리 젖소다. 다루 감별사가 극찬하며 손수 이름까지 붙여준 우리 마을에서 알아주는 젖소다.

한때 몇 개의 영지를 누비던 나였는데, 하룻밤 눈을 뜨고 나니 몸이 변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기억을 더듬어보자. 마지막으로 내가 외쳤던 말이 생각났다.



"야, 드디어 축산 명인이 되었다!"

난 시퍼런 칼에 잘려나간 젖소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는 것을 채 멈추기도 전에 양팔을 높이 쳐들고 기쁨을 표하고 있었다.



“감축 드립니다 용진짱짱님!”

내 뒤 멀찍이 젖소들 시체의 머릿수를 세면서 오고있는 축산협회의 회장 노인네와 호위대가 손뼉을 친다.
탐탁치 않다, 감축할거면 대충 확인하고 빨리 증서나 내 줄 것이지.

지평선이 보인다 해도 과장이 아닌 넓은 성채 뜰 안에 수 만 마리의 가축을 묶어놓고 팔이 빠져라 도살해서 쾌속하게 명인에 도달, 사실 딱히 명인이라는 칭호가 쓸모 있는것도 아니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부터 내가 이 취미생활을 안전하게 영위 할 수 있도록 보초를 서는 병사들의 규모가 말해주듯,
난 그저 이 정점의 권력에 기분 좋게 취해 있을 뿐 이였다.




내 기세에 뒤쳐진 노인과 병사들을 기다리며 즐거운 취미활동이 끝난 후 뻐근해진 어깨를 풀고 있는데,
갑자기 왠 꼬맹이가 말을 걸어온다.


“재밌었어?”

한 열 살이나 먹었을까? 싶은 여자 어린아이가 젖소귀모양의 머리띠와 얼룩무늬의 원피스,
그리고 케틀벨 목걸이를 한 채 셀룩한 표정으로 보는게 아닌가.



뭐지? 이쪽으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감시하라고 했는데.



“어흥! 어린노므쉬키가 누구한테 반말인거냐! 신조차도 벌벌 떨게 만드는 이 용진짱짱님 앞에서 건방지구나!”

장난반으로 위협하는데, 이 녀석 담이 큰지 자기보다 수배나 덩치가 커다란 남자가 위협해도 여지없이 웃어 보이기만 한다.




“신? 난 젖소의 신인데?”

잉?

“파하하! 이놈! 네가 젖소의 신이면 누이여신이 내 마누라다!”
호탕하게 허리를 제치며 웃는데 있는데 별안간 녀석이 정색한다.





“흥! 엄연히 지엄한 생명의 법도가 존재하거늘 일용할 양식을 구하지도,
생계를 돕지도 아니하고 그저 일단락의 쾌락을 위해 수만의 생명을 도살한 죄!
거기다 신성모독 추가!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어허, 어린게 맹랑..”
어린 녀석이 약을 먹은 듯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이리쏘아붙이고 저리쏘아붙이기에
머리를 긁적이는 와중에 녀석이 손가락으로 권총모양을 만들어 내게 겨눈다.

“무답무용! 너도 똑같이 당해봐랏 빵야!”



그리고 이 맹랑한 녀석을 잡아채 엉덩이를 때려주려고 했는데 별안간 눈앞이 깜깜해진다.
다시 정신 차렸을 때는 어딘가 꾸물꾸물하고 뜨뜻한 통속에 결박된 채 인 것 같았다.
나가려고 발버동 치는데 어느 순간 머리위에서 빛이 보이기에 죽을 각오로 따라 나갔다.

다행히 내 상황을 알고 있었던지 부축해주는 사람들에게 의지해 간신히 서고서, 나에게 빅엿을 선사한 꼬맹이를 잡아 족칠 생각으로 우렁차게 호령했다.




“음메에에에!!”

…어라?




“히야! 이 녀석 태어나자마자 걷고 울음까지! 사람으로 쳤으면 못 되도 이름난 전사감입죠!”

다루감정사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여기까지 777 전사로서의 인생을 살아오게 된 것이다.

꿈같은 회상에서 현실로 돌아올 무렵 옆집녀석이 말을 걸어온다.




“777! 갈댓잎 소녀가 오고 있어~”

아마도 매일 아침나절에 간식으로 갈대를 꺾어다 주는 소녀를 말하는 것이다.
과연 갈댓잎 소녀가 셀죽히 웃는 얼굴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녀석이 언재나 같이 내 코앞에 갈대를 내밀었을 때, 나는 침을흘리며 멍하니 바라 볼 수 밖에없었다.
이웃녀석은 자기한테 달라며 혀를 이쪽으로 내밀며 안간힘을 쓰지만, 지금 갈대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너…”


분명 음머로 들렸을텐데, 소녀는 씨익 웃어보인다.

“키킥! 기억 났구나 너?”

내 콧구멍을 갈대로 희롱하는 소녀는 바로 그 기억속의 젖소의 신 이였다.
우스꽝스런 복장이 없었지만 충분히 알아 볼 수 있었다.






“…어때? 살아보니까?”



하…

할 말이 없었다, 분노도 뭐도 아니었다. 그저 황망함.
젖소로 살면서 눈앞에서 이웃 가축이 도살되는 경우를 빈번하게 보았다.
그리고 그건 용진짱짱 시절 느꼈던 감각과는 사뭇 다른 것 이였다.




“…있지, 죽음은 당연 한 거야. 하지만 생명의 죽음은 다른 생명의 연장으로 이어져야지.”
“…그리고 한 세대의 죽음이 다른 세대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것 이고.”
어느새 소녀는 내 미간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 말들이 비수처럼 내 가슴… 아니 안심에 꽂혔다.

알 수 있었다, 수 없는 전장에서 다양한 명목들로 정당화하며 사람의 목숨을 거두던 나는
최후엔 결국 쾌락을 위해 도살을 일삼는 광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인과응보다.



“… 그게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 그리고 저거 누구인지, 알아보겠어?”

소녀가 으쓱하며 자기 뒤로 엄지를 날려보였다. 그 끝에는 늘 사료를 챙겨주는 주인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야 777, 꼬마아가씨랑 놀고 있었구나? 오늘은 특별사료야!”

신나서 끌러놓은 가방을 뒤지는 우람한 체격의 남자

“공용농장에서 고생시켜서 미안, 하지만 777이랑 친구들이 우유를 팔게 해 준 덕분에 좀 있으면 자그만 집 도면정도는 살 수 있게 되니까 말야!”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료를 여물통에 채워주는 그는…







젊은 시절의 나였다.


“그럼 자그마한 777전용 축사도… 777?”


사료는 입에 물지도 못했다. 눈물이 흐르고 울음이 목젖을 넘어 꺼이꺼이 흘러나왔다.
내가 젊은 시절을 모두 바쳐 쌓아놓은 것들은 , 공짜가 아니었다.
모두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고 간신히 움켜쥔 것들 이었나보다.


난 이때의 이 빛나는 젊은이로.. 돌아 갈 수 있는 것 일까?











눈뜨자 드넓은 대리석 바닥위의 레드카펫과 화려한 색색의 샹들리에,
그리고 잠시 잠든 내 눈치를 보며 멀찍이 서 있는 보좌관이 보인다.

정신을 차리느라 그러는 척 얼른 눈가를 손바닥으로 마사지하자 조금 흘러내려있던 눈물이 손가락에 적셔진다.

“오늘 준비하라 말씀하신 가축들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합니다. 협회사람도 불렀구요. 지금 내려가시면 됩니다. 용진짱짱님.”

“그런가…”

난 뻐근해진 목을 마사지하며 일어났다.




“…아! 재경아. 그.. 축산 명인 말인데, 뭐 나한테 쓸모 있나?”

“예? 뭐.. 글쎄요, 그저 타이틀 수집이지요.”

“…그래? 에~이, 그런 거 뭐덜라고 해 귀찮게. 내가 용진짱짱인데.”

“..네?”

“그거 그냥 가난한 백성들이나 나눠줘라 재경아. 소젖이라도 팔아먹으라고.”

“…”

“거 마싸지 하는 애들이나 대기시켜놔라, 몸이 영 찌뿌둥하네. 엘프족 까리한 애들로다가, 알았지?”

“…예!”

그리고 그렇게 산책겸 복도를 향해 나가려하는데 책사 겸 보좌관인 재경이가 불러세운다.

“용진짱짱님!”
내가 돌아보자 말을 잇는다.



“…전, 한시도 주군을 의심해본 순간이 없습니다!”

최근 들어 시무룩해보였던 재경이가 오랜만에 미소 비슷한 것을 지어 보인다.



“지랄..”
갈대처럼 간질이는 웃음을 참으며 문을 나선다.
햇살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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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 내가 젖소꿈을 꾼 것인지, 젖소인 내가 사람의 꿈을 꾸는 것 인지 그것이 묘연하구나.”

-“..예? 왠 개솔?”

-“… 저놈의 목을 쳐라.”

-황제 용진.짱.짱의 어록 中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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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에효 그 머냐, 처음에 글자 수 아껴가며 썼는데 쓰고보니 4500자야.

거기서 1500자 가량을 덜어냈습니다. 장면 디테일이 대폭 줄어든..

더 이상은 안줄어들어요 like 내 몸무게처럼.

사실 3천자 밑으로도 맞춰봤지만 그 이하가 되니까 너무 머랄까...



용진 .짱.짱. (이름 용진, 미들네임 짱, 패밀리네임 짱.) 은 키 190cm의 전사.

재경이는 대륙 최고의 공과대학 출신의 책사란 설정입니다.

젖소의신이 왜 하필 어린 여자애냐고 물어본다면

로리 킁카킁카 ….

  • 뚜쉬뚜쉬 @안탈론 | 55레벨 | 마법사 | 엘프
    왠지 갓오하의 우마왕을 닮은 소녀가 아닐까...
    2014-10-29 18:01
  • 해적맛쿠키 @안탈론 | 16레벨 | 그림자 검 | 하리하란
    아 빡친다 이거 소설응모 태그를 안달음  /눈물
    2014-11-05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