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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걸린 저택 이야기


원본

산 속 깊숙한 곳, 전 대륙의 의뢰를 받아 우수한 물건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장인들의 비밀스런 장소.
그곳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 역시 몇이 되지 않으며, 이곳의 위치는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지고 있다.


사건의 그 날.
이슈바라 승전 축제 선물로 지급했던 고양이 가구에 문제가 생겨 한바탕 난리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이곳을 찾아오는 이는 한 달에 한 번쯤 찾아와 여러 곳에서 받은 의뢰들을 전해주는 가구 상인들뿐인데, 그 날 이곳을
찾아온 아리폰 역시 그 일로 찾아왔을 거라 모두가 예상했다.
하지만 아리폰의 곁엔 수상한 행색을 한 이가 서 있었고, 아리폰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벌벌 떨며 우리를 가리켰다.
"…저…저자들입니다."
그러자 아리폰과 함께 들어온 낯선 방문자는 아리폰 허리에 겨누고 있던 칼 끝을 우리에게로 돌리며 마른 입술을 열었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낯선 방문자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이어지는 이야기


"너희들 중에 고양이 가구에 마법을 건 자가 있다며? 나와 함께 가줘야겠다. 여기 있는지 다 알고 왔으니 수작 부리지 말고 당장 나와."

고양이 자체는 이곳 장인들이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그러나 그 고양이들이 살아 있는 양 꼬물거리고 재롱을 부리게 한 건 여기 새로 온 마법사 출신의 신출내기 장인인 나였다. 아리폰은 미안함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울먹거리며 날 흘끔거렸다. 할 수 없지.

"납니다."

동료들은 걱정했지만 내가 웃어 보이며 재빨리 그를 따라갔기에 어떻게 말릴 순간을 놓쳤다. 게다가 방문자는 칼을 든 강자였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실력자.

"날 어디로 데려가는 겁니까?"

"가보면 안다. 가서 네가 해줄 일이 있다."

방문자가 냉랭하게 말했다.



#

그는 아리폰과 나를 끌고 한 음침한 분위기의 저택 단지에 도착했다. 저택 주인인 중년 남자가 토끼풀을 심다가 반색하며 그를 맞았다. 얼굴이 칼자국과 색칠된 문신투성이였다.

"데려왔군!"

저택 주인은 이름을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굉장히 유명한 대규모 원정대의 대장이었다. 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고양이 가구에 생긴 문제 때문이라면 안 그래도 그 문제는 조속히......"

"응? 아니, 내가 자넬 데려오라 한 건 그런 잡동사니 때문이 아냐. 자네 능력을 높이 사서 부탁할 일이 있거든."

잡동사니란 말에 발끈했지만, 뒤에는 벌벌 떠는 친구 아리폰에, 칼 든 자가 있었다. 게다가 말로는 부탁이라지만 상황 상 명령이다.

"내가 요즘 자금 사정이 상당히 안 좋아. 땅 있는 원정대 하나 꾸려나가려면 얼마나 돈이 처드는데 원대 놈들은 그 얼마 안 되는 갹출금도 못 내겠다고 징징거리고, 거기에 기어오르는 새끼들까지. 아 글쎄 이번엔 내가 원정대 자금을 횡령했다고 난리지 뭔가? 그거 좀 필요하니 잠깐 급하게 융통할 수도 있는 거지, 이번에 꼬투리를 잡겠다고 아주 꼴값을 떠는데......"

아리폰과 날 여기까지 끌고 온 원정대장의 심복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대장놈아. 용건만 간단히."

원정대장의 주절거림이 팍 쭈그러들었다.

"어... 아, 암튼 그, 그놈들한테 내가 원정대 자금을 제대로 보관하고 있는지 내일 당장 보여 줘야해. 근데 당장 돈 끌어올 데가 바닥났어. 하지만 다 수가 있지."

그는 헤벌쭉 웃으면서 자기가 한 땀 한 땀 심고 있던 토끼풀을 가리켰다.

"실수로 건 마법 때문에 고양이 새끼들 모습이 다른 걸로 바뀌었다며? 그것처럼 이 풀 쪼가리에도 해봐. 동충하초 모습으로 변하도록."



#

"이래도 되는 걸까? 이거 사기잖아?"

아리폰이 망연하게 날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 원정대장이란 자의 요구대로 저택 이곳저곳에 그 ‘실수로 탄생한 혼동 마법’을 걸어 주었다. 저택에 빼곡히 심긴 토끼풀이 계속 시세가 올라가고 있던 동충하초가 되고 신기루 섬에서 사온 2은짜리 나무 상자며 저렴한 전등이 유혹의 욕조로 둔갑했다. 경매장에서 헐값에 집어 온 낡은 침대들은 나른한 장미 호박 침대가 되었다. 아무튼 싸구려 가구들을 긁어모아다가 조금이라도 더 비싸고 반짝거리는 것들로 도배했다.

나는 무뚝뚝하게 아리폰의 말에 대꾸했다.

"본질은 그대로인 일시적 환상일 뿐이야. 내게도 생각이 있어."

원정대장은 조금이라도 더 비싼 가구로 바꾸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그러나 유혹의 욕조 개수가 20개를 넘기기 시작하자 우리를 감시하던 칼 든 방문자가 참견했다.

"대장놈아, 그게 그렇게 많으면 이상해 보일 거란 생각은 전혀 안 드는 거냐?"

"뭘, 옛날부터 수집한 거라고 하면 돼. 이거 이벤트 열어서 선물로 돌린다고 하면 애들 분위기 잡기에도 좋을걸?"

원정대장은 '내 건재함을 보이기엔 딱이지.'라고 중얼거리며 흐흐 웃었다. 나는 도대체 이놈이 얼마나 횡령했기에 이렇게 정신 나간 수준의 과시용 인테리어를 고집하는지 아연해졌다.
그리고 그는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봐 우릴 보내주지 않고 내일 밤까지는 입 닥치고 이 저택에 연금되어 있으라고 명령했다.



#
다음날이 되자 저택에 모인 원정대원 인파 앞에서 원정대장은 연설(?)을 했다. 좀 횡설수설하긴 했지만 원정대원들에게 갹출한 원정대 자금은 골드 시세 하락 때문에 그만한 상품 가치를 지닌 다른 물건들로 바꾼 것 뿐, 자신은 절대 횡령 따위 한 적이 없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오늘의 1000금이 내일의 1000금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한테 세금을 걷는다고 하자 무슨 원정대에서 세금 걷느냐며 불평불만 터뜨리는 분들 많았지만 어떻습니까. 세금 좀 내고 원정대에 보탬 좀 되고 그 돈 불어나서 이제 이렇게 원금에 이자까지 쳐서 도로 받고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모두 좋은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수긍하진 않았고 수상쩍다는 눈초리로 저택을 힐끔대는 자들도 보였다. 그러나 열성적으로 호응을 유도하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곧 상품으로 유혹의 욕조가 걸린 이벤트가 시작되면서 장내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아리폰, 가자."

나는 '궤변이며 바람 잡는 거 하난 끝내주네'라고 중얼거리며 그 꼴을 감상하는 아리폰을 잡아끌었다. 아리폰은 어제와 달리 오늘은 조금 여유를 되찾은 상태였다.

"뭐? 하지만 우릴 감시하는 자가......"

"따라와라. 장인들이 있던 산속에 데려다 주겠다."

우릴 데려왔던 칼 든 방문자가 말했다. 아리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저 사람의 부하 아니였어요?"

그가 메마른 웃음을 지었다.

"광대놀음 틈에 끼어 있는 것도 이젠 한계야."

원정대원들은 상품으로 걸린 유혹의 욕조에 손 한 번 대보겠다고 난리였다. 원정대장은 열광적인 분위기에 취해서 자신의 앞에 있던 욕조를 대원들에게 밀어주었다. 그것만큼은 이 저택에서 마법으로 둔갑한 게 아닌, 원정대장이 원래 가지고 있던 진짜였다. 상품으로 가짜를 줄 순 없으니 진짜 욕조를 따로 가운데에 빼 놓았던 것이다. 아마 원정대장은 그렇게 믿고 있을 터였다.

"뭐야, 이 욕조 이상해! 불 켜고 끄는 거 밖에 안 되는데?"

원정대장의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 다른 데서도 침대에 누울 수 없다고 가구가 갑자기 투명해지며 안 보인다고 웅성웅성 소란이 일었다.

나는 말했다.

"자, 마법이 끝날 시간이야."

아리폰이 입을 벌리고 그 꼴을 보다가 손을 딱 쳤다.

"너 저 사람이 욕조 따로 빼 놓을 때 가짜로 바꿔치기 했구나?"

이어서 아리폰은 우릴 데려온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방문자가 인정했다.

"그리고 난 그걸 묵인했지."

점점 사태 파악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저택은 슬슬 아비규환 직전의 소란에 돌입하고 있었다. 우리는 발걸음도 가볍게 그 저택을 뒤로 하고 떠났다.

방문자는 옷깃에 달려 있던 원정대 마크들을 모두 떼어 버렸다. 그가 허탈하게 말했다.

"그래도 인성은 괜찮다고 여겼는데 일 년간 사람이 그렇게까지 변할 줄이야. 후, 나도 이제 원정대 생활 따위 그만두고 산 속으로 들어가 사는 게 나으려나."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처럼 잡담을 하며 걸었다.

"너희나 나나 오늘과 어제 저 저택에 있었다는 건 비밀이다."

아리폰이 급하게 덧붙였다.

"장인들의 마을 위치도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비밀입니다."

그는 긍정의 의미로 씩 웃었는데 그제야 메마른 얼굴에 약간이나마 습기가 스미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우릴 데려다 준 뒤에는 어디로 갈 겁니까? 어디 갈 산속이라도 있어요?"

"글쎄, 그 장인들이 산다는 산속 조용하던데 아예 거기에 자리잡을까나?"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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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오는 원정대는 실제 원정대나 실제 인물과는 전혀 관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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