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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백여 년 전, 그곳의 한 카페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왕자비로 내정되었다가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어 꿈이 좌절되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납치가 아니라 사랑의 도피였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마리아노플 시민이라면 카페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보면 모르는 체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 온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간 소녀는 귀걸이를 꺼내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슬쩍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당신의 것인가요?"

부드러운 남자 목소리에 소녀는 놀라 귀걸이를 움켜쥐며 돌아섰다. 흰 셔츠에 검은 바지, 그리고 검은 조끼. 오른쪽 가슴에 달린 명찰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사파이어, M. Rolland]

어딘가 카페 직원인 듯 했다.

"뭐...뭐에요?"

"당신의 것은 아니군요."

소녀가 얼굴을 붉히며 반발하기 전에 남자는 손을 들어 소녀의 귀 부근을 가리켰다.

"잃어버린 것이라면 한 쪽에 같은 귀걸이가 걸려 있었을테니까요"

소녀는 할 수 없이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주운 것을 시인할 수 밖에 없었다.

"저... ... 그냥 떨어진 걸 주... 주운 것 뿐이에요!"

남자는 머리를 끄덕였다.

"훔칠 배짱은 없으신 것 같네요. 그렇지만... ..."

"고발은 말아주세요. 주운 카페에 맡기겠어요."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남자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사실 귀걸이를 주운 것은 제게 문제가 아니에요. 그저 드신 음식값만 계산해주시면 됩니다."

"네?"

당황한 소녀가 반문하자 남자는 소녀가 뛰쳐나온 카페를 가리켰다.

"저희 카페에서 홍차와 부라우니를 드시다 말고 나오셨어요. 그런데 계산 안하셨고요. 무전취식입니다. 주인없는 귀걸이를 주운 것은 모르겠지만 이건 확실히 절도에요."

"아... ..."

남자명찰의 카페 이름은 그녀가 뛰쳐나온 그 카페였다. 안심하며 긴장감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부끄러움이 밀려들어왔다. 얼굴이 더 빨개지며 소녀는 어쩔 줄 몰라했다.

"죄...죄송해요. 전... 그저... ... 그... 먹은 걸 계산 안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

"그럼, 들어가셔서 마저 드시고 확실히 계산해주세요."

남자가 카페 문을 열어주어 소녀는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소녀가 입구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남자는 카운터로 갔다. 소녀는 손 안의 귀걸이를 쥐어보다 카운터의 남자에게 향했다.

"저, 롤란드씨. 이거 저 의자 틈새에서 주운 거에요."

"그냥 가지셔도 무방할텐데요?"

"처음에는 그냥 주워 가지면 될 것 같았는데 생각해보니 나중에 찾는 분이 나타나면 여기가 곤란해지실 것 같아서요."

롤란드는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가지셔도 되긴합니다. 사실 주인을 알고있습니다만 그 귀걸이 주인은 여기서 그것을 찾지는 않으실겁니다."

"네? 찾지 않을거라고요? 나머지 하나도 못 쓰게 되는데도요?"

롤란드는 머리를 끄덕이며 더 이야기하려 했지만 계산하려는 손님들이 소녀의 뒤에 서자 말했다.

"죄송하지만 잠깐 기다려 주시겠어요? 자리에서 마저 드시고 계세요"


홍차는 잠깐 사이 꽤 식어있었다. 소녀는 사파이어 귀걸이를 탁자에 올려놓고 만져보며 롤란드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주인을 아는데 찾아 줄 생각도 없고 그 주인도 찾을 생각을 안 한다니. 롤란드가 파렴치하거나 귀걸이 주인이 거부라 사파이어 쯤은 아무 것도 아니거나. 아니면 롤란드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어 눈감아 주는것일거나.

김이 오르는 진한 푸른색 찻잔이 테이블에 놓여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롤란드가 능숙하게 찻잔을 두 개 내려놓은 다음 그녀의 건너편에 앉았다.

"오래 기다렸어요?"

급한 계산을 처리하고 다른 직원에게 카운터를 맡기고 온 듯했다.

"아뇨. 이건 안 시켰는데요."

"서비스에요. 기다려준 것에 대한"

소녀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도시사람들은 어수룩한 촌사람의 눈 앞에서 코도 베어갈 거라는 소문을 듣다 나온 그녀였기에 뜻밖의 호의에 호감이 간 탓이었다. 그리고 종업원의 차림새지만 말하는 태도와 무료 음료를 봤을 때 그는 이 카페의 주인이었다.

"아, 이거에 관한 이야기를 알려 주신다고.주인이 안 찾을거라고 했죠? 그래서 찾아 줄 필요도 없는 건가요?"

"네. 안 찾아요. 찾을 필요가 없어요. 그분은. "

남자는 찻잔을 들고 한모금 음미하더니 말을 이었다.

"차 맛을 보세요. 저희 카페가 자랑하는 블루라벨 홍차랍니다. 손님은 이 지역 분이 아니시죠?"

롤란드의 권유에 찻잔을 들면서 소녀가 머리를 끄덕였다.

"제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듣고 나면 그 귀걸이를 주운 걸 후회하거나 최소한 찝찝해할텐데 차라리 그냥 가져가시는 것이 어떨까요?"

저렇게 나오니 더 강렬한 호기심이 들었다.

"듣고 싶어요."


[이 카페거리에는 으스스한 이야기가 있답니다. 바로 이 거리에서 떨어트린 장신구를 주우면 안 된다는 것 입니다. 왜냐구요? 바로 이 거리에서 살해당한 여인이 떨군 것이라는 이야기 때문이지요.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답고 고귀한 여성이었다고 해요. 어느 정도냐면 왕자비로 내정될 정도로요. 그러나 그녀는 왕자비가 되지는 못했어요. 되기 직전 낯선 남자에게 납치 당했고 험한 일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혹시나'라는 소문 때문이었죠. 다른 이야기도 있긴해요. 그녀가 따로 연인이 있어 야반도주를 했다고요. 그녀는 여기까지 끌려오는데 자신을 구출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착용했던 장신구를 하나하나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거리에 떨군 장신구는 그녀가 떨어뜨린 것이고 줍지 말아야 할 것이 되었지요. ]


소녀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이야기의 허점 때문이었다.

"이상한 이야기네요. 누가 여기까지 아가씨를 납치해왔을까요? 그리고 주인이 분명한데도 유령이 떨어뜨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도 이상하고요. 무엇보다 유령이 떨어뜨렸다는 것만으로 잃은 것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 제일 이상해요. 장신구라면 대체로 귀금속과 보석으로 만들어져 있는 비싼 물건이잖아요."

롤란드도 소녀의 의문에 동의했다.

"그렇죠. 첫번째 의문때문에 연인과 야반도주설이 나왔죠. 왕자비가 못되었더라도 귀한 집 아가씨를 또 납치하게 놔 두었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왕자비가 되려고 연인을 배신한 아가씨를 원래 연인인 남자가 납치해 설득하려다 마음대로 안 되자 아가씨를 살해했다는 설이 나왔죠. 두 번째 의문에 대한 답은 이 거리에 떨어진 장신구는 잃어버린 사람의 실수가 아니라 유령의 손을 거쳤기 때문이죠."

"그런 이유로 이런 값비싼 물건을... ..."

새끼 손톱만한 사파이어가 달린 정교한 세공의 금 귀걸이가 지는 햇살에 반짝거리는 것을 보며 소녀는 부러움에 한숨을 쉬었다. 부자들은 유령의 손이 탔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런 물건을 잃어버리고도 쉽게 포기하나보다.

"소매치기들은 여기서 훔치면 수지맞겠어요. 도둑맞아도 찾지 않을 것 아니겠어요."

"하하, 도둑이 꺼내간 것도 유령이 꺼내 간 것으로 여길테니까요? 그런데 이 거리에는 어떤 소매치기도 여자 장신구에는 손을 대지 않는답니다."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롤란드가 말했다.

"마지막 의문에 대한 답 때문이지요. 잃어버린 것이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라도 안 찾고, 누군가 떨어뜨린 것을 줍거나 소유주에게서 떼어내지도 않죠."

"뭔가 저주라도?"

정말 가지고 있기 찝찝하거나 두려운 저주가 존재하는걸까 생각하며 소녀는 귀걸이를 바라보았다. 창을 거쳐 들어온 노란 빛에도 물들지 않는 새파란 빛은 그저 맑기만 했다.

"저주라면 저주지요."

롤란드의 어조는 가벼웠으나 그와 반대로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주변 테이블에도 사람이 있고 거리에는 사람이 가득이고 건너편 카페도 사람으로 가득한데 혼자만 분리된 공간에 있는 느낌이었다.
불안감이 천에 물을 들이듯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왔다.

"이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주우면 그 장신구의 주인을 꼭 찾아줘야 한다는 거에요. 장신구의 주인을 찾을 때까지 이 거리를 벗어날 수 없다더군요. 아, 장신구의 주인이란 실제 주인, 그러니까 이 물건을 샀고 판 적도 없는 소유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 카페거리에서 실제 소유주 몸에서 떨어진 장신구는 일단 유령의 것이 되거든요. 즉, 유령 아가씨를 찾아봐야 하는거죠."

소녀는 눈썹을 모으며 말했다.

"말도 안 되요. 이런 이야기를 모르는 타지 사람이 한 둘이 아닐텐데 지금 껏 이 거리를 떠도는 사람 이야기는 들은 적 없어요."

"글쎄요. 그냥 괴담일지도 모르지만. 그 장신구의 주인인 유령아가씨는 그걸 찾지 않을 거에요. 주운 사람이 찾아주길 바랄테니까요. "

소녀는 몸을 조금 떨었다. 아닐거야. 코 베어 간다는 말은 들었어도 유령이라니. 그러나 롤란드가 말한대로 이 귀걸이를 가지고 가기에는 찝찝했다.

"이야기 감사합니다. 그... 그렇지만 이 귀걸이는 여기 맡겨놓을게요. 저...저기 제가 시킨 음식은 얼마죠?"

말도 안된다고 치부하기는 했지만 불안감이 든 소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겁지겁 찻값을 치르고 롤란드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계산대에 사파이어 귀걸이를 올려놓고 카페 밖으로 나왔다.

안에서 볼 때는 사람이 많아 보이고 밝았는데 해가 졌는지 거리는 캄캄하고 사람도 없었다. 문 닫힌 카페들 안은 밝고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뭐지? 이상해'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슴으로 손을 올리다 주먹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 손을 폈다. 손바닥에는 분명 카페 카운터 롤란드에게 맡긴 그 귀걸이가 있었다.

"이...이게... ..."

덜덜 떨리는 손을 다른 쪽 손으로 움켜잡는데 뒤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로...롤란드 씨?"

소녀가 몸을 돌려 흰 셔츠, 검은 바지, 그리고 검은 조끼를 입은 키 큰 그림자를 발견한 순간 머리채가 잡혔다.

"까악!"

"넌 뭐야! 그건 그녀 거잖아! 그녀를 찾으러 온 거냐?! 감히 뒤를 쫓다니, 너도 가만두지 않겠어!"

키큰 남자는 고함을 치더니 소녀의 머리채를 잡고 카페 거리의 북쪽 끝을 향해 끌고 가기 시작했다.
진짜 저주가 무엇인지 소녀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왕자비가 될 뻔한 아가씨만 희생자가 아니었다. 그녀가 유명해서 그녀의 이야기만 남은 것이다. 아가씨는 자신을 구해주기 바라며 장신구를 떨어뜨리고 줍는 사람이 구출자가 되고 아가씨를 살해한 자는 구출자를 아가씨가 살해당한 장소로 끌고가 살해할 것이다.

"아, 아니에요. 난 그 아가씨를 찾으러 온 게 아니에요. 도와줘요! 제발!"

울면서 끌려가며 소녀는 사정했다. 그러나 남자는 사정없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질질 끌려가는 소녀의 발자국 끝에 소녀가 들고 있던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이 떨어졌다.


"역시 그 아가씨도 데려간 모양이네. 정신이 들면 다시는 남의 물건을 막 줍지 않게 되겠지. 그나저나 이번에는 거기냐? 많이 못 갔네."

폐점 시간이라 입간판을 정리하기 위해 나온 롤란드는 가게 앞 입간판 근처 먼지 쌓인 곳에 떨어진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를 보고 중얼거렸다. 또 몇 년을 기다려야 이 귀걸이가 가게 앞에서 사라질 기회가 오려나. 찻값을 포기하고 그냥 가지고 가도록 내버려둘 것을 그랬나 보다.

"하여튼... ... 카페 이름이 문젠가? 에메랄드로 바꿀까 보다. "

롤란드는 스스로에게 혀를 차며 입간판을 접었다. 그러자 귀걸이는 바닥에 떨어져 먼지에 묻혔다. 그래도 아침이 되면 햇살에 파란 빛이 반짝이며 유령아가씨의 간절한 마음을 호소하겠지.

마리아노플 카페거리에 떨어진 장신구는 줍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 장신구의 주인은 유령이며 주운 사람이 주인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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