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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나를 원정대장이라 불렀다. 다른 누군가는 나를 국왕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인사했다.
현재 매일 내가 듣는 호칭은 777 전사이다.
우리 마을에서 칠백칠십 일곱 번째로 태어났다며, 다루 감별사가 붙여준 나만의 이름이었다.
"어이, 777. 이제 행복할 시간이야. 저기, 너의 주인이 다가오고 있어!"
이웃의 동료가 소리치는 방향을 바라보니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오늘도 이걸 먹으란 거야?'
남자가 내민 건 조합 사료였다. 토끼풀, 호박, 짚단이 6:3:2의 비율로 섞인 맛없는 사료다.
물론 내 옆집의 동료는 배가 고픈 척 징징거리며 꼬박꼬박 두 개씩 챙겨 먹지만...
그래,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다. 현재 나는 한 마리 젖소다. 다루 감별사가 극찬하며 손수 이름까지 붙여준 우리 마을에서 알아주는 젖소다.
한때 몇 개의 영지를 누비던 나였는데, 하룻밤 눈을 뜨고 나니 몸이 변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기억을 더듬어보자. 마지막으로 내가 외쳤던 말이 생각났다.
"야, 드디어 축산 명인이 되었다!"
==========

그렇다. 나는 축산 명인이 꿈이었다. 푸른 소금 상회의 의뢰들을 들어주고 간신히 얻어낸 조그만 밀짚모자 텃밭을 받기 전부터

나는 축산의 명인이 꿈이었다.

뭐,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동물들이 좋았고, 나에게 그들을 돌봐주는 시간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텃밭에서 작은 병아리를 닭으로 키워 달걀을 받아낸 기억부터, 나의 영지에서 커다란 젖소로 축산의 명인이 된 그날까지..

그렇다. 지금 이 젖소.. 내가 들어온 이 젖소도 분명 내가 키운 젖소중 한마리일 것이다.

일주일 전부터 난 눈앞의 빌어먹을 나무만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왜인지 모르게 하필 내 눈 앞에 거대한 나무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던 것이다.

몸을 돌릴수도, 고개를 돌릴수도 없었다. 그저 정해진 앞만 바라볼 뿐..

그나마 옆에서 두끼씩 꼬박꼬박 얻어먹는 이놈 앞에는 나무가 없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내게 해주곤 했다.

이놈도 나를 다루 감별사가 붙여준 이름인 '777 전사님'이라 부르곤 했다.

777 전사.. 글쎄.. 딱히 내가 인간이던 시절에 지어준 이름은 아니었다. 분명 다루 감별사가 멋대로 붙여준 이름일 것이다.

'조합 사료 맛있어! 조합 사료 = 오마이갓!'

뒤쪽의 저 망할 소는 오늘도 조합 사료를 찬양하고 있었다.

소가 된 이후부터, 음메 거리는 소리가 이상하게도 언어로 번역되어 머릿속에서 생각과 뒤섞인다.

'시끄러 이 미친 소야!'

'오오, 조합 사료시여!'

열불이 나서 호통을 쳤지만, 저 소는 눈물을 흘리며 조합 사료를 먹는데 전념할 뿐이었다.

저 젖소를 보자니, 아니, 사실 보이진 않았지만.. 유독 내가 만든 조합 사료를 맛있게 먹던 소가 기억났다.

잠깐 나무를 살펴보니 소를 키우던 영지에서 이런 나무를 본 기억이 났다.

'...울둘루?'

'그야말로 자애로운... 으.. 응?'

일주일 동안 무슨 말을 걸어도 찬양에 집중하던 소가 드디어 관심을 보였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거야?'

'울둘루가 맞아? 유독 더운걸 싫어해서 자주 씻겨줬던 그..'

그렇다. 울둘루는 더위를 잘 탔었다. 처음 키운 소인만큼 더위를 잘탄다는것에 신경을 써서 자주 씻겨줬던 기억이 났다.

'너.. 너 신참이 그런걸 어떻게.. 설마 예언의 젖소같은 그런건가?'

점차 기억이 돌아왔다. 축산 명인이 된 그날은 울둘루에게 특별한 사료를 준 날이었다.

'이봐 울둘루, 혹시 사료에 네잎 토끼풀이 들어있지 않아?'

울둘루는 내 말을 듣고 사료를 살펴보는듯 했다.

'이.. 있어. 아니, 있습니다! 예언의 젖소시여!'

그래.. 그날 난 울둘루에게 특별히 네잎 토끼풀을 넣어주었다.

맛에 큰 차이는 없겠지만, 그저 행운을 기리는 의미의 네잎 토끼풀이었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그래.. 그리고 분명히 식사가 끝난 뒤 우유를 짜겠다는 신호인 방울소리를 냈었다.

그리고 나는..

「서걱」

"음머어움!!"

'안돼! 람투르! 주인님 어째서..!'

「서걱」

"음머어억!"

등뒤로 소들이 도축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안돼요.. 주인님 제발..!'

「서걱」

"음므쿽!"

등 뒤로 그들의 절망에 찬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열둘.. 열셋.. 기억이 또렷해 질수록 가슴엔 섬뜩한 기분도 또렷해져갔다.

'예.. 예언의 젖소시여.. 우린 모두 죽는건가요? 오늘이 종말의 날인겁니까?!'

「스릉..」

'히익..!'

그렇다.. 그 토끼풀은 울둘루의 명복을 빌어주는 행운의 토끼풀이었다..

「서걱」

"음머힝!"

그렇게.. 울둘루를 도축하고.. 분명히..

'하아..하아..'

"이제 너만 남았구나.. 파피루야.."

「스릉..」

"내가 너를 기억하마.."

남자.. 그러니까 칼을 든 내 팔이 높이 치솟았다.

아니.. 사실 그 모습은 못봤다. 나무에 비친 그림자가 보였을 뿐..

'안돼.. 제발..!"

「서걱」

목 뒤에 뜨끔한 고통이 찾아왔고, 난 그자리에 힘없이 쓰러졌다.

의식이 멀어져가는 그 순간.. 난 '나'의 외침을 들었다.




"야, 드디어 축산 명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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