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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용사가 무슨 바느질이야? 정말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야?"

마지막 바느질을 끝낸 날 바라보던 동료가 물었다. 대답 대신 눈을 감고, 나는 그곳을 떠올렸다.
눈을 감자 떠오르는 아련한 공간의 기억이 그곳으로 바로 데려다 줄 것 같았다.

촌장님은 별일 없으실까? 그 소녀는 이 인형을 마음에 들어 할까?

새로운 문명을 찾아 모험을 떠나게 된 모든 것의 시작, 그곳으로 나는 오늘 돌아간다.
동료에게 손 인사를 건네고, 이지의 아들에 올라탔다.

"자, 이제 가보자!"

바다를 가르는 질주가 시작되었다.


차가운 바닷물은 처음 고향을 떠났을 때 맞았던 빗물을 상기시키기 충분했다.
이제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나의 모험의 시작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떠넘겨진 빚더미에 달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밤에 검 한 자루에 의지한채 도망치듯 길을 나서야만 했다.

지금 이 길을 나서면 언제 다시 이 고향 땅을 밟을 수나 있을까?

그런 망설임에 몇번이고 그 밤에 맞았던 비는 지금 이 대양의 추위보다도 차가웠다.

문득 뒤를 돌아보아 자신이 떠나온 원대륙을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멀리 떨어진 그 곳에선 자신을 걱정하며 배웅하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째서 여기까지 와버렸을까?"

새로운 문명을 찾는다는 꿈은 원치 않았던 외로운 여행길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목표였다.

나는 지금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분명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꿈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반드시 돌아가고 싶은 고향을 생각하며 여행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것이 꿈에 이끌려 한명씩 동료들과 만나게 되고 각종 모험과 음모에 연루되다 정신을 차려보니 모험의 발자취는 대륙을 가득 채운 뒤 바다를 건너 이곳에 도착했다.
모험이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혼자서 떠난 밤은 춥고 외로웠지만 모두가 함께하는 밤은 축제와도 같았으니까.
하지만 모험을 계속하며 내 명성이 높아질수록 진정 가고 싶었던 곳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렇게 원대륙 원정에 성공하고 이곳의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데 성공하여 용사라는 칭호마저 얻어버린 지금 고향은 너무나도 멀었다.

이전 나를 고향에 가지 못하게 묶었던 것이 금화주머니였다면 지금 나를 묶는 것은 위정자들의 이해관계라는 튼튼한 쇠사슬이다.

큰 명성을 얻은 나를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 선수를 빼앗긴 나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 예전에 악연으로 눈에 불을 키며 내 목덜미를 노리며 칼을 갈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이해관계에 얽메여 나는 원대륙에 발이 묶일 수 밖에 없었다.
누구도 내게 이 대양을 건널 배를 빌려줄 수 없었다.
심지어 고향의 소식을 들을 편지 한 통마저 금지되었다.
그들이 내게 바라는 것은 평생 원대륙에 얽메여 헤메이는 것.
나는 견고한 쇠사슬에 눌려 그대로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동료가 만들고 있던 작은 인형이었다.
보라색으로 물들인 천 옷을 입고 있는 작은 소녀의 인형.

그 보라색은 고향의 소꿉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꽃 색을 상기시켰다.
그러고 보니 그 소녀의 이름이 무엇이었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은?
한번 상기되기 시작한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고향의 향수를 자극했다.

아! 돌아가고 싶다.

그날로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배는 구할 수 없었다.
내게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원대륙에서 친분을 쌓을 수 있었던 이지의 아들 뿐이었다.
많은 짐도 꾸릴 수 없었다.
내가 떠난다는 것을 눈치챈다면 나는 감금당하거나 심하면 처형될 가능성마저 있었다..
결국 내가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고향을 떠나온 그 날처럼 조금의 식량과 한자루의 검, 그리고 동료에게 배워서 만든 소녀를 생각하며 만든 인형 뿐이었다.

내 무모한 계획을 알게 된 동료들은 단순한 농담으로 여겼다.
당연했다. 원대륙에 올 때는 목숨을 걸며 한달 이상 항해를 해왔다.
그런 거칠고 긴 항로를 이지의 아들에 몸을 의지하는 것은 자살 행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방법만이 고향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라면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어느새 시야에서 원대륙이 사라졌다.
나는 이지의 아들을 다독이며 내 스스로에게 말했다.

"자, 가자! 고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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