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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밤의 이야기 공모] - "이웃" /유병희 / (연결된 이야기 1806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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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옆집이 시끄럽다.
얼마 전 이사를 온 페레 인듯한데 소란스러운 소리에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버렸다.
궁금한 마음에 새로운 이웃을 만나러 어제 짜둔 우유 몇 병을 선물로 들고 집을 나섰다.

'욕조?'

검은색 꼬리를 가진 페레 여성 하나가 낑낑대며 커다란 인어 한 마리가 들어 있는 욕조를 집안으로 옮기고 있다

"저기 도와드릴까요?"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본 페레 여성은 앞발…. 아니…. 손으로 땀에 젖은 얼굴을 한번 훔치더니 혀로 털을 고르고는 그대로 손을 귀 뒤로 연신 쓸어 넘긴다.
매일 집안에서 잠만 자며 뒹굴고 있는 지난번 축제 때 받은 고양이가 크면 이런 모습일까?
털을 다 고른 후 내 손에 들린 우유병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우유를 한 개 집어 벌컥벌컥 마셔버린다.

"낚시 대회 우승 선물로 받은 거에요. 욕조만 필요했는데 인어까지 담아서 보내왔네요"

뒷말은 궁시렁대며 작게 중얼거려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왠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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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를 좀 더 자세히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인어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인어가 사람과 비슷한 지능을 갖고 있으며, 이 때문에 매우 계획적으로 바다 사람들을 유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인어의 상반신은 매우 아름다운 여성의 그것이지만, 지능은 생선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한 마디로 말도 안되게 아름다운 인면어 정도로 정의하는게 옳다.

흠 하지만 정말 아름답군. 정말..정말..유혹적.....

“이봐요. 좀 비켜 봐요.”

‘앗?’

거의 욕조 안까지 몸을 기울이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렇다. 인어가 사람을 유혹하는것은 오해가 아니다. 인어가 뜻 없이 우는 울음소리에 노련한 조타수마저도 저도 모르게 배를 울음소리로 인도 한다. 인어의 모습이 선장의 눈 안에 들어오면, 배를 집어삼킬게 틀림없는 거대한 소용돌이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사소한 장애물로 전락한다.

하지만 인어의 마력이 역시 고양이한테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여자인 나마저도 인어에게 유혹 당하는걸 보면 성별은 문제가 아닐터. 그렇군. 아까 왠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든 것은 단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하리하란 속담이 생각나서였던 것 같다. 저 고양이에게는 저 대단한 인어가 그저 한 마리 생선에 지나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

페레는 생선(?)에게 아직 예술 작품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기로 한 모양이다. 잘 지어졌지만 넓지는 않은 누이아식 주택에서 어떻게 하면 한 치라도 더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욕조를 이리 틀어보고, 저리 틀어본다. 이런걸 보면, 정말 사람과 다름없어 보인단 말이지. 아닌가. 자기의 안식처를 꾸미는데 열의를 보이는건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고양이도 마찬가지이려나. 아직 얼굴은 여전히 고심하는 표정이지만, 검은색 꼬리가 다시 살랑살랑 움직이기 시작하는걸 보니 어느 정도 만족한 모양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우유 한 병을 까서 페레에게 건네었다. 페레 역시 어떠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제스처 없이, 매우 당연하다는 듯 우유를 들이켰다.

“욕조가 필요하다면서요. 이렇게 인어가 차지하고 있으면 목욕을 못하시지 않겠어요?”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몸단장 방법은 없다는 듯, 우유 묻은 혀로 털을 고르려 할 참이던 페레가 흠칫 하더니 서둘러 대답한다.

“목욕 문제는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죠.”

왠지 물이 아닌 우유가 담긴 욕조 앞에서 좋아하고 있을 고양이가 상상되는걸 왜일까. 우유 한 병을 더 건네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아직 못했군요. 옆집에 사는 루나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내 소개를 듣자 페레가 어색한 표정 반, 미소 반으로 응대해준다.

“바람의 가호가 함께하길. 푸른 갈기 사자의 딸 리오레 입니다.”

과연, 페레는 정착이라는것 자체에 태생적인 어색함이 있는 종족이다보니, 이웃사람이라는 개념 자체도 어색하겠지.

“푸른 갈기 사자의 후손이셨군요. 그래서 초원에서뿐만이 아니라 낚시 같은 바닷일에도 능하시나 봅니다.”

“오해에요. 낚시는 그냥 취미일 뿐이고, 바다는... 네 그냥..그냥 취미에요.”

예로부터 푸른 갈기 사자의 후손들 중에는 바다를 초원같이 누비는 능숙한 뱃사람들이 많다. 바다 낚시란 결코 가벼운 취미처럼 쉽게 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뛰어난 순발력, 강한 근력과 지구력, 매와 같은 관찰력, 바다괴수나 약탈자에 대한 깊은 주의력이 있어야 한다. 사실, 푸른 소금 상회에서 주최하는 낚시 대회는 대양 어종만을 쳐주기 때문에 여기서 우승 할 정도면, 굉장히 많은 경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 실력과 경험을 갖고 있는데도 굳이 ‘고대의 숲’과 같이 한적한 곳에 정착하려 하는 이 페레의 과거는 과연 어떨 것인가.





  • 감자님 @에안나 | 55레벨 | 흑마법사 | 누이안
    와우 안읽어봤느대 재미있네요
    2014-11-0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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