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나를 원정대장이라 불렀다. 다른 누군가는 나를 국왕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인사했다.
현재 매일 내가 듣는 호칭은 777 전사이다.
우리 마을에서 칠백칠십 일곱 번째로 태어났다며, 다루 감별사가 붙여준 나만의 이름이었다.
"어이, 777. 이제 행복할 시간이야. 저기, 너의 주인이 다가오고 있어!"
이웃의 동료가 소리치는 방향을 바라보니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오늘도 이걸 먹으란 거야?'
남자가 내민 건 조합 사료였다. 토끼풀, 호박, 짚단이 6:3:2의 비율로 섞인 맛없는 사료다.
물론 내 옆집의 동료는 배가 고픈 척 징징거리며 꼬박꼬박 두 개씩 챙겨 먹지만...
그래,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다. 현재 나는 한 마리 젖소다. 다루 감별사가 극찬하며 손수 이름까지 붙여준 우리 마을에서 알아주는 젖소다.
한때 몇 개의 영지를 누비던 나였는데, 하룻밤 눈을 뜨고 나니 몸이 변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기억을 더듬어보자. 마지막으로 내가 외쳤던 말이 생각났다.
"야, 드디어 축산 명인이 되었다!“

순간 파노라마처럼 기억들이 스쳐지나간다. 그 말을 외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근육질의 팔과 다리, 사랑스럽도록 통통하고 탄력있던 내 배는 사라지고 병든 젖소 마냥 비쩍 마른 팔과 다리 물렁물렁한 배만 남아있었다. 난 777전사 젖소 였는데 .. 우리 젖소 마을에서 나의 몸을 따라 올 수 있는 자가 없었는데!! 이 어찌된 것인가.
무언가 잘못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 축산 명인이라고 외친거?
아니야 그 후일꺼야 . 그렇다면.. 그 후에 짚단을 먹고 잔 기억밖에 없는데.. 그럼 내가 먹은 짚단이 문제인 것인가? 나에게 짚단을 준 남자는 누구지? 다루 감별사가 소개시켜줬는데..
그 짚단.. 어쩐지 그날따라 별로 먹고 싶지 않은 느낌이 들었었는데.. 정말 그 짚단이 원인인 것인가. 아니야. 함부로 의심하면 안되. 확실해질 때까지 지나친 상상은 하지말자.
우선 그 짚단을 나에게 먹인 남자, 그 남자를 찾아야겠다. 그 남자라면 내가 이렇게 변하게 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몸상태로는 남자를 찾기는 커녕 동네 한바퀴 도는것도 힘들다. 아무래도 먼저 다루 감별사를 찾아가봐야겠다. 다루 감별사는 무언가 알고 있을거야.
쾅!쾅!쾅!
"이봐, 다루 감별사. 문 좀 열어봐 !! 내가.. 내 몸이!! 이상해졌어! 급해! "
덜컹 덜컹
"아..진짜.. 누구야 한참 꿀 같은 단잠을 자고 있었는데. 음? 누구.. 신지?"
"날세. 777전사 . 나 모르겠어? 내 이름 당신이 붙여줬잖아."
"아~ 응? 근데 몸이 왜 이런거야 777. 왜 이렇게 변해버렸어?"
"모르겠어 . 도대체 내 몸이 왜 이렇게 허약해졌는지."
"언제부터 몸이 이렇게 된거야 ? "
"축산명인이 되었다고 외치고.. 당신이 소개시켜준 그 남자가 준 짚단을 먹고 잠든 기억밖에 없어."
"누구? 내가 누구를 소개 시켜줬다고? 난 소개시켜준 적이 없는데 ?"
"무슨 소리야! 당신이 타지 사람을 소개시켜 줬잖아!"
"아니야 777. 요 며칠 우리 마을에 찾아온 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 이상하다. 분명 감별사가 소개시켜줬는데 ..
다루감별사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는 빙글빙글 돌며 깨질듯이 아파왔다. 그리고 난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내 눈은 빨개지고 나를 건드리는 자는 다 없애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봐! 777. 정신차려! 이봐!!"
다루감별사의 외침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정신이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여러분 !! 777이 이상해졌어요! 피하세요!" 다루감별사는 777젖소를 집에 가두고 문을 잠가버렸다. 그러고는 미친듯이 뛰어가 마을 젖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헉 헉 헉
"777이 이상해졌어요! 비쩍 마른 모습으로 날 찾아오더니 갑자기 분노하기 시작했어요! 나도 죽일 기세였다구요!!" 그 때 젖소 마을 촌장님이 다가오셨다.
"이보게. 다루감별사. 뭐 어떻게 되었다는 건가."
다루감별사는 777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마을 촌장님께 해드렸다.
"음.. 아무래도 777은 주술에 걸린 듯 하군. 자네는 보지 못한 그 남자. 그 남자가 자네에게도 환술을 걸어 눈을 멀게하고, 777에게는 저주를 내린 듯 해."
다루감별사와 마을 사람들은 모두 경악의 표정으로 촌장을 쳐다보았다.
“어머 어떡해.. 한 때 우리 젖소마을의 원정대장이었던 그가.. 전사로 강등도 모자라 저주에 걸렸다니.”
“그러게. 그때 그 사고만 치지 않았더라면 아직 우리를 이끌고 있었을텐데.”
마을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촌장님. 왜 하필 777만 저주를 내렸단 말입니까."
다루감별사는 의문이 생겼다.
"우리 마을은 오래전부터 평화로운 마을이었지. 이 숲을 보게나. 그위오니드 숲. 엘프들의 탄생지. 자연이 숨 쉬었던 이곳은 너무 지나치게 평화로웠던게야. 지나침은 화를 불러오는 법. 그 지나친 평화가 결국엔 독이 되어 시기를 사게 되었고 그 결과 저주를 받게 된거야. 거기에 777은 저번 사건으로 저주에 걸리기 쉬운 몸이었던 것이지. 그가 인간이 되기 위해 썼던 흑마술들이 그에게 독이 되어 몸에 남아 있었던걸세. 지금은 777 하나뿐이지만 저 저주가 번지게 되면 우리도 언젠가 감염될걸세."
"헉! 촌장님 !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주가 번지게 냅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맞아요. 777 때문에 우리 모두 저주에 걸릴 수는 없어요!”
웅성웅성
사람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촌장을 바라보았다.
"저 저주를 푸는 방법은 한가지네. 이 마을로 들어오는 여행객이 있을걸세. 그 사람들이 도와주어야하네"
"그 여행객들이 우리를 어떻게 도와준단 말입니까"
"그 사람들이 이 숲에 나는 신비의 사과를 777이나 저주가 걸린 이에게 먹인다면 그 저주는 풀리게 될 것이야."
“정말 먹이기만 하면 저주가 풀리는건가요 ?”
“아닐세. 사과를 먹게 되면 저주가 빠져나와 그 저주로만 이루어진 괴물이 나타날걸세. 그 괴물을 처치해야하지. 저주가 강할수록 더 악한 괴물이 나타날거야.”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그냥 도와줄리는 없지 않습니까."
마을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촌장을 쳐다보았다.
"여행객들에게는 음식과 음료가 항상 부족한 법. 우리 마을에서 만든 음식과 음료를 준다면 그 사람들은 흔쾌히 우리의 부탁을 도와줄 것이네. 그들의 도움만이 우리 젖소 마을을 지킬 수 있다네."
그 순간 여행객 무리들이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