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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 깊숙한 곳, 전 대륙의 의뢰를 받아 우수한 물건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장인들의 비밀스런 장소.
그곳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 역시 몇이 되지 않으며, 이곳의 위치는 철저하게 비밀로 부쳐지고 있다.


사건의 그 날.
이슈바라 승전 축제 선물로 지급했던 고양이 가구에 문제가 생겨 한바탕 난리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이곳을 찾아오는 이는 한 달에 한 번쯤 찾아와 여러 곳에서 받은 의뢰들을 전해주는 가구 상인들뿐인데, 그 날 이곳을
찾아온 아리폰 역시 그 일로 찾아왔을 거라 모두가 예상했다.
하지만 아리폰의 곁엔 수상한 행색을 한 이가 서 있었고, 아리폰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벌벌 떨며 우리를 가리켰다.
"…저…저자들입니다."
그러자 아리폰과 함께 들어온 낯선 방문자는 아리폰 허리에 겨누고 있던 칼 끝을 우리에게로 돌리며 마른 입술을 열었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낯선 방문자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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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가 좋다."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였지만 그 주위에 있는 사람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나직하게 울려퍼졌다. 동시에 모두가 벙찐 표정이 되었다. 다시 괴한의 입이 열렸다.

"나는 귀여운 게 좋다. 고양이가 좋다. 젤리같은 그 발바닥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좋다."

마을 사람 모두의 시선이 괴한에게 쏠렸다. 옷 대신 무슨 이상한 붕대를 온 몸과 얼굴까지 칭칭 감싸고 그 위에 쓸 데 없이 깃을 힘껏 세운 로브를 덮은 괴한은 정말 말 그대로 괴한怪漢이었다. 수상함의 끝을 달리는 그의 행색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마을 사람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수군수군 거리자 괴한이 치켜 뜬 칼을 아리폰의 목에 가져다 댔다.

"으아악! 왜 이러십니까! 시키는 대로 다 했잖습니까!"

등을 찌르던 칼이 사라져 이제야 겨우 한숨을 돌리던 와중에 이번엔 칼이 목까지 들어오자 아리폰이 눈물 콧물 할 거 없이 다 쏟아내기 시작했다. 보다못한 내가 앞으로 나섰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그러자 괴한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사실 코를 제외하고는 눈까지 다 붕대로 감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날 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괴한이 나한테 말을 걸었다.

"나는 고양이가 좋다. 많이 좋다."

"...그렇구먼."

"고양이는 귀엽다."

"...그렇지."

굉장히 떨떠름하게 대답 했지만 사내는 내 말에 만족한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괴한이 아리폰이 메고 있는 배낭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번 년도 하반기 히트 상품이었던 고양이 가구였다.

"귀여운 고양이, 다리 부러졌다. 마음이 아프다."

"이것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겐가?"

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리폰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이 친구는 왜?"

"나한테 고양이 팔았다. 다음 날 고양이 다리 부러졌다. 마음이 아프다."

상황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게 된 건지는 알겠다. 근데 칼은 왜 든거지? 뭔가 말을 못 알아 들어서 오해가 생긴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뭐랄까, 왠지 저 비쥬얼을 보니 굳이 묻지 않아도 대충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괴한에게 물었다.

"고양이 다리를 고치러 왔나?"

끄덕끄덕끄덕끄덕!
드디어 알아줬구나! 반갑다는 듯이 위 아래로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괴한이 어쩐지 귀엽게 보였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장인이 망치를 몇 번 뚝딱이자 부러졌던 고양이 다리는 금새 멀쩡하게 고쳐졌다. 거기에 솜씨를 더 부려 나무를 깍아 만든 작은 중절모를 고양이 머리 위에 얹었다. 붕대 때문에 보이지는 않지만 괴한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 됐네. 마음에 드는가?"

끄덕끄덕!
모자 쓴 고양이를 품에 안은 괴한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마을 사람들이 웃으면서 배웅하자 괴한은 고양이와 함께 꾸벅 인사를 하고 마을을 떠났다. 그 모습을 바닥에 쓰러지듯 앉아 똥 씹은 표정으로 허탈하게 바라보는 아리폰을 뒤로 하고 마을 사람들은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가 뚝딱뚝딱 일을 시작했다.

"힘 내게."

아리폰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주고는 작업장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음... 이번 축제 의상은 저런 붕대 의상으로 만들어 볼까? 아직 만들기도 전이지만 왠지 잘 팔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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