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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백여 년 전, 그곳의 한 카페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왕자비로 내정되었다가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어 꿈이 좌절되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납치가 아니라 사랑의 도피였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마리아노플 시민이라면 카페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보면 모르는 체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 온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간 소녀는 귀걸이를 꺼내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슬쩍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왠거냐?"


소녀는 흠칫놀라 뒤를 번뜩 돌아보고는 잽싸게 귀걸이를 품 속 깊숙히 찔러 숨겼다.


"벼..별거 아니에요. 그나저나 아저씨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아휴 .. 또 술 드셨구나?"


허름한 차림세에 인자해 보이는 얼굴을 한 늙은 중년은 지금 막 근처 주점에 술을 거나하게 한잔 하고 오는 길인지
온몸에서 무화과주 냄세와 담배잎내, 그리고 그곳의 화려한 무희들의 달콤한 향내까지 겹쳐 묘하지만 역하지 않은
냄세를 풍기고 있었다.


"허허. 인석아. 어른들이란 그런거야. 이 쬐그만 녀석. 그나저나 너 방금 그게 무어냐?"


"아..아니에요.하하"


평소 인자한 아저씨가 소녀의 것을 탐하리 만무하지만 소녀는 그래도 자신의 궁핍한 살림에 그 귀걸이가 보탬이라도
될 것이며 혹여 소녀의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이것을 들키지 않는 곳에 고이 숨겨둔다면 그녀의 유일한 삶의 낛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소녀는 옷깃을 더 추스리며 어색하리 만치 환하게 웃어 넘긴다.

소녀도 마리아노플의 소문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날 주정뱅이 아버지를 찾으러 갔던 '붉은 치마'라는 진득한 주점에서 그곳 무희들과 새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 무언가에 이끌리듯 소녀는 귀걸이를 주을 수 밖에 없었다.


'붉은 치마'의 아름다운 무희 중 '제나'는 방정맞고 싸움닭같은 기질을 가졌지만 절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남의 험담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종종 '제나'는 음침하고 어두운 그곳에서 소녀에게 먹을것을 가져다 주거나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을
드리밀며 싱글싱글 웃어주는 등 긴장한 소녀의 굳은 얼굴을 풀어주기도 하였다.
그런 '제나'가 어느날 무희들과 새들 사이에서 평소와는 다른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것을 얼핏 들은 그날이었다.


'내가 어제 동쪽에서 온 상인에게서 들었는데 말이야. 마리아노플의 귀걸이 이야기의 진실말이야. 세상에.. 지금은 죽고없는 전 왕비가 그녀를 죽인거래. 자기가 왕비가 되려고 사람들을 산거지. 왕자가 불러낸것 처럼 거짓말을 해서 야밤에 죽여버렸다잖아.
그래서 저주 받은걸까? 여왕도 시름시름 앓다가 귀신이 보인다며 헛소리를 하고 죽었잖아.'


소녀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를 부축하고 주점을 나서면서 귀걸이를 생각했다.
그런 그날 무언가에 이끌리듯 소녀는 귀걸이를 발견한 것이다.


'저주? 그딴게 무슨 소용이야. 이제 이건 내꺼야.. 아무도 못봤어. 아저씨도 못보셨을거야. 여왕님이라.. 이젠 죽고 없는
사람이잖아. 귀신? 난 빌어먹을 술주정뱅이 아버지 보다야 귀신에게 잡혀가는게 더 낫겟어. 무튼 상관없어. 이건 이제 내거니까.'


소녀의 기뻐하던 얼굴은 곧 이내 굳어졌고 가슴팍을 더욱 단단히 여미고 주변을 몇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누가 볼새라 재빨리 좁은 골목길로 뛰어가 곧 이내 사라졌다.




몇일뒤.


마리아노플 광장은 시끌시끌하고 활기찻던 평소와는 달리 한 여인의 통곡소리와 사람들의 웅성임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곳에 싸늘한 주검으로 식어있는 소녀의 사체 그리고 그 딸을 부둥켜 안고 하염없이 울고있는 소녀의 모친.
소녀의 옷깃은 다 찢어져있었으며 목 주변은 강하게 짓눌려진 손자국으로 벌겋게 멍이 들어있었다.
옆에선 소녀를 제일 먼저 발견한 야경꾼이 병사들에게 취조를 받고있었다.
야경꾼의 말은 이러했다.


어제밤 거리를 순찰 하던중 한쪽에서 소란을 발견했는데 한 소녀와 왠 남자였다는 것.
알고보니 부녀간이었고 술에 취한 아버지가 딸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으려 했었다는 것이다.
야경꾼은 그저 그런 평민가의 사정이려니 싶어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고 다시 새볔녘 가로등의 불을 끄러 지나가는 길에 죽어있는 그 소녀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소녀의 주정뱅이 아비는 소녀에게 푸른 사파이어 귀걸이가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내심 들킬까 두려워하며 소중하게 귀걸이를 바라보고 기뻐하던 소녀는 이제 그 곳에 없다.


소녀의 죽음은 저주나 소문의 한가닥 글도 추가가 되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귀걸이는 또 어딘가로 흘러갔다.
다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길 바랬던 것일까.
그래서 소문인지 진상인지 모를 억울한 죽음을 당한 여인의 한을 풀어주길 바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리도록 파랗고 반짝이는 눈물모양의 사파이어 귀걸이..


  • 유키노시타 @안탈론 | 55레벨 | 그림자 악사 | 엘프
    마지막에 전설의고향 삘이 ㅋㅋ 잼네요ㅎㅎ
    2014-10-22 12:50
  • 김가영 @레비아탄 | 50레벨 | 애도의 악사 | 하리하란
    소녀 애도.. 초점이 저는 소녀가 되었네요 ㅋㅋ
    2014-10-2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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