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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이야기 - 전민희 작가님


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백여 년 전, 그곳의 한 카페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왕자비로 내정되었다가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어 꿈이 좌절되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납치가 아니라 사랑의 도피였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마리아노플 시민이라면 카페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보면 모르는 체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 온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간 소녀는 귀걸이를 꺼내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슬쩍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이어서 적은 이야기


[ 1 ]


" 꼬마야! 뭘 그렇게 보고 있니? "


흠칫 놀란 소녀가 뒤돌아보자, 거기에는 깃이 달린 화려한 옷을 입은 귀부인 하나가 서 있었다. 짐작하건대, 적어도 명문 귀족 집안의 부인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소녀는 황급히 귀걸이를 치마 품새에 숨긴 채 말했다.


" 저...그게...아무것도 아니에요. "


귀부인은 약간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소녀에게 다시 되물었다.


" 그나저나 처음 보는 얼굴인 것 같은데... 실례가 안된다면 어디서 왔는지 물어봐도 되겠니? "


소녀는 귀부인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이내 안심이 되었는지 긴장을 풀고 대답했다.


" 저는 솔즈리드에서 왔구요... 황금 평원에 있는 해오름 마을에 심부름을 가던 중이었어요. "


귀부인은 고개를 숙여 소녀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입을 떼었다.


" 솔즈리도 반도라면 험난한 가랑돌 평원을 거쳐서 왔겠구나. 괜찮다면 따뜻한 곡물 수프를 대접하고 싶은데, 우리 집에 가서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련? "


소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 싶다가 문득 산 너머의 해가 점차 지고 있기도 하였고, 마땅히 묵을 곳도 여의치 않아서 그 귀부인을 따라 나서기로 했다.



[ 2 ]


순환선을 처음 타보는 소녀로선, 순환선이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소녀가 타본 것이라곤 얼마 전 가랑돌 평원을 건너올 때 탔던 순환 마차가 전부였기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마저도 마리아노플로 무역을 하러 가는 푸른 소금 상회 아저씨의 도움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아직까지 끝도 없는 황량한 벌판을 지나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귀부인 앞에서 내색하는 건 왠지 부끄러웠던 소녀는, 담담한 척 순환선에 발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뒤, 해가 저물어 어두워 졌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외곽이 파랗게 빛나는 것 같은 저택 앞에 도착했다. 소녀는 시골 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저택을 바라보며 괜시리 주눅이 들었다.


저택 앞에는 경비병 두명이 서 있었는데, 모두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한 상태라 얼굴을 가늠할 수도 없거니와, 이상하리만치 미동이 없었다. 귀부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그들을 지나쳐갔고, 소녀도 이내 귀부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택 안에 들어서자 귀부인은 소녀를 큰 테이블에 앉히며 말했다.


"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렴. 내가 곧 따뜻한 곡물 수프를 내오마. "


소녀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귀부인은 거울을 보며 옷 매무새를 고치는가 싶더니 주방이라고 짐작되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긴장한 탓인지, 저택 안에 들어설 때까지 귀부인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소녀는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장롱 위에 놓여 있는 갖가지 고급 장식품들은 소녀가 태어나서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값 비싸고 좋은 것들이었다.


' 와... 이건 말로만 듣던 [명품 흔들인형]이잖아! 이건 자유도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귀한 것이라고 들었는데... '


처음보는 것들에 호기심이 발동한 소녀는 저택 안을 좀 더 둘러보기로 마음먹었다.


' 잠시 둘러보는 건 상관없겠지? 뭐... 아무렴 어때. '


소녀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빨간 무늬가 수 놓아진 카펫을 따라 차차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지나 거대한 서고 앞을 지나는 그 때, 발 밑에 뭔가 부스럭하는 소리가 나서 보니 낡은 편지봉투 하나가 눈에 띄었다. 소녀는 편지봉투를 들어 살펴보았다.


[ 오! 사랑하는 마리안 트리스테 ]



' 마리안 트리스테? 그 부인의 이름인가? 실수로 여기 떨어뜨린 것 같은데…'


소녀는 궁금증을 못내 뿌리치지 못하고 편지를 꺼내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 나의 사랑 마리안! 당신을 마주한 그 순간부터 난 사랑에 빠졌다오. 마리아닉의 발치에 서 있던 당신은 어떤 누구보다 아름다웠소. 사랑을 속삭이던 그 나날들이 아직도 가슴 한켠에 사무친다오. 여생을 함께 하지 못한 게 너무나도 아쉬워 매일 눈물을 흘리며 홀로 외로이 늙어가지만 사랑은 어쩔 수 없나 보오. 만약 내가 먼저 죽거든 당신이 내게 준 이 찬란한 보석과 함께 묻어주길 바라오. 영혼이 되어서라도 당신과 함께 하겠소. 당신의 닉이. ]



소녀는 편지를 읽고 난 후, 고이 접어 서고 한 켠에 꽂아두었다. 분명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면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편지를 읽고 난 후 부터 등 뒤에서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꼈다. 소녀는 기분 탓이라고 치부해 버리면서 좀 더 둘러보기 시작했다.


카펫의 끝에 다다르자, 그제서야 부인이 수프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소녀는 다시금 되새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부인은 자신을 부르지도, 찾지도 않았다. 아직 수프가 덜 됬나보지라고 생각하고 돌아가려는 찰나, 통로 한 쪽에 어색하게 자리잡은 나무문을 발견했다.


' 어? 아까는 보이지 않았는데? 여기는 다른 문과 다르게 나무문이잖아? 창고 비슷한 것이려나... '


소녀는 실례인 줄 알면서도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무문의 손잡이를 당겼다.



[ 3 ]


' 끼이익 ― '


낡은 나무문이 열리자, 얼마나 오래 쓰지 않았는지 온통 먼지로 뒤덮인 서재가 있었다. 서고에는 알 수 없는 고대문자로 적힌 표지의 책들이 꽂혀있었고, 마치 세월을 말해주는 듯인양 거미줄이 군데군데 쳐져 있었다.


소녀는 마땅히 불을 지필 수 있는 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오로지 달빛에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책상에는 오래된 만년필과 말라 비틀어진 잉크가 놓여있었고, 두루마리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그마저도 먼지가 뒤덮여 어떤 것인지 분간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 때, 소녀는 구석에서 무언가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 응? 저게 도대체 뭐지? '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낡은 서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은으로 된 오르골이 있었다. 누이 여신의 형상의 장식품이 달려있는 오르골. 문득 소녀는 오르골이 아직도 작동하는 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오르골의 태엽을 천천히 감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무문이 누가 힘껏 잡아당긴 듯이 쾅- 하고 닫히기 시작했다.


소녀는 놀라서 태엽을 감던 손을 놓았고, 오르골은 낮은 음색의 노래가 흘러나오며 열리기 시작했다.



' ♬―♪―♪―♪ '



그 때, 소녀는 문득 깨달았다. 그 오르골 속에 있는 것이 자신의 치마 품새에 있는 사파이어 귀걸이의 나머지 한 짝이란 것을.


아까부터 숨이 점점 막혀오는 게 긴장해서가 아니라 품속에서 나온 하얀 손이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기 때문인 것을.



[ 4 ]


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그 소문에 따르면 카페에 떨어진 장신구를 줍는 사람은 반드시 실종되었다고 한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릴리엇 구릉지에서 심부름을 온 한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귀걸이를 보며 좋아하고 있는 소녀에게 한 귀부인이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


" 꼬마야! 뭘 그렇게 보고 있니.......? "


후기

이 이야기는 흐름이 비슷한 마리안의 일기의 내용을 약간 호러 & 서스펜스식으로 각색하여 만들었습니다.

많이 부족하더라도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민희 작가님 사랑합니다♡.♡

많은 추천 부탁 드려옇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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