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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옆집이 시끄럽다.
얼마 전 이사를 온 페레 인듯한데 소란스러운 소리에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버렸다.
궁금한 마음에 새로운 이웃을 만나러 어제 짜둔 우유 몇 병을 선물로 들고 집을 나섰다.

'욕조?'

검은색 꼬리를 가진 페레 여성 하나가 낑낑대며 커다란 인어 한 마리가 들어 있는 욕조를 집안으로 옮기고 있다

"저기 도와드릴까요?"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본 페레 여성은 앞발…. 아니…. 손으로 땀에 젖은 얼굴을 한번 훔치더니 혀로 털을 고르고는 그대로 손을 귀 뒤로 연신 쓸어 넘긴다.
매일 집안에서 잠만 자며 뒹굴고 있는 지난번 축제 때 받은 고양이가 크면 이런 모습일까?
털을 다 고른 후 내 손에 들린 우유병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우유를 한 개 집어 벌컥벌컥 마셔버린다.

"낚시 대회 우승 선물로 받은 거에요. 욕조만 필요했는데 인어까지 담아서 보내왔네요"

뒷말은 궁시렁대며 작게 중얼거려서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왠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든다.

"저기요."

"예..옛!"
예상치 못한 부름에 나는 뻣뻣하게 대답했다.

"당신 귀가 참 특이하네요."

'난 당신의 그 얼굴만큼 큰 귀가 더 특이한데 말이지...'

엘프를 처음보는 듯, 나에게 대뜸 귀가 신기하다며 물은 그녀는 그 질문을 시작으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왔다. 자신의 이름은 피냐이며 서대륙에서 편안히 살 땅을 찾던 중 조용한 하얀숲을 발견했고, 자작나무 향기에 이끌려 이 자작나무 마을에 터를 잡았다고 했다.

".. 사실 원정대 촌은 마리아노플인데, 전 사람 많은 건 딱 질색이거든요. 아, 근데 그쪽 이름은 뭐라고했죠?"

쉴 새 없이 떠들던 그녀는 내 손에 쥐어진 우유 3병을 다 마셔버린 후에야 내 이름을 물어왔다.

"큼큼, 제 이름은 주드 입니다."

그렇게 통성명을 한 우리는 어려울 때 서로 돕곤 하는 좋은 이웃사촌이 되었다.
피냐는 내게 치즈 선반을 만들다 모자라는 우유를 제공해주었고, 난 그녀를 위해 목공장인의 솜씨를 발휘해 갈대 침대를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피냐, 오늘 날씨가 심상치 않네. 소나무 쓰러지지 않게 잘 봐. 비가 심하게 오면 가끔 꺾이더라구."

"물론! 자스민도 집안에 뒀어. 욕조가 넘쳐서 빠져나오면 안되니까. 너는 선반 다 거둬놨지?"

"응 등짐들도 다 안전한 곳에 넣었지."

오늘따라 태풍이 심하게 불어 우리는 미리 밭을 손보고 나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넓은 밭을 가지고 있었지만 집은 가장 작은 하리하라 주택이었기 때문에 식사를 할 때마다 크고 널찍한 화로를 갖춘 우리집을 찾곤 했다. 처음 만날때 데려왔던 인어는 어느새 자스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쿠르르릉.. 쿠르릉..

비는 거의 그쳤음에도 천둥소리는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제슬슬 집에 갈까 하던 순간, 갑자기 집 밖의 소나무가 번쩍 빛났다.

콰가가가강!!!!!!!!!

믿을 수 없었다. 소문으로만 들었지 나무에 정말 벼락이 칠 줄이야!

"벼... 벼락을 맞았어 소나무가!!!"

쿵...쿠궁!!

"어...어? 내집!!!!!!"

벼락을 맞아 불타던 소나무가 갑자기 그녀의 집쪽으로 쓰러졌다. 불에 취약한 그녀의 목조주택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약한 빗줄기는 불길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아.... 안돼!!! 자스민이 집안에 있단말야!"

피냐는 집에 있는 인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려고 했다.

"안돼! 기다려, 지금 저 집에 들어가는건 자살행위라고!"

나는 그녀를 말린 후 조용히 마법 주문을 외웠다. 이래뵈도 마법의 종족인 엘프에서도 뛰어난 마법사라고!
나는 불타는 집 안 욕조에서 바둥거리는 인어를 향해 거품을 쏘아 공중으로 띄워올렸다.

"오 자스민..."

욕조말고 급한대로 우리집에 있던 빈 어항에 자스민을 넣고 나자, 피냐는 진이 빠진 듯 주저앉았다.

"고마워 주드. 덕분에 살았어."

맨날 유혹의 욕조의 덤일 뿐이라며 투덜대더니, 실은 많이 아끼고 정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너희집 다 타버려서 어쩌지??"

그제서야 피냐는 자신의 홀랑 타버린 집을 바라보았다. 주춧돌만 남은 집을 보며 고민하던 그녀에게 나는 우리집에서 머무는게 어떻냐고 제안하기 위해 그녀를 불렀다.

"피냐.."

"..그럼 네 집에서 몇달간 신세좀 질게 주드."

그녀는 뒤를 돌며 싱긋 고양이 웃음을 짓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어항 속의 자스민을 쓰다듬었다.

"자스민의 임시 욕조론 너무 좁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나."

뒷말은 작게 궁시렁대서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뭔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소가 지어지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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