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백여 년 전, 그곳의 한 카페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왕자비로 내정되었다가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어 꿈이 좌절되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납치가 아니라 사랑의 도피였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마리아노플 시민이라면 카페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보면 모르는 체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 온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간 소녀는 귀걸이를 꺼내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슬쩍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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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소녀는 등 뒤에서 누군가 갑자기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자 반사적으로 벼락같이 빠르게 휙 뒤를 돌아봤다. 그녀의 동공은 더 이상 팽창할 곳이 남지 않을 정도로 팽창해있는…….마치 고양이가 불에 데인 것 마냥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이었다. 페레였다면 꼬리가 쭈뼛이 서서 처다 봤을까?

뒤에서 말을 걸은 그는 이제 막 여름이 지난 초가을인 지금에 어울리지 않게 두터운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약간 체구가 큰 남성 이였다.

"찾았나?"

소녀는 평정을 되찾으려는 듯 숨을 깊이 들이마쉬고선 내뱉고 그제야 안색이 돌아왔다. 소녀는 주머니에 챙겨둔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를 주머니에 꺼내 눈앞의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집어넣어. 그 녀석은 햇빛을 아주 싫어하지."

소녀는 미약하게 끄덕이고는 다시 주머니에 사파이어를 집어넣었다.

"…….이걸로 마지막 7개인가. 밤에 극장 뒤로 와라."

그렇게 남자는 자기 할 말만 하고서는 유유히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다.

"휴우"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저...으 어려워"

소녀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서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늘 짧게 말하고 생략이 심하다.

'만날 그냥 밤이라고 하니 또 언니도 데려오라 거겠지? 그냥 말해주면 어디 덧나나'

소녀가 한참 투덜거리며 도착한곳은 방금 나온 카페의 옆블록에 있는 세련된 카페였다. 소녀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소녀는 전 카페보다는 비교적 한산한 카페 안에 들어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언니! 찾았어요!"

"어머? 세라 왔구나? 그래 마지막은 뭐니?"

카페의 주인인 듯 한 이 갈색머리의 청초한 여인은 빙긋 웃으며 소녀의 테이블에 물을 따라 주었다

"제가 그런 건 잘 모르는데 아마 사파이어 인거 같아요."

"어머? 그랬구나. 커피 마실래?"

"아...아뇨 전 그냥 우유가 좋아요"

여주인은 '어머 그래?' 라 말하며 세라를 향해 한 번 더 빙그레 웃어 보이고 카운터 쪽으로 갔다 그때 세라가 뭔가 떠올랐는지 급히 불렀다

"아 언니! 그 사람이 밤에 극장 뒤로 오라 말은 했는데 대체 밤이 언젠지 모르겠어요."

"바론 씨가 그랬니? 음...아마 세 시간 뒤에 만나자고 한걸 거야 아까 잠깐 들렀었거든"

"아...네"

여주인은 다시 '조금만 기다리렴.' 이라 말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아무튼 다 지멋대로라니까"

세라가 로브를 뒤집어쓴 그 바론이라는 남자를 만난 것은 불과 삼일 전이다. 그리고 그 삼일전은 여자의 몸으로 단신으로 여행을 떠나 대도시 마리아노플에 첫발을 디딘 영광스러운 날이기도 했다. 그날 지친 몸을 이끌고 카페에 앉아 커피라는 걸 시키고 결국 다 마시지도 못한 체 일어서려고 하는데 의자 밑에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세라는 별 생각 없이 떨어져있던 화려한 루비 귀걸이를 찾았다. 거기 까진 좋았으나 그걸 찾고 주인을 찾는답시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 게 화근이었다. 세라는 당연히 주인이 고맙다고 감동의 눈물까진 아니어도 그 비슷한 그림이 나올 꺼라 예상했는데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주변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저주다! 왕자비의 저주! 그 카페가 바로 이 카페였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사건이 진정되고 이 카페 여주인은 울고 있는 세라를 토닥여 줬다. 그제야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세라는 반드시 자신이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여주인은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바로 그때 그가 나타났다.

"고양이 주제 생선을 맞겨달라고 하는군."

그는 여유롭게 커피를 마셨다. 세라의 기억으론 그때 역시 두터운 로브를 뒤집어 쓴 체 이었었다.

"요즘 이 집 때문에 옆집 카페가 잘 안된다더군."

세라는 여주인의 품에 안겨 훌쩍대다가 이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럼 내가 일부로 그랬단 말이에요?!"

바론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커피를 다 마시고나서 일어섰다.

"나와 거래하지 않겠나?"

이미 해는 떨어졌다. 카페 안은 이미 다 정리 되었고 마지막으로 세라가 마신 우윳잔을 치우고 세라는 아름다운 갈색 머리카락을 한 여주인과 함께 카페를 나와 극장 뒤편으로 들어갔다. 초가을이라 그런지 해가 일찍 떨어져 무척 캄캄해 스산한 기분을 주었다.

"언니 이 사람은 이런 을씨년스러운 데를 다 알고 있나 몰라요 그쵸?"

여주인은 그저 빙긋 웃었고 그와 동시에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시끄럽고 귀걸이나 꺼내라"

세라는 뒤돌아 여전한 그의 복장에 혀를 찼다

"자요"

세라가 주머니에서 사파이어 귀걸이를 꺼내자 그 찬란한 빛을 내보였다 그 빛은 너무 선명해 오히려 오싹할 정도였다. 바론은 그 빛이 행여 도망 못 가게 하듯 얼른 주먹에 쥐었다.

"마법 진을 펼칠 테니 자리에 서 있어. 함부로 움직여선 안 돼 이번에야 말로 이 녀석이 진실을 말해줄거다."

"흥 이 말만 벌써 7번째네요"

바론은 세라의 비아냥거림에 아랑곳 하지 않고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들의 발밑에는 마법진이 떠올라 있고 그의 꽉진 주먹에 검은 기운이 살아 숨 쉬듯 팽창하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이 끊임없이 팽창하더니 이내 뭉쳐져 하나의 사람 형상이 되었다.

'아 설마... 왕자비…….?'

세라는 놀란 눈으로 입도 열지 못한 체 그저 처다만 보았다. 그때 세라의 눈이 허공에 떠있는 왕자비의 사념 체의 어둠으로 가득한 두 눈과 마주쳤다.

'헉'

세라는 정신 차리고 보니 자신은 허공에 떠있었다. 어찌된 영문인가 주위를 돌아봤는데 옆엔 카페 여주인 언니와 로브를 뒤집어쓴 체 여전히 주먹을 쥐고 있는 바론역시 떠 있었다. 세라는 어찌된 영문인가 묻기도 전에 갑자기 장면이 휘릭하고 바뀌었다.
갑자기 화려하고 핑크빛으로 가득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곳엔 편지를 읽으며 즐거워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눈물역시 머금고 있는 듯 했다.세라는 자세히 보려고 다가가려 하는 순간 장면이 바뀌었다.
커다란 홀 안에 한 남성이 그녀에게 무릎 꿇고 청혼하고 있다. 그녀의 표정은 싸늘했다.
다시 방안. 남자는 허탈한 듯 웃고 있다. 그리곤 다시 바뀌었다. 왕자비인 그녀는 어느새 편한 복장을 갖춰 입고 정신없이 뜀박질을 하고 있다. 한손에 편지를 꼭 쥔체. 그녀는 편지에 적힌 장소를 확인하며 그제야 안심 하는 듯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소문이 사실이구나.'

세라는 그렇게 생각할 때 다시 뒤바뀌었다. 왠지 아주 아주 어둡고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들어간 카페에는 그의 정혼 자가 아닌 열뎃명의 남자들이...그녀를 둘러싸고 웃고 있었다. 그 카페 구석 어딘가 비밀스런 문이 열리고 남자들은 저항하는 왕자비를 끌고 들어갔다. 그녀의 비명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끊임없이 세라의 귓가에 끊이질 않았다.

"아……."

세라의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 그녀를 갈색 머리칼의 그녀가 힘껏 끌어안았다.

"나쁜 놈...어떻게 여자를 배신할 수 있죠?"

세라는 눈물을 흘리며 앙칼지게 바론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세라도 그가 잘못하지 않았단 걸 안다. 그는 그저 같은 남자일 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목석마냥 멀쩡히 서있는 그를 보면 가슴속에서 화가 끓어올랐다. 그런데 세라는 그가 깊게 눌러 쓴 후드 안쪽에 반짝 빛나는걸 봐버렸다. 그날 바론은 '약속은 지켰다' 라며 되돌아갔고 두번 다시 볼 수 없었다.

구름마저 나들이 간듯 화창한 어느 오후 평화로운 마리아노플에 한 카페 안은 붐비기 이를 때가 없었다.

"얘 그 말 들었니?"

"뭐? 유령 얘기가 사실 개 뻥이란 거?"

"뭐야 너도 알아? 쳇 시시하게"

여자 둘은 카페에 마주 앉아 소란스레 떠들었다.

"알만 하지. 사실 유령 얘긴 다 개뻥이고 그 귀걸이를 주운사람이 그걸 밑천으로 엄청난 갑부가 됐다지?"

"그래. 그렇지만 그 이야기가 다 거짓말일까? 다 거짓말이면 왜 그 비싼 게 카페에 굴러다니겠어?"

"글쎄? 혹시 모르지. 사실 왕자가 왕자비 죽이고 소문으로 덮은 걸지도?"

"깔깔 그게 뭐야 아주 소설을 써라 야 들어봐. 내가 알기론 정혼 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왕자비를 배신한 거래"

"뭐? 무슨 소리야? 내가 알기로는 그 사람 어쩌다 도서관의 책을 얻어서 마법사가 됐다고 그래서 수명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녀를 100년이 넘은 아직도 찾아 헤맨다고 하던걸?"

그녀 둘은 서로 마주보며 피식 웃고는 동시에 말했다

"소설을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