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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백여 년 전, 그곳의 한 카페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왕자비로 내정되었다가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어 꿈이 좌절되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납치가 아니라 사랑의 도피였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마리아노플 시민이라면 카페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보면 모르는 체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 온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간 소녀는 귀걸이를 꺼내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슬쩍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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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돌려주세요... 그건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한테 준 것이랍니다."

조곤 조곤하고, 공손한, 그러나 아주 맑은 소녀의 목소리였다.

호기심이 발동해 고개를 돌린 소녀는, 금방 심장이 얼어붙을것만 같았다.

뒤에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너무나도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목에는 밧줄에 의해서, 피부가 짖이겨진 상처가 선명하게 나와 있었다.

소녀는 계속해서 도망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차가운 바닥이 소녀의 발을

끌어당기듯이....

그러나 그 공포는 오래 가지 않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 자그마한 등을 활처럼 구부리고,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보야르'

목소리의 주인공인 공주가 사랑했던 남자의 이름이었다.

보야르는 오스테라의 어부였다. 그는 바다로 나갔다가, 그곳의 해적에게 붙잡혀, 노예로 마리아노플로 팔려오게 되었다.

다른 노예들은, 비참한 생활을 해야했지만, 보야르는 그의 아름다운 외모덕분에, 마리아 노플 왕실에서, 공주의 시중을 들게 되

었다..

항상 억압받고, 희생을 강요받아 왔던, 공주는 보야르가 해주는 바깥세상의 얘기에 금새 빠져들었다. 누이안 대륙을 벗어난

드넓은 바다... 수를 셀수 없는 수많은 고기들... 이내 공주는 바깥세상을 동경하게 되었고,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공주는 얘기를 하면서, 보야르의 외모를 끝없이 칭찬했다. 그의 아름다운 흑갈색 머리, 맑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

둘은 야반도주를 하기로 했고, 마리아노플 카페거리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는 오지 않았고,

공주는 다시 붙잡혀 왕의 앞에 끌려오게 되었다.

왕은 보야르는 다시 오스테라로 추방당했고, 다시는 그를 볼수 없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공주의 결혼식 날짜가 잡혔다고 통보하

였다.

공주의 상심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보야르를 볼수 없다면, 사는것이 지옥과도 같았다. 결국 공주는 그를 애타게 기다리던 카페

거리에서 목을매 자살하고 말았다.

이야기를 마친 공주는 다시한번 흐느낀후, 목이맨 채로 말을 이어갔다.

"다시한번, 그를 볼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다못해... 그가 아직 살아있는지...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날이 밝자 소녀는 자신을 마리아노플에 데려와준 큰 아버지인, 사우어를 찾아갔다.

사우어는 마리아 노플 상점가에서 귀족을 위한 옷을 재단하는 실력있는 재단사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트리스테 저택에서 준 의

뢰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너무나 이상한 취미의 디자인... 그것도 자기의 라이벌인 재단사 클라인에게도 똑같은 디자인을 의

뢰하였다. 둘중 마음에 드는 곳에 앞으로도 계속 주문할것이라는 말도 함께 하였다.

대금도 대금이지만, 트리스테 저택에게 선택 받는 것은 출세길이 보장된다는 의미도 함께였다.

디자인이 같다는 옷감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있는데, 마침 조카가 돌아와, 어제밤에 있었던 얘기를 해 주었다.

물론 당사자인 공주가 유령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누구도 믿지 않을것이며, 터무니 없다고 상대하지 않을것이 두려웠

기 때문이었다.

보야르란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말, 그리고 그는 오스테라에 있다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듯, 갑자기 사우어의 뇌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옷감이다.... 오스테라의 옷감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클라인을 상대할수 있다.

사우어는 오스테라 행을 선뜻 받아드렸다. 그리고 그가 떠나고 돌아오는데는 한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우어는 보야르를 찾았다는 말을 했지만, 그와 함께 오지 않았다. 대신 그가 남긴 편지를 가지고 왔다.

하리하란 언어로 씌어진 편지는 큰아버지인, 사우어가 소녀를 위해 특별히 아래에 누이안어로 주석을 달아주어 읽는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공주님께

저 보야르는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왕께서 저에게 정착금을 주시면서, 오스테라로 떠나라고 말씀하셨을때, 저는 공주님과

의 약속을 저버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고향에 계신 저희 부모님과 친구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기에, 저는

당장 떠나야만 했습니다. 저는 이제 세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저 같은 것과의 사랑은 어린시절의 불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주님은 부유하시니, 곧 좋은 왕자님을 만나시고 행복하게 사실수 있을것입니다. 저를 잊어주십시오.

소녀는 편지를 읽고, 너무 실망하였다. 이말을 어떻게 죽은 공주님께 전해야 할까 고민을 했지만, 순간 어린 소녀의 감성에 궁금

한것을 참지 못하고, 큰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보야르란 사람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나요?"

큰아버지의 대답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냥 세상일에 찌들어 있는 힘든 가장의 얼굴이었노라고, 그리고 자기가 보야르를 목격했

을때, 그는 항구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노라고...

소녀는 밤에 공주를 만났던, 카페 거리에 가서, 크지 않게, 그러나 또렷한 목소리로, 공주를 불렀다.

이내 공주는 조용히 소녀의 앞에 나타났다.

소녀는 말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할수 없어서, 거짓을 얘기하고 말았다.

"보야르는 공주님을 몇날 몇일을 그리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배를 타고 오다가, 그만 풍랑에 빠져서 죽고 말았답니다."

공주는 슬피 울었다. 그러나 다시 미소를 짓고 소녀에게 말했다.

"그러면 내가 여기에 이렇게 있어선 안될것 같네요. 어서 보야르를 만나러 가야 할것 같아요. 그가 외롭지 않게..."

갑자기 따뜻한 빛이 공주의 몸을 감싸고, 공주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자리에 남겨진 소녀는 하늘을 계속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히 속삭였다.

"사랑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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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사랑인 오스테라의 어부 보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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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 사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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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어의 라이벌 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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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테 저택

실력없고, 긴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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