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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통념처럼 죽은 자들은 천국에 가지 않아. 세상 어디엔가 다시 머물 곳을 찾지”
몇 년 전 하슬라 베로에에 갈 일이 있어서 잠시, 로카의 장기말들의 물안개 마을이란 곳을 지날 때의 일이다.
로카의 장기말들에는 봉우리가 많고, 사이로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 잘 곳을 정하기 쉽지 않다.
봉우리 밑 그나마 바람이 잘 불지 않는 곳을 찾아 모닥불을 피고, 아까 물안개 마을을 지나오면서 얻어온 결혼식 음식으로 저녁을 때우고 있었다.
'운이 좋았어. 마침 결혼식이 열려서… 여기 결혼식은 참 신기했어. 좀 이상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드문드문 무역상들이 지나가는데 하나같이 나를 보고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지나갔다.
좀 이상하다 싶어서 한 무역상에게 물었다.
“대체 왜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이오? 내가 무섭소?”
“당신이 뭐가 무섭겠소? 여기가 무섭지. 여긴 죽은 자들이 찾는 곳이오. 몰랐소?”
“근처에 물안개 마을로 가시오. 여기 있으면 큰일 나요”
“죽은 자? 귀신 말이오? 에이, 귀신이 어딨어… 놀리지 마시오”
다시 물안개 마을로 가라고? 거기서 반나절이나 내려왔는데… 귀신이 어딨어? 그리고 내가 귀신에 죽을 사람인가?
나는 무시하고 맛있게 저녁을 먹고 잠을 청했다.

꾸르르륵-

저녁을 너무 맛있게 먹은 탓 인지 속이 좋지 않았다.안먹던 음식들을 급하게 밀어 넣고 바로 누웠으니 속이 조용할리 만무했다.
물안개 마을과는 좀 떨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안개가 자욱해 시간을 확인하긴 어려웠다.

꾸르르륵-

한차례 더 신호가 오자 시간이고 뭐고 일단 급한 볼일을 해결하는것이 우선 일듯 싶어 급히 잠자리와는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바지를 내렸다.아깝게도 저녁에 먹은 음식들이 한 데 모여 작은 섬을 쌓았다.

가벼워진 배를 만지며 뒤를 닦을 생각에 주변에 고운 풀을 찾던 때,앞에 구두발 한쌍이 보였다.시선을 조금 올리니 구두발의 주인으로 보이는 왠 남자가 곱게 접힌 천을 내밀었다.

갑작스런 사람의 등장에 철퍼덕-작은 섬 위에 엉덩이를 맞겨버리니 천을 주던 남자도 나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괜찮습니까?"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을것이 분명한데 묻는 이유에 대해 따지려다 남자의 손에 들린 천을 뺏듯이 낚아채어 작은 섬을 처리하고 바지를 추켜 올렸다.추접스럽건 냄새가 나건 중요한건 지금 내앞의 남자가 어디서 왜 나타났는가 였다.

"놀래키려던 것은 아닌데 죄송합니다.."
"보아하니 무역상 같지는 않고 무슨일이요?"
"아,저..."

우무쭈물하는것이 답답해 그냥 쫓아 보낼까하다 방금전 미처 땅에 제대로 묻히지 않아 낮은 바람에 펄럭이는 천이 보여 잠시 인내를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

"절 아시는지요?"

기껏 기다리니 한다는 소리가 어이가 없어 냅다 욕이나 퍼부을려는 순간 저 멀리 하얀 옷을 걸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당신이 뭐가 무섭겠소? 여기가 무섭지. 여긴 죽은 자들이 찾는 곳이오. 몰랐소?'

지난 저녁 만났던 무역상들의 말이 떠오르며 주춤 물러서자 남자 역시 내 시선이 있는곳을 보고는 혼비백산하여 자리에 주저 앉았다.

실루엣이 천천히 다가올수록 주먹을 꽉 쥐고 정신을 잡았다.옆에 주저앉은 남자까지 챙길 필요는 없다.나는 내몸만 지키면 된단 생각에 주머니 안쪽 단도를 찾아 쥐고 마침내 다가 온 실루엣에..!

"당신!새 신랑이 여깄으면 어떡해요!"

앙칼진 목소리.그것은 사람의 것이였다.살아있는.

그제서야 나는 지난 저녁 물안개 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린 부부라는 것을 기억해냈다.그도 그럴것이 남자는 여자마냥 비실했고 여자는 남자처럼 듬직했으니 한번만 봐도 기억에 남을 커플이였던 것이다.

여자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듯 남자를 끌고 가려했다.갈꺼면 빨리가라 싶어 자리를 좀 피하려는데 남자가 내 팔을 잡았다.

"난 안되겠어요.난,난.."
"무슨소리하는 거에요.어서 가요.시간이 없다구요!"
"난 여자에는 관심이 없어요!특히 당신같은 여자는 싫다고요.난 이 사람이 좋아요!"

필히 이곳에 사람은 눈 앞의 부부와 내가 전부였는데 남자는 내 팔을 꽉 쥐고 고백을 했다.자신의 부인이 아닌 나에게.

여자는 어이가 없었던지 끌고가려던 손을 풀고는 하늘을 보다 이내 등을 돌려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오던 말던 마음대로 해요.당신이 그런줄은 알았지만 죽어서 까지 그럴줄을 몰랐네요."

뒤돌아가는 여자를 잡기도 뭐한 상황에서 남자와 둘이 남게되자 상황정리도 되기 전에 남자가 제자리에 앉았다.

"난 싫어요.맘에도 없는 여자와 결혼같은거,죽어서도 하기 싫다고요.차라리 환생하지못하고 이자리에서 사라지는게 나을꺼같아 당신을 이용했어요.미안해요.죽은자들 일에 산 사람을 이용하긴 싫었는데 이게 아니면 저 끔찍한 여자가 떨어질리 없거든요."

눈앞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남자의 몸이 보였다.분명 발도 있고 살아있는거 같았는데...

"어제 영혼결혼식을 하다 당신을 보고 왠지 내게 도움이 될꺼 같아서 찾아왔는데 이렇게 될줄은 몰랐네요.아무튼 고마워요."

뭐라 말할틈도 없이 사라졌다.귀신을 봐도 아무렇지 않을 줄알았는데 몸에 힘이 빠지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봉우리 틈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고 밤새 심란한 꿈을 꾸어 찌뿌등한 몸을 일으켰다.귀신이라니 말도 안되는 꿈을 꿨다며 침을 퉤-뱉고 기지개라도 켤려는 순간 눈에는 누리끼리해진 천이 보였고 코에는 낯 익은 구린내가 맴돌았다.

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구린내를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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