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백여 년 전, 그곳의 한 카페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왕자비로 내정되었다가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어 꿈이 좌절되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납치가 아니라 사랑의 도피였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마리아노플 시민이라면 카페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보면 모르는 체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 온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간 소녀는 귀걸이를 꺼내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슬쩍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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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귀걸이군. 어디서 난거야?”
등 뒤에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놀란 소녀는 황급히 귀걸이를 주머니에 감추고,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루크. 웬 일이야? 갑자기 방에서 다 나오고, 방구석 폐인이 글 쓰는거 말고 밖에 나와서 할 일이 뭐가 있다고?”
평범한 외모에 헝클어진 머리칼, 보는 사람이 쉽게 잊을 수 있는 인상을 가진 남자는 귀에 깃펜을 꽂고, 팔짱을 낀 채로 소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도 한번쯤은 밖에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아닌가? 그것보다 주인 양반이 이 바쁜 때에 일할 사람은 어디갔냐라고 화를 잔뜩 내고 있던걸?”
소녀는 순간 당황했지만, 짐짓 괜찮은 척 대답했다.
“남이사. 내가 혼나든 말든.”
“네가 쫓겨나면 내가 곤란하다고, 공짜 밥을 챙겨 주는 사람은 이 도시에 없는 걸.”
소녀는 어이없는 대답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루크를 지나쳐 카페로 돌아갔다. 루크는 소녀가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소녀의 주머니를 향해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입이 찢어질 듯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뭐. 재밌는 이야기를 쓸 거리가 생기긴 하겠군.”

“애니. 애니!”
해가 지고, 카페에는 몇 없는 손님, 가재를 정리하던 소녀 둘과 험상궂게 생긴 남자 하나만이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주방용 앞치마를 두른 금발의 소녀는 멍하니 서있던 흑발의 소녀를 불렀다.
“응? 왜? 마리.”
“오늘 내가 주운 게 있는데, 이거 봐라.”
금발의 소녀는 주머니에서 반짝 거리는 물건을 꺼내 흑발의 소녀에게 보여주었다. 흑발의 소녀는 그 물건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듯 한참을 바라보았고, 금발의 소녀는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예쁘지? 오늘 카페 의자를 정리하는데, 이게 떨어져 있지 뭐니. 주인을 찾아줄까 했는데 찾는 사람도 없어서 내가 가지기로 했어.”
금발의 소녀는 자신의 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흑발의 소녀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의 것이잖아. 주인아저씨한테 드리는 게 어때? 원래 주인이 찾으러 올지도 모르고.”
“그럼 그 때 돌려주면 되지, 무슨 걱정이야?”
“그럼 혹시 그거 아냐? 옛날에 죽은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떨어뜨린 장신구가 있는데, 주인 없는 장신구를 보면 모른 체 하라고 어릴 때부터 들었거든.”
금발의 소녀는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런 소문을 믿니? 세상에 유령은 없어.”
“그래도..”
“됐고, 얼른 정리하고 우리도 쉬러가자. 오늘 너무 힘들었어. 따뜻한 물로 씻고 싶다.”
흑발의 소녀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으나, 쉬러가자는 그녀의 말에 다시금 하던 카페 정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바라본 입구에는 루크가 익숙한 듯이 카운터에 있는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카페에 앉아있던 손님들에게 인사를 받으며 늘 상 앉던 구석진 자리에 앉아 탁자에 쌓여있던 책 중 한 권을 집어 귀에 걸려있던 깃펜을 집었다.
“마리. 한 잔 가져다 주겠어.”
마리는 역시 익숙한 듯이 찬장에서 찻잔을 꺼내 화로에서 끓고 있던 물과 함께 루크에게 가져갔다. 하지만,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밀린 외상이나 내지 그래? 주인아저씨가 착해서 그러는 거지, 지금까지 밀린 게 얼마야? 맨날 보여주지도 않는 글이나 쓰고.”
“원래 작가는 가난한 법. 그리고 글은 완성되기 전엔 보여주지 않는거야. 더욱 내가 쓰고 있는 글은 말이지.”
“어이구 대단한 작가 나셨네.”
“물론.”
마리가 따라 준 차를 마시며, 루크는 감탄하면서 말했다.
“역시 여기만한 차는 없다니까. 인생은 씁쓸한데 이렇게 달콤한 차 따위가 존재하다니. 그 모순에 글이 안 써지는군.”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혹시 장신구에 대한 유령에 관한 소문 알아? 루크?”
소문이라는 소리를 듣고 루크는 흥미가 생기는 듯 감탄을 하던 자세를 고치고, 마리를 바라보며 쓰고 있던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소문이라면, 바다의 눈 여러개 달린 괴물부터 개구리 왕자님까지 모르는 게 없는 게 나지. 유령이라...”
“아니 별다른 건 아니고”
마리는 뒤에 의자를 정리하던 흑발의 소녀를 가리키며,
“쟤가 유령이니 뭐니 이상한 소리를 해서.”
“오호 어떤 소린데?”
“뭐야 모르는거야? 땅에서 처음 보는 장신구를 주우면 안된데, 그 장신구가 예전에 죽은 여자가 원혼을 풀기 위해서 유령이 되어 일부로 잃어버린 장신구라고 하는데.”
루크는 마리의 주머니를 턱으로 살짝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마리는 당황한 듯이 고개를 휘저으며, 주인아저씨를 한번 쳐다보고는 루크 얼굴 앞까지 고개를 들이밀고는 대답했다.
“아, 아니 무슨 소리야 그냥 궁금해서 그렇다고. 이건 내꺼야.”
“그렇단 말이지? 그 소문은 엄청 오래 되었어. 마리아노플이 생기기 전부터 돌던 소문이라고 들었는데 말이지.”
“그렇지. 역시 유령 따위는 소문이고 믿을게 못 되.”
루크는 다시 책에 눈을 돌리며 작게 말했다.
“그럴까...”

두 개의 달이 높이 뜬 밤. 마리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들지 못한 채 낮에 주운 귀걸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예쁘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걸 잃어 버린거지. 운도 없어라”
그 촛불에 빛을 반사하여 파란색 황홀한 빛에 매료된 듯 마리는 귀걸이를 착용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고, 침대에서 일어나 방에 있는 거울 앞에 섰다. 자신도 이 사파이어 귀걸이를 낀다면 마리아노플에서 가끔 우아하게 마차를 타고 지나가던 귀부인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 쪽에 귀걸이를 달았다.
“잘 어울리는데? 흐음.. 역시 팔기는 너무 아까운데. 일단 주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내가 가지고 있다가”
그 때 거울에 비친 마리의 뒤에 생긴 그림자에 또 다른 그림자가 생겨났고, 그 모습을 본 마리는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으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낮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 마리는 귀걸이를 빼 자신의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군 뒤 찝찝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웠고,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가 나타난건가.”
마리가 자고 있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는 마리의 숙소 뒤에 있는 나무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무 근처에는 사람은 커녕 그 그림자 또한 보이지 않았다. 있는 건 단지 까마귀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있었을 뿐.
“저 귀걸이를 줍는 것도 참 대단하다니까. 눈에 띄지도 않는 곳에 있었을 텐데.”
목소리의 주인은 찾을 수 없었고, 까마귀는 나뭇가지에서 내려와 땅에 섰고, 나무 그림자와 까마귀의 그림자는 합쳐졌다. 이내 나무에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자라났고 그 뒤 한 남자가 나무에 기댄 채 서있었다.
“재밌는 이야기가 될 까 했는데, 뭐 소문으로 취급 당하는 모양이니까. 어떻게 생각해?”
남자는 마리가 자고 있는 방의 창문을 바라보며 누군가 있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은 누구시죠?”
들려온 건 맑고 청아한 목소리.
남자는 배우라도 된 듯이 양팔을 벌리고, 외운 대본을 말하듯이 자세를 잡으며 대답했다.
“나는 말이지. 낭만을 찾아다니고, 누이 여신의 가장 친한 벗이자, 동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음유시인이며, 이 쓰디쓴 인생에서 이 시대 최고의 쾌남 그리고, 루키우스라 하지”
“당신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군요.”
루크는 그 말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람이 아니지. 하지만 난 이 세상에 이렇게 존재하는데, 그렇다면 나 또한 유령인가? 아니면 과거의 망령이라고 불러야하나? 친우들이 없고 나 혼자만 살아가는데 무슨 의미를 또 두어야 하는가? 사랑인가? 복수인가? 아니면 어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루키우스는 하늘의 뜬 달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달을 보아라. 저 달이 사파이어와 같은 빛임을 우리가 지금 까지 볼 수 있던 것은 누구의 덕인가? 우리는 그 곳에서 사라질 운명이었지만, 그 고귀한 소멸의 누이 여신의 덕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 누이 여신의 품으로 돌아가길 거부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이번에는 대답이 들려왔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의 주인이 창가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는 잊혀진 자입니다. 이름 따위는 없습니다.”
창가에는 마리가 서있었고, 그 눈은 평소의 당찬 마리의 눈이 아니라 죽은 눈이었다. 차가운 시선을 가진.
“이 세상에 잊혀진 자 따위는 없다. 그건 잘못된 일이야.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고.”
루키우스는 평소의 선한 인상은 어디로 갔는지, 조금은 화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