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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백여 년 전, 그곳의 한 카페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왕자비로 내정되었다가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어 꿈이 좌절되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납치가 아니라 사랑의 도피였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마리아노플 시민이라면 카페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보면 모르는 체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 온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간 소녀는 귀걸이를 꺼내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슬쩍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나라면 줍지 않겠어. 콧수염이 단단히 벼르고 있었거든.”
“줍지 않겠다니?”
“소문이 소문인지라 여기 오는 사람들은 쉽사리 바닥을 내려다보지 않거든. 심지어 자기네들 지갑이 떨어져도.
어쩻거나 주의하는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거야.

소녀는 이미 주머니 깊숙이 찔러넣은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난대없이 나타난 자신의 동생뻘이 될까 하는 소년을 살펴보았다. 넝마쪽으로 기운 외투, 부드럽게 무두질된 건지 오래 걷다보니 부드러워 진건지 움직이는 대로 굽어지는 가죽신. 그리고 며칠동안 굶었는지 닭뼈같은 팔목이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였다 하면 쉽사리 찾아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콧수염이 누구지?”
“그 전에 어디든 좀 앉자고.”
“미안하지만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지금 말해줄 생각이 없다면, 달이 우물에 찰 때 즈음 이곳으로 다시 올게.”
"돈 문제군. 하지만 그 귀걸이는 팔지 않는게 좋아."
"보다시피."

소녀는 보풀이 잔뜩 일어난 캐미솔을 펄럭이며 밋밋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이따금 소년을 응시하던 소녀는 차양 사이로 비추는 햇빛에 눈을 찌푸리며 인파 속으로 섞여들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소문과 귀걸이의 주인. 그리고 콧수염. 소녀는 귀걸이 한 쌍을 꺼내 햇빛에 비춰보았다. 깊은 바다처럼 시린 사파이어 속으로 물결이 치는 듯 했다.

소년은 소녀의 얼굴을 되짚었다. 또렷한 눈매와 야무지게 다문 입술. 약간 그을린 구리빛 피부는 그녀가 이곳 출신이 아님을, 적어도 가까운 곳 출신은 아님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잦은 공사가 많은 지역인지라 그리 티가 나지 않는 모습임에도 뇌리에 강렬히 박힌 그 모습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듯 했다.

소년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유난히 그림자가 진을 치는 골목길로 숨어들었다.
그리고는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소녀가 떠난 길을 따라 멀어지는 콧수염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점점 깊은 곳으로 달음박질 치기 시작했다.
우선 알아야만 했다. 무엇에 필요한 귀걸이인지. 오늘밤 달이 뜨는 우물을.

한참을 달리던 그는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찌르자, 주저없이 냄새의 근원지인 하수구로 빠져들었다. 왼쪽 오른쪽 오른쪽 그리고 왼쪽.

"애송이들아! 형님이 왔다, 문열어라!"
"너 한번만 더 그 소리 하면 기름에 튀겨서 감자에 곁들여 먹어버린다!"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넘치는 물을 막는 용도로 쓰이던 돌 문이 무거운 소리를 질질끌며 서서히 열렸다.
칙칙하고 물이끼가 잔뜩 낀 밖과는 달리 의외로 멀끔한 내부의 가문비나무로 덧바른 바닥과 벽면에 차분히 가라앉은 공기가 주변을 맴돌았다.
다 큰 애도 조용해 진다는 그림자 매가 이곳에 자리잡은 줄은 그 누구의 꿈에서나 알까. 그럼에도 당당히 마주한 소년의 얼굴에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엇다.

"조장이나 불러줘. 물어볼게 있다고."
"조장은 지금 없어."
"지금 당장 불러야 할 거야. 왜냐하면 애가 물어볼 것은..."

이윽고 소년은 주머니 속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꺼내들더니, 자신보다 몇 배는 커다란 사내의 면전에 그것을 보였다.

"이것의 용도. 그리고 오늘밤 달이 담기는 우물."

소년의 손에는 시리도록 푸른 귀걸이가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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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달이 마리아노플의 우물에 담기는 밤. 소년과 소녀가 만났다.
이 만남이 무엇을 초래했는지, 수마에 빠져든 모두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멀지않은 미래에 모두가 경악할 사건으로 수면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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