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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밤의 이야기] 카페 거리의 남자와 시골 소녀


전민희 작가님의 이야기

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백여 년 전, 그곳의 한 카페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왕자비로 내정되었다가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어 꿈이 좌절되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납치가 아니라 사랑의 도피였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마리아노플 시민이라면 카페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보면 모르는 체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 온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간 소녀는 귀걸이를 꺼내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슬쩍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카페 거리의 남자와 시골 소녀

“아가씨, 여기서 뭘 하시는 겁니까?”
소녀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네?”
“카페 거리의 저주는 아가씨도 익히 들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백작님이 노하십니다.”
남자는 소녀의 손을 쥐더니 귀걸이를 빼 거리로 던져버렸다. 소녀는 놀라 항의하듯 말했다.
“무례하게 갑자기…….”
그러자 갑자기 남자가 소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소녀는 당황했다. 아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서 오늘 처음 와본 도시에서 잘 차려입은 사내가 나타나 자신을 아가씨라고 부르질 않나, 어디론가 데려가려고 하질 않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들이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소녀는 오해를 풀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꺼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남자는 소녀의 말을 끊고 막무가내로 소녀를 끌고 갔다. 소녀는 어떻게든 남자에게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늘따라 왜 이러십니까? 기분 상하는 일이라도 있으셨나 보군요. 마차 위에서 마저 들어드리겠으니 우선 따라오시죠.”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소녀의 손목을 더욱 세게 거머쥐었다. 하는 수 없이 소녀는 남자의 손목을 콱 깨물었다. 남자는 놀라 소녀의 손목을 놓쳐버렸다. 그제야 소녀는 남자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남자는 물린 손목을 어루만지면서 소녀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아가씨가 아닐 뿐만 아니라 평생을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만 살다가 오늘 처음 마리아노플로 올라온 분이라는 건가요?”
“그렇다니까요!”
“휴……. 야단났군요. 아가씨가 사라져 눈앞이 컴컴했는데, 난생처음 뵙는 분께 이런 큰 실례까지 범하다니…….”
남자는 곤란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소녀 역시 남자가 그렇게까지 미안해할 줄 몰랐기 때문에 이 상황을 난감히 여겼다. 그러자 남자는 제대로 사과도 할 겸 음료라도 한 잔 대접할 수 있겠느냐고 소녀에게 청했다. 소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흔쾌히 승낙했다. 남자는 자신 있게 소녀를 안내했다.
“제가 자주 오는 카페입니다. 이 거리에서 손꼽는 명인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곳이죠.”
자리에 앉자 금방 한 사내가 다가와 음료 두 잔을 내왔다. 카페의 주인인 그는 남자와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더니 도로 주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음료에선 톡 쏘는 맛과 진한 달콤함이 느껴졌다. 기분이 좋아지는 맛이었다.
“우선 이 거리의 저주를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남자는 카페 거리의 소문을 소녀에게 전해줬다. 그곳에 떨어진 장신구를 주운 이들이 얼마나 최후를 맞이하였는지 이야기할 때마다 소녀의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낯빛은 점차 굳어갔다. 요컨대 남자가 자신을 아가씨로 오해하지 않았더라면 자기 역시 다른 이들처럼 장신구를 주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게 아닌가.
남자는 소녀의 굳어가는 표정을 읽었는지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음료 한 모금을 권했다. 음료는 마실수록 단맛이 점점 진해졌다. 마을에서도 톡 쏘는 거품 음료는 있었지만, 이렇게 달지는 않았었는데. 소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음료를 마셨다. 달콤한 게 들어와서 그런지 소녀는 마음이 한결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음료는 순식간에 바닥났다. 소녀가 잔을 내려놓자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더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소녀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질문을 꺼냈다.
“귀중한 아가씨를 찾는 중이셨던 것 같은데, 이렇게 계속 카페에 머무셔도 괜찮은 건가요?”
질문하는 소녀의 눈은 이미 졸음기가 가득해 흐리멍덩해 보였다. 남자는 그런 소녀를 무표정하게 쳐다보더니 말했다.
“괜찮습니다. 처음부터 찾던 사람은 아가씨가 아니었으니까요.”
소녀는 너무나도 정신이 흐려지는 탓에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계속 휘청거리던 소녀가 마침내 잠들기 직전 시야에 들어온 것은 어느덧 커다란 항아리를 끌고 와 책상에 기대선 카페의 주인과 그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러게 말했잖아. 자네가 만든 수면제, 단맛이 나는 건 좋은데 잘 녹질 않아서 죄다 밑바닥에 가라앉는다고.”
사내는 대답 없이 남자와 함께 소녀를 들어 항아리에 집어넣었다.



후기


장신구를 줍는 사람 = 소문을 모르는 타지 사람이라는 점에서 떠올린 이야기입니다. 일부러 이상한 소문을 퍼뜨려 타지 사람을 찾아내고, 엉뚱한 핑계로 접근해 마침내는 납치하는 납치단의 이야기였는데 워낙 줄이고 줄인 부분이 많아 읽는 분들이 이해를 못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네요 ^^; 너무 흔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분량 제한만 없었다면 훨씬 길게 써보고 싶었는데 참 아쉽기도 하고. 아무튼 공모전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 참 고생 많으셨어요!
아, 그리고 여담인데 열린게시판은 들여쓰기가 적응이 안 되네요 ㅠㅠ 혹시 이거 해결 방법 아시는 분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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