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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들어줄 요량으로 욕조를 들어올리려 하니, 생각보다 훨씬 무거워서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페레라 해도 여성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긴 싫은 게 남자의 심리 아니겠는가. 나는 힘든 내색을 최대한 감추고 속으로만 끙끙거리며 욕조를 집안에 들이는 데 성공했다. 생각해보니 이 육중한 욕조에다가 인어까지 집어넣고 옮겼으니 힘들 만도 했던 것 같다. 페레 여성도 힘들었던지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치고 있었다. 과연 저 인어는 어쩔 셈인 걸까? 궁금한 마음에 페레 여성과 인어를 쳐다보니, 곧 그녀가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보아하니 인어가 마음에 드신 것 같은데, 가져가셔도 돼요."
"아, 감사합... 예?"

페레 여성은 반복해서 말하지 않고 앞..아니 손으로 인어를 가리키며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나는 얼빠진 얼굴로 그녀와 인어를 번갈아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할 말 끝났다는 듯, 직접 인어를 들어올려 내게 안겨주는 게 아닌가? 내가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집밖으로 나온 뒤였다. 내 손에는 인어가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 궁시렁대던 게 내게 떠넘길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난감한 기색을 보였지만 볼 사람이 없었다. 일단 집 앞에 인어를 내려놓았는데, 정말이지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정신차리고 날뛸 것 같았다. 이걸 어쩌면 좋담. 대체 대회 측에서는 무슨 생각으로 이걸 준거지? 구워먹기라도 하란 건가? 잠깐, 구워먹어?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인어 앞에 섰다. 아니, 이거 그래도 '인'어인데 식인행위 아닌가 싶었지만, 큼직한 도마 위에 얌전히 누워있는 인어의 번쩍이는 비늘들을 보니 그런 생각은 달아났다. 세상에 살다살다 인어를 구워먹는 날이 오다니.. 일단 통구이를 할 자신은 없었으므로, 나는 눈을 딱 감고 칼을 인어의 살에 집어넣었다. 팍! ... 팍? 칼날은 살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인어의 살갗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아니면, 식칼로는 무리인가? 집으로 들어가서 단검을 가져왔다. 결을 따라 대강 칼을 집어넣으니 어찌 들어가긴 했다.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만, 이왕 시작한 거 끝장을 볼 생각으로 살을 베어냈다. 안쪽 살은 매우 연했다. 마치 연어처럼... 연어라...
...혹시 회로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선인데. 뭔가 비릿한 냄새가 났지만, 눈을 딱 감고 살짝 뜯어먹어보았다. 맛에 대한 설명은 베어낸 살을 날것 째로 다 먹어치웠다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모름지기 날것이라면 구워도 맛이 나길 마련, 나는 슬슬 새로운 맛을 개척한 요리사가 된 기분을 느끼며 인어의 살을 뜨고, 굽고, 튀기고, 조리했다. 인어는 정말 장난아니게 맛있었다. 세상에 이런 맛을 모르고 살았다니,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인어 한 마리를 혼자 다 먹어치우긴 힘들었으므로, 나는 조리한 것과 날 것들을 덜어 인어를 줬던 페레 여성에게 선물로 주기로 했다. 비린내가 심했던지, 페레 여성은 코를 막고 받아 갔지만, 내 생각엔 내일쯤 인어 요리를 좀 더 줄 수 없겠냐고 물으러 올 것 같다. 물론 그 전에 내가 다 먹어치울 거 같지만. 어쨌든 오늘은 배가 불렀으므로 남은 인어의 잔해들을 처리하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뜨거웠다. 열병이라도 앓는 듯, 정신이 혼미해지고 앞이 흐렸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도, 무슨 자세로 있는지도 모르겠다. 속이 메스꺼웠다. 뭐지, 무슨 일이지?
정신차리기도 전에 배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동시에 속이 미친듯이 쓰려왔다. 맙소사, 인어 고기의 부작용이 온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미친 짓이었다. 인어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건지도 상한 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좋다고 날거로 먹고 구워서 먹고 난리를 치다니!
"읇끓끅꺾어윽...."
입에서 거품이 이는 것 같았다. 아, 젠장, 죽을 것 같다.. 하지만 혼자 사는 집에 앓는 소리를 듣고 찾아와줄 사람은 없었다. 눈앞이 검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내 의식은 끊겼다.


새하얀 빛, 따뜻함.. 나는 어디로 온 걸까.
누이 여신을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희멀건 형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정신차려요!"

낯익은 목소리... 힘겹게 정신을 부여잡으니, 페레 여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도 배가 아파와서 따지러 갔더니, 당신은 더한 꼴로 있더군요. 전 죽은 줄 알았어요."

나는 침을 흘리며 누워 있었다. 아무래도 미친 듯한 복통에 정신을 잃고 뒤늦게 페레 여인에게 발견되어 본의 아니게 병간호를 받은 것 같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 페레 여인이 너무나도 아름다워보였다. 나는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나도 모르게 읊조렸다.

"당신은... 내... 생명의 은인이군요..."
"뭐라고요?"
"당신... 아름다워요... 정말로...."
"이봐요, 정신차려..."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종족을 넘는 사랑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인어를 안전하게 먹기 위한 방법을 탐구하며 세계의 인어들을 수집하기 위해 함께 여행을 다니고 있다. 인생은 어떻게 될 지 정말 모르는 일인 것 같다. 인어는 정말로 맛있고, 인어는 최고이며, 페레도 최고라는 것은 절대 불변의 진리임이 분명하다.




와 끝!
사실 병맛으로 가보려고 했는데 생각만큼 안되네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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