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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백여 년 전, 그곳의 한 카페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왕자비로 내정되었다가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어 꿈이 좌절되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납치가 아니라 사랑의 도피였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마리아노플 시민이라면 카페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보면 모르는 체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 온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간 소녀는 귀걸이를 꺼내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슬쩍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여기서 시작!

"이봐, 물건을 주었으면 주인을 찾아줘야지."
소녀는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돌아 보며 귀걸이를 황급히 등 뒤에 감추었다.
"이런... 라넬드, 깜짝 놀랐잖아요!"
그러나 자신에게 말을 걸은 사람을 확인하고는 안심하는 것과 동시에 장난으로 인해 조금 화가 난 소녀다.
"이야~ 미안미안. 뭔가 커다란 치즈를 발견한 생쥐처럼 보여서 말이지. 나도 모르게 장난쳐버리고 싶어졌어."
소녀가 라넬드라고 부른 남성은 멋적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라넬드는 소녀가 고향인 솔즈리드 반도에서부터 같이 이곳으로 배를 타고 온 하리하라 대륙 출신의 상인이다.
무지개 벌판이란 곳이 고향이라고 말한 그는 누이아 대륙에서는 희귀한 황색 피부를 가지고 있어 그런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나저나, 그거 꽤 비싸 보이는걸? 어느 귀족가의 마님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쯤 아마 난리났겠군."
"흥, 제 알 바 아니죠. 칠칠맞지 못한 그 여자가 잘못이에요."
"역시 냉정하다니깐, 세리에는."
라넬드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북북 긁어대며 말했다.
세리에는 그런 라넬드를 가볍게 무시한 뒤 겨울의 빛처럼 차갑고 아름다운 푸른빛을 반사해내는 사파이어 귀걸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다가올 무서운 재앙을 알지 못한채......


****


낮의 화창한 햇살이 거짓말인 것처럼 모두가 잠들 늦은 밤에는 검은 먹구름이 비바람을 몰고 왔다.
굵은 빗방울은 얼룩져 있는 창문과 부딛혀댔고 바람은 그 창문을 잡고 흔들어댔다.
마치 안에 있는 누군가를 잡기 위한 것처럼 말이다.
작은 여관의 침대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제일 작은 방에는 한 소녀가 낡은 침대 위에 누어 잠을 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감은 소녀의 이마에는 식은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괴로운지 얼굴을 찌푸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어디선가 다가온 하얀 서리가 그녀를 감싸오자 숨쉬기가 더 괴로워진 그녀는 마침내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켰다.
"커허억... 허억..."
가쁘게 숨을 내쉬는 그녀는 불안한 눈초리로 주위를 둘러보며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좁은 방안에는 어느 누구 숨을 공간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 사실이 더 두려웠다.
오늘밤만 무려 네 차례나 반복 된 악몽은 언젠가 정말로 소녀를 집어 삼킬것 같았다.
소녀는 꼭 쥐고 있던 작은 손을 애써 펴 보았다.
아직도 떨리는 손위에는 시리도록 푸른 사파이어가 어둠속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오늘 낮 한 카페에서 우연히 이 사파이어 귀걸이를 주운 뒤 소녀, 아니 세리에는 연속으로 반복되는 악몽을 꾸었다.
차가운 손길이 자신의 목을 조르는 악몽을.......
세리에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땅을 밟고 일어서 좁은 방을 나왔다.
문을 열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그녀의 연약한 몸을 덮어 살갗이 시렸지만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활짝 열린 여관 문으로 다가가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찰박찰박
그때, 순간 뒤에서 물에 젖은 발걸음 소리가 들린 듯 했지만 세리에는 애써 비바람 소리를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세리에는 온몸이 경직된 나머지 마른 침을 억지로 목구멍에 밀어넘겼다.
꿀꺽
'무... 무슨소리지.......? 분명 지금 여관에 머무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는데.......'
세리에는 계속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에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마치 발이 땅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움직일 수 가 없었다.
찰박찰박
그 사이에 발걸음 소리는 계속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 세리에는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면서 잠시나마 멈췄던 식은땀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발자국 소리가 자신의 바로 등 뒤에서 없어지자 세리에는 공포에 휩싸였다.
덕분에 방금 전 악몽으로 이미 힘이 빠진 몸은 또 다시 심하게 떨려왔다.
한참을 악몽이라고 자신을 진정시키던 세리에는 조그만 용기를 얻게 되었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그러자 줄곧 세리에의 뒤에 있었던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이 작고 차가운 한기가 뿜어져 나오는 손으로 세리에의 가녀린 목을 세게 움켜 쥐었다.
"커헉... 컥...!!"
갑작스런 일에 세리에는 놀라 저항하려 했지만 여성의 악력(握力)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힘에 세리에의 저항은 소용없었다.
숨이 막혀 눈이 뒤집혀지려는 순간 세리에는 여성의 목 부근에 손자국으로 멍이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슬픔에 젖은 건지 한(恨)에 가득 찬 건지 모를 여성의 갈라진 목소리.......
"..........!!!!"
정신을 잃고 기절한 세리에가 마지막으로 들은 건 유령의 목소리였다.


****


따사로운 햇살이 한점 스며드는 곳 없는 지하실에는 누군가의 웃음소리와 피비린내, 무언가 썩어가는 악취로 뒤섞여 음침한 기운이 도사렸다.
그 안에서 루비보다 짙은 붉은색의 액체가 담겨있는 조그만 병을 기분좋게 흔들고 있는 한 사람은 본래 하얀색이였지만 피로 물들어버린 붉은 장갑을 벗어버리고 품격있는 발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나갔다.
마지막 희생양을 찾아서 말이다.


****


"우으음......."
눈을 뜬 순간 세리에에게 보인 것은 세련된 도시의 단정한 거리였다.
어젯밤의 일들은 모두 허상이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비교적으로 세련된 듯 했으나 건축물들 모두 옛날의 방식대로 지어진 구형이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우연히 자신의 복장을 보게 된 세리에는 자신이 귀족의 영애들이나 입을 만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이게 뭐지?'
세리에가 한참 당황스러워 하고 있을때 누군가 저 멀리서 자신을 향하여 오는 것을 보았다.
"세리에님~!!"
자신에게 다가온 하얀색과 연한 하늘색이 어울려져 있는 메이드복의 시녀 한명은 녹색의 짧은 보브컷이 잘 어울리는 귀여운 타입이였다.
16살 먹은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시녀는 처음 보는 사람이였지만 그녀는 분명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어라... 동명이인인가? 내 이름이 흔한가보네.'
세리에가 그렇게 느끼고 있을 때 시녀는 세리에가 생각치도 못한 일을 하고 말았다.
"한참 찾았잖아요! 어서가요, 데리피드 왕자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시녀는 세리에의 손목을 황급히 잡고 어딘가를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으에에에에엑???"
세리에는 갑작스런 일에 저항 조차하지 못한채 그대로 처음보는 시녀에게 끌려가 버리고 말았다.


****


난생처음 접해보는 왕궁이라는 곳은 말로만 듣던 천국이라는 곳이 아닐까 할 정도로 호화로웠고 아름다웠다.
보석의 장식뿐만이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미의 극치.
세리에는 그 완벽한 아름다움에 아무것도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자신이 서 있는 왕궁을 바라볼 뿐이였다.
"세리에님 왜 그러세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입술을 삐쭉 내미는 시녀의 물음에 세리에는 흠칫하다가 그제서야 제정신이 들었다.
"저.. 저기, 제 이름은 세리에가 맞긴 한데... 당신이 말하는 세리에가......."
"오! 세리에. 드디어 오셨보군요."
세리에가 땀까지 삐질삐질 흘려가면서 오해를 설명하려는 순간 때마침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가 뒤에서 부터 들려와 세리에의 말을 막아버렸다.
세리에가 고개를 돌려보니 목소리의 주인은 따스한 햇살의 황금빛을 머금은 금발에 청회색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복장이 금빛 장식을 겸비한 남색 연회복인 것을 보니 분명히 귀족이나 왕족일 가능성이 상당한 인물이다.
"어찌나 오시지 않기에 내가 불안하여 시녀인 메이란을 보내 당신을 찾아오게하였습니다. 그래, 구경은 즐거우셨습니까?"
"아... ㄴ.. 네.."
얼마나 온화한 목소리와 따스한 미소인지 세리에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질문에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왕자비가 되시면 이제 자유롭게 밖을 나가시지 못하니 지금이라도 두루 다니시는게 좋긴하지만 당신을 걱정하는 저도 이해해주셔야죠."
세리에는 방금 눈앞에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고있는 남성의 말에 숨이 그 자리에서 멎을 뻔 한 것을 느꼈다.
"ㄴ..네??? 왕자비요????"
"후훗. 맞아요 당신은 나 데리피드 일리온. 제 2왕자의 왕자비가 될 사람이에요."


****


"하아......."
마치 공중에 떠있는 구름위에 앉은 것처럼 부드러운 실크가 깔린 최고급 침대에 앉은 세리에는 자신의 밝은 황갈빛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애처롭게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왕자비라니... 기쁘긴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세리에는 애써 지나간 기억을 되돌려 생각을 해봤지만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이야기였다.
"세리에님, 어디 편찮으세요? 안색이 많이 창백해 보이세요."
이름이 메이란이라고 한 처음에 세리에를 왕궁으로 데려온 시녀는 세리에가 왕궁에 있는 세리에의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만 앉아있는 것을 보고 다가와 살며시 물었다.
"아... 아니.. 괘..괜찮아."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세리에는 혼란스런 머리속을 잠시 비워두고 지금 굴러들어온 금덩이를 어떻게하면 잘 활용할 지에 대해 궁리하다가 메이란에게 물었다.
"저기.. 메이란. 오늘이 며칠이지?"
"에? 오늘요? 오늘은 분명히 AE678년 4월 13일이였죠."
"뭐? 678년????"
세리에는 메이란의 말에 또 다시 기절할 뻔했다.
왜냐면 세리에가 살던 시대는 분명 AE814년이였기 때문이다.
분명 메이란은 이런 것에 장난을 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리에는 백여 년이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온 것이다.
세리에는 그 사실을 깨닫자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지더니 갑자기 이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게 되었다.
"자..잠시만 세리에ㄴ....!"
파악!
그리하여 세리에는 메이란의 손길마저 뿌리치고 방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


건물의 구조도 모른 채 무작정 뛰어다니기를 한참, 세리에는 드디어 넓은 왕궁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여긴 도대체 출구가 어디야?!"
아무리 뛰어도 계속 똑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세리에는 투정을 부리며 미로같은 왕궁을 헤메었다.
"어, 세리에?"
그때 마침 자신을 부르는 부드러운 목소리.......
"와..왕자님???"
데리피드 일리온 왕자였다.
"여기서 뭐하시나요?"
"아... 그..그게... 구..구경이요! 너무너무 예쁜게 많아서..."
세리에는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 어설픈 변명을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에 데리피드 왕자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의 머리칼처럼 따스하게 말했다.
"애써 숨기지 않아도 돼요. 역시 왕궁이 부담스러운거죠? 괜찮다면 따듯한 차라도 한 잔 하러 제 집무실에 들어오실래요? 비록 서류들 때문에 엉망이지만요."
"아.. 네. 감사해요."
세리에는 정신이 없을 때 따듯한 것을 마시면 어느정도 괜찮을거라 생각하고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자 왕자는 또 다시 부드런 미소를 지으며 세리에를 자신의 집무실로 인도했다.


****


왕자의 집무실은 조금... 아니, 엄청 어질러져 있었다.
산더미 같은 서류와 서적들이 집무하는 책상에는 물론 심지어 접객용 쇼파에도 쌓여있어서 무척이나 답답하게 느껴졌다.
"죄송해요. 보시다시피 작성해야하는 일이 많아서......."
"아... 아뇨.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나저나 왕자님은 많이 바쁘신가봐요?"
세리에는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려 노력했지만 역시 티가 났는지 왕자의 얼굴에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었다.
"네, 국경의 치안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관리하다보니......."
왕자는 그렇게 집무용 책상 오른편에 있는 작은 서랍속에서 티 세트와 찻잎을 꺼내며 씁쓸하게 웃었다.
"우와... 대단하시네요."
"세리에가 그렇게 말해주니 왠지 기쁜데요?"
왕자는 세리에가 서류들과 함께 앉은 쇼파앞 작은 테이블위에 주전자에 찻잎과 뜨거운 물을 넣어 차를 우리고 세리에의 찻잔에 은은한 녹빛의 차를 따라주었다.
세리에는 조심스레 찻잔을 들어 천천히 차를 마시자 향기롭고 상쾌한 향이 몸안에서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정말 좋은 차 같아요."
"차맛을 잘 아시네요. 두 왕관의 특산품이에요."
"특히 끝맛이 조금 달콤한게 정말 제 취향이랑 잘 맞네요."
세리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왕자는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그건 제가 다른 것을 넣어서 그럴거에요."
"뭔데요?"
"수면제요. 크크크크"
세리에는 아까전과 정반대로 달라진 왕자의 말을 듣자 정신이 혼미해 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대로 다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


기분 나쁜 습한 기운, 구역질 나는 악취, 자신의 형체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세리에는 자신이 지옥에 와 있다고 생각했다.
어렴풋이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피의 계약, 영원불멸의 생명에 속한 어둠. 누이를 거스르는 힘......."
이 목소리는 분명히 정신을 잃기전 단 한번 들었던 데리피드 왕자의 진정한 본모습의 소리였다.
세리에는 소리치고 싶었지만 무언가 자신의 목구멍을 막아놓은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나오질 않았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영원의 생, 희생의 피를 위한 나의....... 영생을!"
왕자는 어둠속에서 미치광이처럼 소리를 지르더니 어둠속에서 작은 불씨 하나를 만들어 냈다.
이 공간을 모두 밝히기에는 부족했지만 세리에가 왕자의 모습을 보기에는 충분했다.
왕자는 날이 시퍼렇게 선 단도를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루비빛의 액체가 담긴 작은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세리에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뒤늦게서야 자신이 굵은 기둥에 묵여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저벅저벅
왕자는 기계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천천히 세리에에게 다가왔다.
세리에는 두려움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며 다가오는 사람이 과연 아까전 부드런 미소를 짓던 사람과 동일 인물인지 의심스러웠다.
마침내 세리에의 코앞에 다가온 왕자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단도를 이용해 자신의 손등을 십자형으로 그었다.
피가 상처에서 부터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지자 왕자는 유리병을 막고있던 마개를 틀어 열고는 자신의 피를 몇방울 그 안으로 흘려보냈다.
왕자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건지 세리에는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세리에는 자신의 위험을 인지했다.
아니나다를까 왕자는 다시 단도를 굳게 잡은 손을 위로 높이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세리에를 향해 내리찍었다.
푸욱!!
"꺄아아아아악~~!!!"
뼈를 뚫는 아픔에 세리에는 살을 찢는 비명을 외쳤다.
그러나 이미 어께를 관통한 단도를 통해 세리에의 피가 바닥에 한방울씩 떨어졌고 왕자는 세리에의 피를 유리병에 넣었다.
그러자 유리병의 액체는 선홍색에서 연한 청록색으로 색을 바뀌였다.
"크크크크... 드디어 영생의 존재가 될 수 있다.... 이것으로... 난... 누이를 거스를 것이다!!"
섬뜩한 웃음을 짓는 왕자를 보던 세리에는 문뜩 어잿밤 유령이 자신의 목을 조르며 하던 말이 생각났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그 말은 처음 듣는 말이였어도 익숙한 느낌이였다.
"카..네스...트로이드...."
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이 말을 한 순간 자신은 방울소리가 들린것 같았다.
그리고 차가운 한기가 왕자를 감싸며 공중에서 저절로 생성된 날카로운 얼음의 결정들이 왕자를 공격하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크흑... 이년...!! 어떻게 '네베의 기억'을....!!!!"
왕자는 매우 고통스러워 하며 세리에를 살기를 담은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결국 결정들이 모여 생긴 얼음의 송곳들에게 당할 수 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아악!!!!"
온몸이 얼음의 송곳 투성이가 된 왕자는 투명한 얼음에 붉은 피를 물들였다.
털썩
결국 피로 찌든 검은 바닥에 왕자는 쓰러졌고 그런 왕자를 힘없이 바라보던 세리에는 급격히 몰려오는 피곤함으로 인해 다시 정신을 잃었다.


****



"이봐! 세리에!! 이런데서 자는 거냐??"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뜬 세리에는 왠지 모르게 10년은 못 만난 것처럼 느껴지는 라넬드라는 하리하란 상인이 너무나 반가웠다.
"아... 라넬드?"
세리에는 자신이 여관침대에 누어 있는 것을 알아채고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자 라넬드는 그런 세리에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너 몽유병있냐? 자려면 침대에서 잘 것이지 왜 궂이 비오는 날 방에서 뛰쳐나오냐고."
"저기.. 라넬드 있죠. 저 많이 졸리거든요? 그러니까 좀 푹쉬게 나 좀 내버려 둘래요?"
세이레는 퉁명스럽게 주절주절 잔소리를 해대는 라넬드에게 한번 말해둔 뒤 라넬드를 방에서 나가게 했다.
그리곤 정말 다시는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악몽이였다고 생각하다가 문뜩 라넬드의 손등에 십자 흉터가 있던것을 기억해 냈다.

소설응모

태그는 148개 글로 이야기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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