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의 기록
'파비트라 대 여제' 13화. 신대륙의 인물들
2014-07-02 09:09 조회 12283
이튿날 아침, 황궁 꼭대기에 파비트라 여제의 깃발이 내걸렸다.
밤새 집 안에 숨어 떨던 사람들은 아침이 되어 깃발을 보자 환호성을 올렸다. 여제께서 돌아오셨다는 외침이 거리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노인들은 샤미르 3세 폐하의 이름을 부르며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그간 다할은 황도 사람들에게 극도로 민심을 잃었다. 어쩌면 다할에게는 오랫동안 통치할 계획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쟁 준비를 하겠답시고 신설한 거래세가 상인들을 옥죄었고 거기에 야간 통행 금지령이 더해지자 시장은 완전히 활기를 잃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투옥 소식도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예전에 파비트라에게 발탁되었거나, 포상을 받았거나, 하다못해 그 시절 관청에서 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이 감옥으로 잡혀 들어갔다. 그걸 본 시민들은 혹시 자기도 연루된 게 없나 싶어 겁을 집어먹었다. 다할의 측근들이 거느린 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런 두려움을 이용해 사람들을 협박하고 온갖 이득을 취했다.
지난 밤, 상당수의 황도군은 교전 도중 스스로 투항해 왔다. 진심으로 다할을 따르는 자는 거의 없었다. 파비트라가 황궁에서 다할과 독대하고 있을 때 문제의 측근들은 짐을 실은 수레와 함께 이미 도망친 뒤였다. 황도의 지리를 잘 아는 연의군 장교들이 탈출로를 추적했지만 황도 근처의 마을에서 버려진 수레만이 발견되었을 뿐, 다할의 측근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디르와 연의군은 시민들을 보호하라는 파비트라의 명령을 철저히 지켰다. 교전 중 입힌 피해도 배상할 것을 약속했다. 다만 예외적으로 행동한 자가 있었다. 아게우스의 죽음으로 분노한 케사드는 적을 도륙하면서 집을 여러 채 불태웠고, 항복하는 황도군들은 물론 달아나는 시민들까지 죽였다.
보고를 받은 파비트라는 자신이 좀 더 강하게 주의를 주었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때늦은 일이었다. 케사드는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파비트라를 도왔지만 정예 훈련을 받은 군인이 아니라 성질 사나운 마적이었다.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파비트라는 케사드를 벌할 수밖에 없었다.
“황명을 어긴 케사드의 행동은 사형을 받아 마땅하나, 그는 황제의 목숨을 여러 번 살린 공이 있노라. 케사드의 관직을 박탈하고 황도 앞 광장에서 태형 백 대를 내리도록 하라.”
채찍 백 대를 맞고 쓰러졌던 케사드는 파비트라가 은밀히 보내준 의사의 집중적인 보살핌을 받았지만 며칠 뒤 집을 나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케사드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씁쓸해하는 파비트라에게 나디르가 말했다.
“돌아오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케사드는 우리 군의 구성과 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그자가 적에게 투항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틀린 지적은 아니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음모의 핵심인 부강한 오스테라가,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일으켰던 카타니아 황녀가 남아 있었다. 그들은 지금쯤 다가올 파비트라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주변 도시들로 이미 손을 뻗쳤을지도 몰랐다.
오스테라와의 일전은 이스밀의 복수를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배신이 밝혀진 이상, 오스테라는 제국의 일부가 아니라 다시 병합해야 할 적국이었다. 전선은 어디가 될 것인가?
나디르는 케사드를 지명 수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파비트라는 생각 끝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 케사드는 한때 온 마음을 다해 여제를 섬겼던 신하이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큰 신세를 졌던 은인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을 한 번의 어긋남 때문에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또한 이것은 개인적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신하들의 사기를 고려해야 했다. 케사드와 함께 싸웠던 자들, 케사드가 거느렸던 자들, 특히 마적 출신으로 케사드와 함께 파비트라를 도왔던 자들은 이미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만약 케사드를 죄인으로 수배한다면 그들의 마음은 되돌리기 힘들어질 터였다.
그리하여 사라진 케사드는 은밀히 수색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찾게 되면 정중히 데려오기로 했지만, 반면 거절한다고 해서 보내 주는 것은 또 안 될 일이었다.
나디르는 파비트라의 결정에 따랐지만 여제가 마음이 여려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퍼진 동요도 가라앉지 않았다. 케사드의 행동이 아게우스의 죽음 때문이었음이 알려지자 아게우스의 동료들도 케사드의 처우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이럴 때 역으로 소문을 퍼뜨려 여론을 뒤집는 것은 류이진의 전공이었지만 그는 이 자리에 없었다. 이제 황제군이 된 파비트라 군의 사기가 흔들릴수록 파비트라는 류이진이 아쉬워졌다. 황도로 데려올까 몇 번이나 생각해 봤지만 역시 지금은 안 될 일이었다.
케사드 문제가 아니더라도 재정복한 황도를 정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몇 번이나 황제가 바뀐 곳이었다. 천하가 뒤집힐 때마다 사람들은 분열되었고, 그들 사이에 패인 골은 쉽사리 메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간 다할이 옥에 가뒀던 자들을 풀어주고 중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겪은 고초가 곧 특권을 의미한다고 여겼다. 그들은 다할 시절에 벼슬을 했던 자들을 모조리 파면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적극 가담한 자들은 몰라도 단순히 관리였던 자들까지 파면한다면 국정이 마비될 판이었다. 물과 기름 같은 자들을 함께 일하게 두다 보니 충돌이 벌어지지 않는 곳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또한 이샤마와 알키미를 찾도록 보낸 자들도 쉽사리 좋은 소식을 가져오지 못했다. 파비트라는 격무와 마음고생으로 전쟁 전보다 더 수척해졌다.
다행히 그 무렵, 황도의 탈환을 알리기 위해 비파 항구와 탑의 도시로 보냈던 사신들이 돌아왔다. 류이진과 메레디스는 황제의 노고를 위로하는 선물과 함께 두 도시가 굳건히 지켜지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보내왔다.
메레디스가 지키는 탑의 도시는 오스테라 군의 공격을 한 차례 받았지만 대응하지 않고 성문을 걸어 잠갔고, 적은 수십 일 만에 제풀에 지쳐 물러갔다. 늙은 장군 메레디스는 이제 용장은 아니었지만 수성에는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또 하나, 류이진은 아직 진위 확인은 되지 않은 이야기라며 새로운 소식을 적어 보냈다. 페레들이 사는 지역의 준동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오스테라 인들이 변경에 소란을 일으켜 파비트라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자금을 대어 흔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적의 정세 판단이 너무나 정확해서 파비트라는 헛웃음마저 나왔다. 황도를 정비하며 원정을 준비하는 것만 해도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인데 페레들까지 들고 일어난다면 오스테라를 정벌하는 것은 머나먼 미래로 미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스테라에는 훌륭한 전략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 시기, 오스테라의 총독 발니오 안토니오는 사실상 오스테라의 참주였다. 발니오는 개인적으로 부패한 인물이었지만 모략에 능했고 그 때문에 30여 년이나 군림해 왔다. 유력한 귀족 가문들은 발니오를 지지하며 도시 내의 각종 이득이 나는 사업을 독점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테라는 꽤 안정된 도시였다. 그것은 오스테라 인이라면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고까지 여겨지는 ‘균형 감각’ 덕택이라고 했다.
오래 전, 도시가 막 탄생하던 시절부터 독립 및 교역권을 놓고 제국과 줄다리기를 해 온 오스테라 인들은 모든 분야에서 균형을 맞추는 데 탁월했다. 그들은 백성을 수탈하더라도 어느 선에서 자비도 베풀어야 할지, 사업으로 이득을 취하더라도 어느 선에서 분배도 해야 할지, 뇌물을 받아 인사 청탁을 처리하더라도 어느 선에서 정식 임용과 조화시켜야 할지 잘 알았다. 백성들도 이미 그런 지배에 익숙해져 있었다.
발니오 또한 균형에 민감했고 또한 영리했기 때문에 귀족들의 욕망을 조율해 참주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런 지배가 30년을 넘어가자 발니오도 서서히 균형 감각을 잃기 시작했다.
그 무렵 카타니아 황녀가 오스테라를 찾아와 발니오의 머릿속에 제국의 패자가 될 수 있다는 욕망을 불어넣었다. 그간 오스테라는 늘 제국에서 독립하고 싶어 했지만 몇 번의 시도는 무거운 세금으로만 돌아왔다. 제국이 혼란하고 누구도 완전한 계승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시대가 온 지금이야말로 기회가 아니겠는가?
카타니아는 어리디 어린 파비트라와 애송이 이스밀 따위는 노회한 참주인 발니오의 계략에 휘말리면 제 손으로 제 목을 조르면서도 모를 것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발니오는 카타니아를 믿진 않았지만 자기 자신을 믿었다. 못 할 것이 뭐겠는가? 성공한다면 독립은 물론 제국을 쥐락펴락하게 된다. 오스테라의 역사가 뒤바뀌는 것이다.
오스테라 인들은 늘 균형을 잘 알았기에 판돈을 한 곳에 거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그러지 못했다. 어찌 보면 아라야니 1세가 매긴 중과세가 그들의 판단을 흐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오스테라는 발니오의 판단이 흐려진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비파 항구의 호족을 이용해 ‘낙조대의 난’을 일으켜 이스밀을 죽였고, 다할을 지원하여 황도를 손에 넣게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얼마 뒤 파비트라에게 도로 비파 항구를 빼앗겼고 공들여 길러 온 군대는 나디르가 이끄는 연의군에게 섬멸 당했다. 잠시 손에 넣었던 탑의 도시는 사절단으로 온 메레디스에게 어처구니없이 빼앗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도마저 탈환당하고 말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여자로만 여겼던 여제가 그렇게까지 전략에, 그리고 전투에 능할 줄은 몰랐다. 류이진도, 나디르도, 메레디스도 모두 빼어난 인재들이었지만 그들을 충성하게 한 여제의 힘이 더욱 놀라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발니오를 지지했던 오스테라의 귀족들은 고심 끝에 다시 발니오에게 힘을 실어 주기로 했다.
그들도 발니오의 머리를 잘라서 여제를 찾아가 용서를 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비파 항구는 사면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오스테라는 그간 누렸던 자유와 부를 잃고 억압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오스테라 인은 타협과 사탕발림에 능했지만 굴욕을 참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스테라 인은 이제 도시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총 단결했다. 식견이 있다고 이름난 자들이 정파를 불문하고 총독의 성으로 모여들고, 좋은 전략이 있다며 찾아오는 자가 줄을 이었다. 발니오는 그들 모두를 환영했다. 회의가 밤낮으로 벌어졌다.
황도는 지리적으로 멀었다. 원정을 막고 시간을 벌려면 여제에게 새로운 관심사를 주는 것이 가장 좋은 계략이라는 합의가 이뤄졌다. 변경에 소란을 일으키려면 한때 테미 제국을 일으켜 하리하랄라야 제국을 급소까지 위협했던 페레가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그들을 매수할 황금이라면 오스테라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같은 무렵, 매사냥 고원의 어느 산길을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알키미와 이샤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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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사
@이녹
53레벨
애도의 악사
하리하란
이샤마아아아아아아;ㅂ;2014-07-0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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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사
@이녹
53레벨
애도의 악사
하리하란
지금 게임 세계관 내에 이샤마는 생존중이라는데 좀 보여주세요오오오오2014-07-0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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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쉬뚜쉬
@올로
55레벨
환영사
엘프
역시 류이진 없으니 일이 안되는구만...2014-07-03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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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mis
@루키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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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
누이안
이샤마가 생존해 있다면.. 맵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까..2014-07-0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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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다랑어
@키프로사
52레벨
첩자
누이안
윗분들 하리하랄라야 폐허 퀘스트 깨보셨으면 알겠지만2014-07-08 22:36
하늘정원 npc인 폐하가 이샤마입니다.. -
강다루
@루키우스
50레벨
첩자
하리하란
하리하랄라야의 폐허에 있어요2014-07-18 1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