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귀환' 1화. | 조각난 연대기

2014-12-24 09:33 | 조회 9699










진은 눈앞의 작은 홀을 얼떨떨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 동료들과 헤어졌던 그곳이 정말로 여기일까? 그때와 달리 홀은 어딘가 낡은 듯했다. 바닥에는 먼지와 낙엽이 쓸려 다녔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열린 문에서 들어온 듯했다. 멀리서 바람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방금 빠져나온 정원의 문이 보였다. 그 너머는 여전히 다양한 계절을 보여주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진은 자신이 얼마 동안 정원에 머물렀던가 생각해 보았다. 며칠? 몇 달? 몇 년? 그곳은 밤낮도, 피로나 배고픔도 없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는 땅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겪은 일들을 생각할 때 적어도 한두 달은 흐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렇게 오래 있었지만 진은 정원에서 누구와도 마주치지 못했다. 어느 무렵부터는 친구들은 이미 정원에서 나갔으리라고 생각하고 돌아가는 문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변화하는 정원 안에서 길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영영 길을 잃은 줄 알았던 그때, 진은 이곳에 다다랐다. 길을 찾았다는 의식조차 없이, 빠져나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홀의 모습은 떠났던 때와 어딘가 달랐다. 그러나 어떻게 다른지 잘 기억할 수가 없었다. 정원에 머무는 동안 워낙 많은 변화를 보았기에 진의 눈은 변화에 무뎌졌다. 그래서 홀 중앙의 의자에 앉은 사람을 발견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오키드나였다.



움직임은 없었다. 금빛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얼굴을 감춘 채, 곧 미끄러질 듯 비스듬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잠든 건지, 깨어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기다리느라 너무 지친 것일까.
진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가가 오키드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순간, 눈을 뜬 오키드나가 고개를 홱 들더니 바짝 도사렸다. 진은 그제야 오키드나가 평소 자신을 싫어했음을 기억해 내고 손을 뗐다. 정원에서 지내는 동안 진은 그만큼 과거와 심리적으로 멀어져 있었다.



오키드나의 눈빛은 진을 반기지 않는 듯했지만 진은 물어볼 것이 많았다. 그 동안 키프로사는 돌아왔는지, 혹은 이곳을 떠났는지 궁금했다. 타양과 다른 동료들은 돌아왔을까?



그러나 진은 대답을 듣지 못했다. 오키드나는 진의 말을 잘 알아듣지도 못했고, 분노에 차서 온갖 맥락 없는 말을 쏟아놓았다. 진은 한참 동안 오키드나와 대화를 하려 애썼지만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한두 달 사이에 저렇게 심각하게 변할 수가 있을까 의아하면서도 동시에 착잡했다. 키프로사가 이 모습을 본다면, 또는 보았다면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진은 홀 한쪽 구석에 주저앉아 생각을 정리해보려 했다. 이대로 기다려야 할까, 돌아온 사람이 있는지 찾으러 떠나야 할까? 하지만 오키드나가 반쯤 미친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비웃었다 하는 가운데 진지한 생각을 하기란 어려웠다. 진은 몇 번이나 도로 일어나 오키드나를 붙들고 달래 보려 했다. 그러나 긁히고 찢긴 상처 외엔 아무 소득도 없었다.



진은 거듭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이렇듯 빠져나왔는데 다른 사람인들 아직 정원 안에 있을까? 하지만 키프로사가 정원에서 나와 저런 모습을 보았다면 오키드나를 내버려두고 이곳을 떠났을까?
조금 더 생각하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오키드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도울 방법을 찾으려 해도 두고 떠나는 방법 뿐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천성이 다정한 진은 선뜻 저런 상태의 오키드나를 두고 떠날 마음을 먹지 못했다. 진는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입구를 나섰다. 고작 몇 달 전일뿐인데 이상하게 오래된 기분이라고 생각하면서, 처음에 문을 열 것인가 말 것인가 토론을 벌이던 장소까지 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상대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볼 수 있었다. 주위가 밝아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이 어둠을 꿰뚫어보았다. 모습은 물론 움직임까지 선명하게 떠올라왔다. 용이었다.
지난번에 힘겹게 싸웠던 기억, 죽은 나이마와 그 후로 일어난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나이마를 떠올리자 진의 정신은 신의 정원에서 추락하여 현실로 돌아왔다. 그 때의 고뇌도, 안타까움도, 후회도 모조리 되살아났다.
진은 즉시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면서도 홀로 싸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정원으로 달아나는 편이 좋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용의 모습이 그때와 달랐다. 몸이 가늘고 긴 데다 긴 수염을 갖고 있었다. 또한 용은 진을 공격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진이 의문을 떠올리자, 입 밖에 내기도 전에 대답이 들려왔다.




“ ‘전란’이여, ‘도탄’이여. 그대는 세계에서 오랫동안 잊혔고, 따라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대의 권능에 예속된 자이다. 그대는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 나와 함께 세상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나는 그대의 첫 모습을 지켜본 자이며, 마지막도 지켜보고자 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 순간 그대에게 가장 권하는 바는 나와 함께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찾지 못한 진리가 아직도 가득한 저 정원 안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진심으로 권하노니 제발 돌아가 다오.”




진은 용이 하는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마지막 말의 의미만은 뚜렷했기에 되물었다.




“정원으로 돌아가라고? 왜지? 내가 그 안에서 찾지 못한 진리란 뭐지?”




용은 설명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진은 정원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 대한 감각이 돌아온 지금, 언제 나올지도 모를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헤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는 동안 키프로사가 돌아와 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권하는 대로 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정원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 두 번째로 권하는 건 없나?”



“그런 것은 없다. 오직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니 하나를 버린다면 다른 하나가 있을 뿐.”




그렇게 말한 용은 목을 내밀어 진을 위에 타게 했다. 그러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진은 용의 목 위에서 세계가 스쳐가는 것을 보았다. 세계의 배꼽을 찾아오는 동안 보았던 풍경들이, 또는 처음 보는 풍경들이 사라져갔다.



“어디로 가는 거지?”



용은 그대의 마음에 달렸다고 답했다. 어디로 가고 싶은가? 진은 델피나드를 떠올렸다. 어쩌면 친구들이 그곳에 돌아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진은 키프로사를 다시 만나 화해하고 싶었다. 이번에 화해한다면 다시는 어긋나지 않고 함께 조용히,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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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 막내호랑이 @진 | 55레벨 | 추적자 | 하리하란
    오와!!
    2014-12-24 10:07
  • 웨이 @진 | 55레벨 | 추적자 | 하리하란
    서...선댓글 후감상!!
    2014-12-24 10:09
  • 기하림 @레비아탄 | 55레벨 | 유령 용사 | 페레
    3빠!
    2014-12-24 10:13
  • 명석몽 @안탈론 | 52레벨 | 유령 용사 | 페레
    진이 정원에서 나간 이후의 이야기다!
    2014-12-24 10:22
  • 미애 @레비아탄 | 51레벨 | 유령 용사 | 하리하란
    훗.....
    2014-12-24 10:49
  • 달보다쿵했져 @에안나 | 40레벨 | 포식자 | 하리하란
    나도 선댓글 후감상!!!!!!!
    2014-12-24 17:53
  • 시츠크미 @안탈론 | 55레벨 | 첩자 | 누이안
    와우..
    2014-12-24 18:05
  • 샤넬블루 @루키우스 | 55레벨 | 사제 | 페레
    정원에서 찾지 못한 무언가
    2014-12-24 19:08
  • 뚜쉬뚜쉬 @안탈론 | 55레벨 | 은둔자 | 엘프
    오키찡 ㅠㅠ
    2014-12-24 20:22
  • 핫핫 @에안나 | 55레벨 | 그림자 검 | 엘프
    용타고다니고싶당
    2014-12-25 08:16
  • 루어매니아 @진 | 53레벨 | 길잡이 | 페레
    나도
    2014-12-25 14:57
  • 근접 @에안나 | 51레벨 | 그림자 검 | 하리하란
    2014-12-25 16:35
  • 로울르프 @크라켄 | 55레벨 | 은둔자 | 엘프
    2014-12-28 20:48
  • 카일룸 @키프로사 | 20레벨 | 마법사 | 하리하란
    나이마에 대한 정보가 없었는데 나이마가 죽었다고 여기서 밝혀졌네요. 왜 죽었는지도 궁금하고 진이 키프로사랑 화해하고싶다고 써있는데 나이마랑 관련있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분노랑 환락능력이랑 종족 좀  빨리 추가해주세요
    2014-12-31 19:34
  • 매터 @루키우스 | 55레벨 | 은둔자 | 하리하란
    드래곤은 신의 권능을 불완전한상태로 얻은 진에게  정원으로 돌아가 각성하기를 바란것일까?
    2015-05-07 01:06
  • 블랑 @노아르타 | 55레벨 | 검은 기사 | 페레
    다같이 벽에 낙서한 때에는 있었던거 같은데 아무래도 입구에 있었다던 저 용이랑 싸울 때 죽은거 아닌가요?
    2016-09-23 0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