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게시판
글쓰기태그네비게이션
전체글[소설 응모] [전민희] 운명이 비틀어진 찰나의 이야기
2014-10-22 20:20 조회 2881 이르셰인 @크라켄 55레벨 마법 근위관 하리하란전제되는 이야기 (전민희 작가 저)
마리아노플의 카페 거리에는 음산한 소문이 있다.
백여 년 전, 그곳의 한 카페에서 목이 졸려 살해당한 여자가 유령이 되어 떠돌며 구석진 곳에 장신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왕자비로 내정되었다가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명예가 훼손되어 꿈이 좌절되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납치가 아니라 사랑의 도피였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마리아노플 시민이라면 카페 거리에서 떨어진 장신구를 보면 모르는 체하라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타지에서 온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다.
카페가 붐비던 화창한 봄날, 솔즈리드의 시골 마을에서 온 소녀가 의자 틈새에서 화려한 사파이어 귀걸이 한 짝을 발견했다.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간 소녀는 귀걸이를 꺼내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슬쩍 건너다보더니 말했다.
운명이 비틀어진 찰나의 이야기
“……음기…아니, 거의 귀기라 할 만한 기운이 감도는 물건이군요.”
솔즈리드의 것보다 애매한 억양에 독특한 발음의 공용어라 소녀는 처음의 몇 마디를 알아듣지 못했다. 이윽고 그것이 귀걸이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니, 체구가 작은 검은 머리의 여성이 어느 샌가 다가와 있었다. 온갖 사람들이 다 있어 보이던 마리아노플에서의 짧은 나날 가운데에서도 접한 적이 없는 의복을 갖추어 입고 있었다.
“아, 놀라지 말아요. 그걸 빼앗으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에요.”
“…누구시죠?”
소녀는 귀걸이를 움켜쥔 손을 다른 손으로 덮으며 반문했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어딘가 연령을 추측하기가 힘든 용모의 그는 소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도를 아시나요?”
“……네?”
“도를 깨우치고 그대로 행하면 그 정도로 귀기 어린 물건이라 해도 반드시 길한 일로 이어진답니다. 먼저 제를 올려 하늘과 땅에 알리고 기를 받는 데서부터…악!”
처음 들어보는 기이한 이야기에 소녀가 더욱 경계하는 자세를 보이자, 허공에서 사람이 나타나 여성의 뒷통수를 있는 힘껏 후려갈겼다. 따악! 맑고 고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디서 약을 팔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표현이었지만 어쩐지 의미만은 알 수 있었다. 덩치가 큰 붉은 짐승과 함께 나타나 검은 머리 여성의 뒷통수에 강렬한 일격을 날린 것은, 같은 옷을 입은 은발의 여성이었다.
“미안해요, 아가씨. 얜 그저 그런 작가인데, 최근 들어 뭘 조사하는지는 몰라도 하슬라에 틀어박혀 있길래 데리고 나왔더니 이 모양이네요.”
아주 그냥 맛이 갔어요, 하고 머리 옆에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려 보이는 은발 머리의 여성은, 땅바닥에 그대로 엎어져 있는 검은 머리의 여성보다 유창한 표준 공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제야 소녀는 이들이 하리하란이라 불리는 동쪽 대륙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대로 주위에 소리를 질러 경비병을 부를 수도 있었지만, 호기심이 먼저 일었다. 서로 갈라선 역사를 넘어 이제는 마리아노플에서도 드물게나마 하리하란이나 페레 모험가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소녀는 아직 그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깨닫고 보니, 소녀는 카페 거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인적 드문 공터에서 이방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경비병에게 들키면 경을 칠 일이다.
이들은 동쪽 대륙의 하슬라라는 곳에 살고 있는 자매로, 서쪽의 다채로운 풍경을 좋아해서 자주 돌아다닌다고 했다. 물론 서로 적대하는 대륙간의 관계 때문에 아까 본 그 붉은 짐승의 도움을 받아 숨어 다닌다고도 털어 놓았다.
소녀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원래부터 이렇게 대담했던가.’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들을 붙잡고 이야기꽃이라니, 확실히 평소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게다가 그 사람 많은 카페에서 비싸 보이는 귀걸이를 주워든 것부터가 느닷없는 행운이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귀걸이를 아직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귀걸이를 꺼내어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거역하기 힘든 충동이 엄습했다. 마치 무엇인가의 의지에 조종 당하는 것처럼, 소녀는 주머니 속의 귀걸이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검은 머리 쪽이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잘 봐, 언니.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 역시 저건…”
갑작스럽게 분위기를 잡고 말끝을 흐린다.
“왜 그러시죠?” 소녀가 되물었다.
“그 귀기를 얼른 어떻게 하지 않으면 위험해요. 역시 이건 도를 따라서…” 따악!
뒤집은 주먹의 손등으로 정수리를 얻어 맞고 눈물을 머금은 채 입을 다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정말 맑고 고운 소리가 나는 머리구나, 하고 소녀는 다소 핀트가 어긋난 생각을 했다. 눈을 감고 하아, 하고 작게 한숨을 쉰 언니 쪽인 은발은 지긋지긋하다는 투로, “그러니까 도중부터 왜 약을 파는 거야…….” 하고 내뱉었다.
“저기…무슨 문제라도……?”
한 번은 어쨌든, 두 번이나 문제 삼으니 역시나 신경이 쓰여서, 소녀는 물었다. 언니 쪽이 또다시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당신이 가진 그 귀걸이는 우리 같은 모험자들이 ‘세계의 단서’라고 부르는 종류의 것이에요. ‘원주민’에게 영향을 끼쳐 우리를 이끄는 힘이 깃들어 있죠. 보통은 소유자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일이 진행되는데, 어째선지 당신은 영향을 받으면서도 완전히 ‘자아’를 조종당하지 않고 있어서 사실은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죠.”
“알면서 때린 거야!?”
“누가 약을 팔래?”
“이런 기회 잘 없다니까.”
“그러다 제재 먹어, 너.”
꼬박꼬박 동생에게 타박을 주면서, 소녀를 바라본다. 사실은 알고 있잖아요, 하고 묻는 듯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소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들었다.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하는 영역이 아냐. 어서 움직여. 돌아가야 돼. 나는…….
표정을 지운 채 휘청대지도 않고 어색하게 움직이는 소녀. 짙은 아쉬움을 드리운 자매의 얼굴은 더 이상 그에게 보이지 않았다.
“아, 모처럼 재미있었는데.”
“그러게. 도대체 무슨 스크립트를 짜 넣으면 저렇게 되는 거지?”
“마리아노플에서 느낌표 뜨는 거 보고 식겁했다니까.”
“그래서 약 판 거야?”
“응!”
따악! 맑고 고운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그저 허공에는 초록빛의 문자가 점멸하고 있었다.
주석
- "세계의 단서" : Quest Item
- "원주민" : NPC
- "자아" : Pattern
이따위 내용으로 쓰면 절대로 책에는 뽑히지 않겠지 하고 생각은 하는데 일단 쓰고 싶은대로 써 보았습니다. 원래 좀 약 먹은 내용으로 쓰려고 했는데...어째선지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져서 방향 수정했어요, 으하하...
-
사혼
@크라켄
55레벨
음유 시인
하리하란
선추드리고 너무 졸려서 자고 와서 읽겠...;;2014-10-22 22:18
-
루어매니아
@진
53레벨
길잡이
페레
ㅋㅋㅋㅋㅋㅋㅋㅋㅋ2014-10-23 01:14
-
뚜쉬뚜쉬
@안탈론
55레벨
환술사
엘프
히든 퀘가 날라간다아...2014-10-23 09:21
-
Nighthawk
@크라켄
55레벨
정신 파괴자
누이안
어디서 약을 팔아!! 에서 뿜어뜸 ㅋㅋㅋ2014-10-23 09:25
-
Solari
@크라켄
52레벨
백기사
하리하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2014-10-25 2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