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비스코니아 전쟁사

고대 비스코니아 전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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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비스코니아 전쟁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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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서문

겨울. 북풍 곶의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계절. 북풍 곶의 아이들은 눈꽃과 함께 자라나고 얼어붙은 달 그림자와 함께 잠들었다. 따뜻한 남쪽 사람들은 우리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리라.위대한 비스코니아의 삶 자체가 투쟁이자 전쟁이니. 우리는 언제나 노련한 사냥꾼이자 용맹한 전사이다. 갈망하던 얼어붙지 않는 항구를 찾아 남쪽으로 뻗어 나아갈 때, 허약한 병졸을 가진 북 메어는 우리를 막기 위해 가소로운 자들을 데려왔다. 데이어 가문이라는 족속이었다. 이제 8년에 걸쳐 그들과 함께 써내려간 피의 역사를 남기고자 한다.


제1장: 왕자의 분노

네베 신이 차가운 한파로 겨울의 첫 인사를 보냈을 무렵, 비스코니아의 장병들은 환호하고 있었다. 북 메어에 충성하던 장군은 비스코니아의 뛰어난 지휘관인 울덴 왕자에게 빌었다. 노련한 맹장이라고 으스대던 장군이 울덴 왕자에게 대패한 것이다. 울덴 왕자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창병이 단번에 심장을 찌르게 하는 것일 뿐. 울덴 왕자는 베어낸 장군의 머리를 백마에 실어 북 메어로 보냈다.

울덴 왕자는 새로 빼앗은 성의 이름을 서리꽃 성이라 지었다. 북 메어가 있기 전부터 구축된 성벽은 탄탄했다. 성을 뺏겨 기세가 눌린 북 메어가 소극적일 때, 비스코니아 군대가 남쪽으로 향하면 네베 신의 심술궂은 북풍에도 얼어붙지 않는 항구를 얻을 수 있다고 울덴 왕자는 판단했다. 몇 달 더 고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리라. 병사들과 설원에 몸을 파묻고 보름을 기다리다가 서리꽃 성을 차지했기에 그들은 더한 일도 못할 리 없었다.

울덴 왕자는 성에서 빼앗은 술을 모두 병사에게 나눠 주었다. 장군들은 울덴 왕자가 술까지 마실 수 있었으면 완벽한 영웅이 되었을 거라고 탄식했다. 울덴 왕자는 그날 밤 성벽에 서서 날이 샐 때까지 남쪽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승리의 신 아크리테스가 언제까지나 자신과 함께할 것이라 울덴 왕자는 믿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아크리테스 신은 울덴 왕자를 편애하지 않았다. 서리꽃 성에서 하루를 전진한 평원에는, 처음 본 적수가 비스코니아 군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을 들고 일제히 도열한 병사는 북 메어의 허약한 경비병들과 눈빛부터 다른 강인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울덴 왕자와 병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두세 달 내내 이어진 전투 모두 승리했기 때문이다. 비스코니아 군대는 눈밭을 뛰어다니며 창병을 향해 진격했다.전투는 비겼다. 하지만 울덴 왕자는 그렇지 못했다. 배에 적의 부러진 창날이 박힌 것이다. 울덴 왕자는 들것에 실려 서리꽃 성에 들어오면서 말했다. <나의 무례였다. 상대가 데이어 창병인 것을 알았다면 더 신중하게 전투에 임했을 것이다.>

울덴 왕자의 죽음을 북풍 곶의 사람 누구도 막지 못했다. 볼프그렌 왕자는 특히 그 점에 슬퍼했다. 동생의 시신을 본 볼프그렌 왕자는 절규했다. 그리고 복수의 신 아달누스에게 데이어 창병을 이끄는 <전나무의 왕> 제임 데이어의 머리를 바칠 것을 맹세했다.왕은 동생을 잃고 분노한 왕자를 막지 않았다. 볼프그렌 왕자는 비스코니아의 소영주들에게서 뛰어난 병사를 차출했다. 그의 능란한 수완에 전투에 참여하는 군대는 이전의 2배가 되었다.그 사이 데이어 창병은 철수하지 않고 평원에 있었다. 데이어 창병을 이끄는 전나무의 왕 <제임 데이어>는 우직한 자였다. 볼프그렌 왕자의 복수심이 몰아쳐 오기를 묵묵히 기다렸던 것이다...


제2장: 첫 전투

볼프그렌 왕자는 울덴 왕자보다 몸이 약하고 검술도 떨어지는 자이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하고 참을성이 강한 인물이다. 그리고 데이어 창병이 주둔하는 곳 뒤에 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평원을 사이에 두고 두 군대가 고착된 지 몇 주일. 볼프그렌 왕자가 직접 키운 정예병들은 철수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말을 돌린 정예병들은 우회해서 강 상류를 찾았다. 그리고 네베 신의 입김에 얼어붙은 강물을 따라 밤새 썰매를 타고 내려갔다.

어느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비스코니아 군대는 평원으로 이동했다. 데이어 창병도 서둘러 전열을 갖췄다. 볼프그렌 왕자는 선봉 부대의 장수들에게 깊이 돌격하지 말고 시간을 끌 것을 명령했다.데이어 창병의 창날이 거세게 몰려왔겠지만 비스코니아의 장수들은 노련하고 굳건하게 싸웠다. 북풍을 막던 방패는 촘촘히 창날을 막았다. 지리한 방어 끝에 데이어 창병 뒤 멀리서 뿔나팔이 울렸다.볼프그렌의 정예병이 데이어 창병 뒤의 보급 기지를 점령한 것이다. 타오르는 보급 기지를 보며 데이어 창병은 물러섰다.

방패 뒤에서 참던 비스코니아의 도끼는 물러서는 데이어 창병을 용서하지 않았다. 북 메어의 기록에는 데이어 창병이 후퇴하면서도 많은 비스코니아 군대를 죽였다고 나오지만, 이것은 편협한 이야기다. 비스코니아 군대는 분명 대승했다. 많은 데이어 창병의 몸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비스코니아 북쪽 갈퀴 곶의 젊은 영주 울판테르는 시체 더미 위에서 전나무의 왕을 보았다고 한다. 그의 활솜씨면 충분히 맞출 수 있었지만 전나무의 왕 머리를 볼프그렌에게 양보하기 위해 멈췄다고 한다.


제3장: 치욕의 패전

데이어 창병을 물리친 후 협상가의 입과 편지가 비스코니아 왕성과 북 메어 왕성을 오고 갔다. 그 사이 볼프그렌 왕자의 군대는 북 메어의 오합지졸을 물리치며 전진했다. 평원과 평원 너머 강변까지 비스코니아의 영토로 확정된 듯했다.군대는 조용히 볼프그렌 왕자의 지시를 기다렸다. 볼프그렌 왕자는 왕에게 울덴 왕자의 뒤를 이어 남쪽으로 진격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최소한 북 메어의 사신이 전나무의 왕, 제임 데이어의 머리를 가져오기 전에는 철수하지 않겠다고 했다.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볼프그렌을 따르는 비스코니아 군대는 남쪽으로 향했다. 새로운 성을 차지하고 전리품을 챙겼다. 술에 취한 볼프그렌 왕자는 데이어 창병을 조롱하는 시를 지었다.그 시를 전해 들었는지 데이어 창병이 다시 몰려왔다. 성을 잘 활용하기로 소문난 비스코니아 군대이지만 새로 차지한 성은 대군이 모여 격전을 치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성을 나와 일부러 뒤로 물러나는 쪽을 선택했다.

강가까지 물러난 것은 누구도 생각 못한 패착이었다. 네베 신의 계절이 가고 네블라 신이 미소 지으며 강물은 거세게 범람하였다. 긴 대치 상태와 성 포위전을 치른 군대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온 데이어 창병의 기동력에 맞서 강을 등지고 싸우느라 힘들었을 것이다.많은 장수가 죽었다. 볼프그렌 왕자가 총애하는 울판테르의 등에 데이어의 가증스러운 창이 꽂혔다. 볼프그렌 왕자도 말이 넘어져 위기에 빠졌었지만 어린 기사 록웰의 용기로 탈출할 수 있었다. 애석하지만 기록은 정확해야 한다. 비스코니아 군대는 그때의 패배를 설욕하지 못하고 서리꽃 성까지 다시 밀려나야 했다.


제4장: 서리꽃 성 공방

겨울과 여름이 몇 차례 흘렀다. 비스코니아 군대가 이길 때도 질 때도 있었다. 남쪽의 성까지 갔다가 다시 서리꽃 성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이때 볼프그렌 왕자는 더 말이 없어지고 생각이 많아졌을 것이다.어느 밤에 서리꽃 성벽에 큰 땅울림이 일었다. 북 메어가 데려온 솜씨 좋은 마법사들이 성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마법사들은 비스코니아의 도끼 앞에 휩쓸리듯 죽었지만 뚫린 성벽은 되돌릴 수 없었다. 북 메어의 역사가는 그때 파괴된 잔해가 공교롭게도 바위조각으로 만든 덫처럼 변해서 오히려 데이어 창병의 돌격을 어렵게 하고 수성을 쉽게 했다고도 주장했다.

역사가의 주장이 어떻든 성벽이 무너진 성에서 비스코니아 군대는 물러서지 않고 북 메어 군대, 특히 데이어 창병을 견뎌냈다. 수 개월의 전투에도 물러서지 않는 볼프그렌 왕자의 소식을 들은 북 메어 왕은 그를 <하얀 악마>라 불렀다고 전해진다.성을 지키는 동안에도 계절은 흘렀다. 물줄기는 다시 차갑게 얼어붙었고 설원은 더욱 하얗게 변했다. 겨울은 언제나 비스코니아의 편이었다. 볼프그렌 왕자는 회심의 공격을 준비했다.서리꽃 성에서 병사들이 일제히 쏟아지듯 앞으로 나갈 때, 데이어 창병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눈보라에 몸을 숨겨 이동한 볼프그렌과 정예병의 측면 기습이 더 빛을 발했다.

데이어 창병은 징그러운 자들이지만 그들과 싸워본 비스코니아의 장수들은 데이어의 우직함과 용맹만은 인정한다. 그들은 기습에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전열을 가다듬고 응전했다.볼프그렌 왕자는 검과 도끼를 양손에 들고 전장의 선봉에 섰다. 서리가 맺힌 수염과 차갑게 굳은 얼굴에 눈빛은 붉을 정도로 빛났다 한다. 그래서 볼프그렌의 얼굴을 본 북 메어 병사들이 네베 신의 환영으로 착각하고 주저앉았다는 말이 전해진다.


제5장: 전나무의 왕을 죽이다.

볼프그렌 왕자는 마침내 전나무의 왕을 코앞에서 마주했다. 볼프그렌의 검이 전나무의 왕 배를 찔렀고 왼손의 도끼가 높이 들렸다. 아달누스 신에게 약속대로 전나무의 왕 머리를 바칠 참이었다. 하지만 데이어 창병들이 달려들었고 볼프그렌 왕자는 수하들에게 휩싸여 뒤로 물러나야 했다.전나무의 왕이 죽었다는 소식은 금방 퍼졌다. 볼프그렌 왕자는 전나무의 왕 머리를 못 자른 것을 통탄했다. 술에 취해 정예병을 이끌고 전나무의 왕 시신이라도 쫓으려 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이때 북 메어에서 더 어이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데이어 창병을 이끌 다음 전나무의 왕이 여자라는 것이었다. 제임 데이어의 부인 로지아 데이어였다. 전나무의 여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볼프그렌은 <여자와 무슨 칼을 맞댄단 말인가.>라고 일갈하며 밤을 새워 술을 마셨다.다음 날 볼프그렌 왕자는 북풍 곶에 있는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며 젊은 기사 록웰에게 정예병의 지휘권을 넘겨주었다. 전나무의 왕 머리를 못 취한 순간부터 볼프그렌은 어떤 삶의 목적을 잃은 듯 했다. 다음 해 어느 날 볼프그렌 왕자는 열병을 앓으며 울덴 왕자의 이름을 몇 번이나 되뇌이다가 숨을 거두었다. 너무도 아까운 죽음이었다.

록웰은 볼프그렌의 소식을 듣고 땅을 주먹으로 치며 울었다. 그리고 왕자의 뜻을 이어 얼어붙지 않는 항구를 차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전나무의 여왕은 의외로 교활한 자였다. 비스코니아 영토로 넘어오지는 않으면서 비스코니아 군의 전진은 막았다.시간이 흐르고 희생이 많아질수록 비스코니아의 왕께서는 병사들의 사기 저하를 우려했다. 하지만 비스코니아 군대는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비스코니아 병사 한 명의 머리가 잘리면 데이어 창병 세 명의 머리를 가져올 각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되었다.


제6장: 후일담

결국 북 메어는 간사한 술수로 전쟁을 중단하였다. 그 직전까지 비스코니아의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전나무의 여왕 목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갈퀴 곶의 젊은 영주세르케반의 활이 제임 데이어의 아들 시어드릭의 목을 꿰뚫었다는 소문이 그나마 비스코니아 인들의 마음을 위안했다.몇 년 후 왕께서는 볼프그렌을 대리한 기사 록웰에게 데이어 고원과 맞닿은 영지를 하사했다. 하지만 록웰은 언제나 의기소침하고 신경질적인 자였다. 훗날 록웰이 눈을 감으며, <볼프그렌 왕자님께 죄송해서 누이 여신의 품으로 가는 것조차 황송하다.>고 말했다.


참고 문헌

비스코니아 사기
비스코니아의 흥망성쇠
볼프그렌 전기
울덴 왕자, 용사의 노래
북 메어 전쟁사
비스코니아의 무뢰한, 록웰
이니스테르의 문화 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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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자 : 리바이 @진 | 55레벨 | 사제 | 누이안 (2015-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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