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일기 - 에아나드
나나의 일기 - 에아나드
(추가바람)
생산 정보
- 나나의 일기 - 에아나드 원고 x1
- 종이 x10
- 기억의 잉크 x1
- 가죽 x5
소모 노동력 : 25
필요 숙련 : 없음
제작대 : 인쇄기
원고 획득 정보
- 증오 능력 각성 퀘스트 <증오를 일깨운 마법> 완료
내용
#1
로사 언니는 진과 함께 에아나드에 가서 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언니가 마법을 배우러 다닐 때부터 나는 그림자 매의 집에 남아서 타양이나 흑야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타양과 흑야가 순찰을 나갈 때면, 아샤벨이 날 돌보기로 했는데 나는 그의 눈을 피해 몰래 그림자 매의 집 밖을 나돌아다녔다. 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델피나드를 돌아다니며 로사 언니 몰래 이것저것 맛있는 것을 먹기도 했다.
시장에서 음식을 달라고 명령하면 누구든 내게 순순히 음식을 내줬으니까.
덕분에 나는 점점 빠르게 성장해 갔다.
#2
어느 날, 그림자 매의 집에 낯선 엘프가 찾아왔다.
언니와 함께 알렉산데르에게 마법을 배우고 있는 아란제브였다.
그는 엘프면서 언니를 좋아하고 있었다.
언니도 아란제브에게 호감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둘의 관계가 보다 진척되길 기대하며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언니가 아란제브와 이어지면, 진과는 이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니까.
요즘 진이 로사 언니와 함께 다니면서 점점 둘의 사이가 가까워지는 거 같아 신경이 쓰인다.
나는 아란제브에게 언니와 잘 지내라는 의미로 내가 아끼던 꿀사탕을 줬다.
아란제브는 미소를 지으면서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3
요즘 나는 그림자 매의 집 앞에 있는 매의 광장을 지나는 사람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다.
많은 사람이 매의 광장을 지나는데, 그중에는 언니와 아란제브처럼 몸속에 특별한 기운을 품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바로 마법사였다.
붉은색 로브를 둘러쓴 젊은 마법사가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호기심에 마법사의 뒤를 은밀히 쫓기 시작했다. 요즘 나는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이 나를 잘 인지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깨우쳤다.
덕분에 나는 붉은색 로브를 둘러쓴 마법사에게 들키지 않고 뒤를 밟을 수 있었다.
마법사는 인적이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가더니 낯선 마법의 언어를 내뱉은 후 사라졌다.
#4
나는 밝은색 로브를 둘러쓴 마법사가 에아나드로 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아나드로 어떻게 갈 수 있는 걸까?
에아나드로 가고 싶었으나 언니는 내게 에아나드로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에아나드에는 마법사들만의 공간이기 때문에 내가 자칫 그곳에서 길을 잃거나 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절대 위험해질 일이 없는데, 로사 언니는 그걸 모른다.
내가 최근에 알게 된 능력을 로사 언니에게 숨겼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내게도 로사 언니에게 말 못할 비밀이 있다.
#5
몇 명의 마법사가 에아나드로 들어가는 걸 지켜본 후, 나는 깨달았다.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내가 에아나드로 들어갈 수 있음을.
발걸음을 옮겨 에아나드로 들어갔다.
마법사들은 델피나드에서 에아나드로 연결되는 문을 만들어서 에아나드로 이동하지만, 나는 그냥 그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가 있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보다 더 큰 시공의 벽도 마음만 먹으면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왜 이런 능력이 있는 것일까?
벽을 넘는 내 능력이 마치 숙명처럼 느껴진다.
#6
에아나드는 흥미롭다.
얼핏 보면 델피나드와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델피나드와 다른 것들이 무척 많았다.
역삼각형으로 세워진 건물에서부터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섬 같은 건물도 있었으며, 빛을 내뿜는 마법사의 동상 따위도 곳곳에 있었다. 델피나드가 세상의 각 지역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과 달리, 에아나드의 거리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텅 빈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난 느낄 수 있었다.
텅 빈 것처럼 보이는 거리 구석구석의 은밀한 그림자 속에 그곳을 지키는 마법사의 눈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마법사의 눈을 피해 에아나드 곳곳을 돌아다녔다.
#7
낮은 벽은 여왕의 앞을 막지 못한다!
여왕은 벽을 뛰어 넘는다!
여왕은 더 높은 벽을 뛰어 넘을 수도 있다!
여왕은 자신이 뛰어넘은 자리에 문을 만든다!
여왕의 문이 우리를 이 감옥에서 나가게 해주리!
온 세상이 여왕의 문을 통해 나온 우리의 비늘 아래 조아리리라!
미숙한 여왕이시여, 당신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부정한 여왕이시여, 고립의 고통이 증오를 잉태할 때 운명의 문이 열릴 것이오!
증오의 여왕이시여, 파괴가 혼돈을 낳을 때 역사는 과거로 되돌아가리!
#8
귓가에 메아리치는 노랫소리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느낄 수는 있다.
저 노랫소리가 말하는 여왕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그리고, 저 귓가에 메아리치는 노랫소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나는 저들이 말하는 여왕이고픈 생각이 없다. 나는 그저 로사 언니의 동생인 것으로 족하다.
아무런 목적 없이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로사 언니의 따뜻한 손길이 있는 한 나는 여왕이 되지 않을 것이다.
#9
에아나드에서 그림자 매의 집에 찾아왔던 아란제브를 발견했다.
아란제브는 높은 탑 위에서 석양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석양을 바라보며 분홍색 꽃잎을 뿌렸다.
탑 아래로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는 꽃가루가 마치눈송이처럼 보였다.
나는 그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꽃잎을 뿌리는 거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니네르, 나는 아직도 당신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잊지 않을 겁니다."
담담한 듯 나오는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아란제브는 지금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니네르, 당신은 잊혀질 거야."
#10
아란제브와 진이 로사 언니와 함께 그림자 매의 집에 왔다.
셋은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주로 하는 것은 로사 언니와 아란제브였으며, 진은 묵묵히 둘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
진은 로사 언니와 가까워지고 있는 아란제브를 경계하고 있지만, 아란제브는 진을 경계하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란제브가 진을 증오하게 될 운명이란 게 느껴졌다.
왜일까?
아란제브는 증오란 걸 모르는 침착한 엘프인 거 같은데?
문득, 로사 언니와 나 사이에 엮인 불길한 운명의 실이 느껴진다.
나는 왜 내가 느끼는 알 수 없는 운명이란 걸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부정한다.
운명을 부정한다.
그것이 내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