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일기 - 운명의 경계

나나의 일기 - 운명의 경계

(추가바람)

생산 정보

소모 노동력 : 25
필요 숙련 : 없음
제작대 : 인쇄기

원고 획득 정보

  • 증오 능력 각성 퀘스트 <증오를 일깨운 사명> 완료

내용

#1

진과 타양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림자 매의 집에 적이 쳐들어왔다.
니케포루스 장군이 이끌던 15연대의 전역 병사들이 불시에 그림자 매의 집을 습격한 것이다.
항상 매의 쌍검이라 불리는 진과 타양의 지휘를 받아 왔던 그림자 매의 대원들은 당황하여 허둥댔다. 로사 언니는 노련하게 그런 그림자 매의 대원들에게 집기를 꺼내 입구와 통로를 봉쇄하게 하였다.
니케포루스 장군의 부하가 무려 오백 명이나 됐기 때문에, 숫자가 열세인 그림자 매가 할 수 있는 건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한 농성전 뿐이었다.
그림자 매의 대원들은 로사 언니의 지휘를 전혀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2

전투가 시작되자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그림자 매의 농성군이 열세를 면할 수 없었다.
니케포루스 장군의 부하가 그림자 매의 대원보다 무려 열 배나 많았기 때문이다.
조를 짜서 구역을 나눠 농성을 벌였으니 부상자가 계속 늘어났다.
나는 피튀기는 싸움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요즘 들어 내면에 잠겨 있던 힘이 점점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니케포루스 장군의 병사를 모두 물러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힘의 반작용이 두려웠다. 로사 언니를 잡고 있는 손을 놓칠 정도로 큰 반작용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3

숫자에 밀려 그림자 매의 부상자가 계속 늘어났다.
군인 출신인 한본과 가야르가 나타나 로사 언니를 대신해서 그림자 매를 지휘해 잠시 대치 국면이 조성됐지만, 불리한 건 매한가지였다.
힘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림자 매의 집이 침략자의 손에 불타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종일 농성전을 벌이고 있는 그림자 매의 대원들을 위해서 빵을 먹기 좋게 잘라서 나눠줬다.
나를 발견한 그림자 매의 대원들은 모두 놀라 소리쳤다.
"어, 나나? 너 어디 있다가 나왔냐? 근데 위험해! 얼른 들어가!"
"나나잖아? 얼른 네 언니 옆에 가 있어!"
이들은 목숨을 걸고 나를 지키려 한다. 그런데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

#4

바리케이트가 뚫리면서 니케포루스 장군의 부하들이 그림자 매의 건물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거의 이백 명에 이르는 많은 숫자였다.
쏟아져 들어오는 적을 바라보며 로사 언니가 중얼거렸다.
"학파에 들어가 보기도 전에 죽을 순 없어."
로사 언니는 목숨을 걸고 싸우려는 것 같았다. 로사 언니마저도 목숨을 거는 이 마당에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반작용이 두려워 머뭇거리는 것은 이제 사치처럼 여겨졌다.
허리에 차고 있던 나무 막대를 꺼내는 로사 언니의 손을 붙잡았다.
"내가 도울까?"
이제 나도 나 자신을 건다.
내 안의 힘을 꺼내 눈앞의 적을 모조리 죽이리라.

#5

로사 언니가 내 손을 쓰다듬었다. 따스한 기운이 손끝에서 들어와 몸 안에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로사 언니가 말했다.
"아주 조금만."
로사 언니는 내가 저들을 전부 죽이려는 걸 걱정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을 죽인 뒤 내가 더는 로사 언니의 손을 붙잡고 있을 수 없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바꿨다.
로사 언니가 원하지 않으니 저들의 목숨만은 살려주리라.

#6

나는 귓가에 메아리치는 소리가 울려오던 격리된 심연과 눈앞을 이어주는 문을 열었다.
본능적으로 내가 지금 이 세상과 심연을 연결하는 문을 활짝 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다.
심연에 들어간 적은 많았으나, 그곳의 문을 연 적은 없었다.
문을 연 순간, 더는 돌아갈 곳을 잃어버리게 될 거란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문을 열었지만, 활짝 열지는 않았다.
그저 심연에 메아리치는 존재들이 그 모습을 밖에 비출 수 있을 만큼의 좁은 틈을 열었을 뿐이다.
공간의 틈이 열리는 순간, 심연에 잠들어 있던 어마어마한 기운이 쏟아져 나와 내 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너무나도 편안했다. 당장에라도 두 눈을 감고 잠들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내가 잠든 순간 나는 나나가 아닌 심연의 여왕이 될 것이다.

#7

심연의 틈에서 드러난 존재의 모습을 보게 된 니케포루스 장군의 부하들은 모두 겁에 질려 달나아버렸다.
절대적인 포식자가 가져다주는 공포를 그들은 모두 체험했던 것이다.
순식간에 전투는 끝이 났다.
적들은 모두 그림자 매의 집 밖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포위를 푼 것은 아니었다.
적이 다시 쳐들어온다면, 그때도 심연의 틈을 열어야 한다. 심연의 틈에서 흘러나오는 그 기운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로사 언니가 걱정할 거 같아서 티를 내지 않았지만, 나는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낯선 감정을 느꼈다.
심연의 기운에 잠식당해 로사 언니의 동생 나나가 아닌 다른 존재로 변해버릴 것만 같은 공포를.

#8

다행히 내가 심연의 틈을 다시 여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때마침 흑야와 타양이 나타나서 니케포루스 장군의 부하를 모두 쫓아내 버렸다.
내가 정말 위기에 빠졌을 때 흑야와 타양이 나를 지켜준 것이다.
그림자 매의 전투는 끝이 났지만 내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심연의 틈에서 흘러나왔던 기운이 여전히 내 몸 안에 남아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두 눈을 감고 포근한 심연의 기운에 몸을 맡기라고.
운명에 맞서지 말고 순응하라고.

#9

심연의 기운에 젖어들지 않기 위해 잠을 자지 않고 얼마나 버텼을까?
시간이 희미하게 느껴질 무렵, 운명의 실타래가 굴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로사 언니의 손을 잡고 실타래가 인도하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물안개가 수면 위를 무겁게 덮고 있는 바닷가였다.
로사 언니는 파도가 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바다야. 저 너머에는 새로운 땅이 있대. 유리알 항구 말고, 더 멀리. 에페아 반도보다도 멀리. 그 땅엔 고대의 유적과 짐승들뿐이라고 해. 이프나들은 그곳까지 건너갔던 모양이야."
언니가 꺼낸 '이프나'라는 단어가 내 심장을 거칠게 뛰게 하였다.

#10

나는 지금 이프나라는 존재에게 강한 적대감을 느끼고 있다.
이프나란 걸 본적도 없고 들은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도 그 이름이 마치 원수처럼 여겨진다.
몸 안에 잠들어 있던 심연의 기운이 요동치며 나를 잠식할 것만 같다.
나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새벽녘에 나를 이곳으로 인도한 운명의 실타래에 집중했다. 백사장에 떠내려온 커다란 깃발로 보이는 천 조각이 보였다.
나는 깃발을 가리켰다.
"나나, 이게 뭐지?"
깃발에 그려진 나무 문양을 가리켰다. 이것은 언니가 아는 것이다.
언니는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 보다가 중얼거렸다.
"싱?" 로사 언니가 내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나나, 말해봐. 이게 싱의 문장이야? 어디서 온 거지? 그리고 넌 어떻게 알았어?"

#11

나는 싱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만 그것을 언니가 알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운명의 실타래가 나를 인도했으니까.
남이 모르는 것을 알고, 남이 아는 것을 모른다. 나는 이상하다. 나는 언니와 다르다.
벽이 느껴진다. 슬픔이 밀려온다.
몸 안에 잠식해 있는 심연의 기운이 다시 깨어나려 한다. 그때 내 어깨를 붙잡고 있는 로사 언니의 손길에서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로사 언니는 나를 붙잡아 주고 있다.
나는 깨어나려는 심연의 기운을 강하게 억눌렀다.
운명에 굴하지 않으리라!

#12

"언니, 알잖아. 난 어느 쪽에도 머물 수가 없다는 걸. 어디에도 완전히 속할 수 없어. 하지만 언니를 사랑해. 그래서 돌아온 거야. 언니가 원하는 한 여기 있으려고."
로사 언니가 서글픈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여기 있는 편이 좋은 거지?"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물론이지." 로사 언니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절박한 내 심정을 말했다.
"난 언니가 없으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 날 버리지 마. 내 곁에 있어줘."
로사 언니는 영문을 몰라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지금도 네 곁에 있잖아?"
언니를 부둥켜 안으며 말했다.
"응, 지금처럼. 계속."

#13

나는 경계에 서 있다.
나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내 위치는 경계일 뿐이다.
이 자리에 머무를 운명이 아니기에.
이런 내 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어느 날, 나와 비슷한 운명을 품고 있는 여자를 만나게 됐다.
매의 형제가 되겠다고 찾아온 낯선 여자.
여자의 시선은 진을 향해 있다. 여자의 마음은 꽃과 칼을 함께 쥐고 있다.
그녀 역시도 운명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것이 느껴진다.
저 여자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사랑의 꽃일까? 사명의 칼일까?
동질감과 호기심이 동시에 느껴진다.
여자가 진에게 다가가 인사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멜리사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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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자 : 쫄복 @키리오스 | 55레벨 | 흑마법사 | 엘프 (201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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