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는 책

제목 없는 책

제목 : 미상
분류 :
작자 : 미상


16쪽

처음 집으로 데려다 주는 그를 옆에서 보았을 때, 다정해 보이는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올곧고도 차가운 눈동자에 내심 놀랐다. 하지만 참 맑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 맑은 눈동자가 벨라지오 부인 바로 앞에 있었다.


17쪽

"오늘은 그대이 대답을 듣고 싶군요." 맑은 눈동자 아랫입술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모르겠다는 눈빛, 하지 마시죠. 나에게는 파도를 헤치던 뱃사람의 피가 흐릅니다. 언제나 도시의 예법으로만 당신을 대할 거로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말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르는 그를 보며 벨라지오 부인은 깨달았다. 맑은 눈동자에 숨겨졌던, 거친 물결에 휩싸이게 되었음을.


31쪽

벨라지오 부인은 한 뼘 정도 키가 큰 그를 잠시 빤히 올려다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보지?"
화려한 무대의 조명 아래서는 부드러운 마리아노플 풍으로 말하는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가랑돌 평원 출신 특유의 사납고 딱딱한 말투로 바뀌어 있었다.
기만당했다. 농락당한 기분이다. 스스로 이유가 무엇이든 그가 원망스럽고 너무도 얄미웠다. 무조건적으로.


32쪽

저주스러웠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는 눈을 피하는군. 차라리 계속 쳐다봐.
그 맑은 청록색 눈동자는 그렇게 보기 싫지 않으니"
벨라지오 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조심스럽게 그에게 장미를 내밀었다.
그가 손목을 낚아챌 때 볼품없게도 한 송이가 꺾였다.
처량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 마치 자신 같다고 생각했다.


33쪽

그는 꽃에는 눈길조차 한 번 주지 않고 다시금 손목을 낚아챘다. 큰 손아귀에 모든 것이 잡히는 기분이었다.
벨라지오 부인의 분홍빛 석류 같은 입술이 떨렸다. 맥박은 달리는 말처럼 빨라졌다.
다가오는 그의 얼굴은 흉포한 달빛과 같았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52쪽

저택 안은 어두웠다. 바닥에 놓인 촛대만이 은은하게 빛났다. 촛대는 드문드문 이어져 있었다. 벨라지오 부인은 촛대의 불빛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촛대의 끝에 이르렀을 때, 이 저택에 아무도 없으며 자신이 너무 깊게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다시 나가려 할 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빛이 비추었다.


53쪽

"호라 신의 축일이라 하인을 모두 내보냈소."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벨라지오는 놀라서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씻은 듯 허리에 수건만 걸친 그가, 불빛 켜진 욕실 앞에서 벨라지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에서 흐른 물 한 방울이, 잔 근육이 새겨진 등 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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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자 : 박버섯 @오키드나 | 50레벨 | 마법 근위관 | 하리하란 (2013-02-26)
우수편집자 : 세현그리스도 @누이 | 54레벨 | 첩자 | 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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