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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정기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양을 업데이트 하는 소설입니다. 퇴고도 대충 하고 올리는 경우가 많기에, 비문이나 오타 등에 대해선 감수를 하고 읽어주셔야 합니다. 퇴고가 완벽히 끝난 버전은 팬아트 게시판에 게시됩니다.
  • 이 소설은 RP TEAM [바람 발자국] 멤버들의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를 차용한 소설입니다. 아키에이지 연대기 원본에 없는 인물, 단체,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천개의 눈]은 2천년 전, 최초의 원정대가 매의 집에 거처를 두고 있을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원정대가 등장하거나 관련 사건이 언급되진 않습니다.


- 천개의 눈 - 02


소녀가 다녀간 이후, 쉬프렌 사서는 도서관 업무가 끝나는 시간까지 한 순간도 쉴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원래부터 바쁘기로 유명한 서고고, 그 중에서도 제일 힘들다는 대여 업무였다. 소녀가 앗아간 몇시간은 그녀에게 있어선 그렇게 어마어마한 시간이었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사람들과 그들이 내미는 책들에 그녀는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지금이 하루 해가 짧은 기간이라는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제 6서고의 조명 시설은 조악하기로 유명해서, 해가 질 무렵이면 항상 모든 업무를 마무리짓고 대출을 끝냈다. 어떤 괴악한 건축가가 설계했는진 모르겠지만 6서고의 천장과 벽은 대부분이 뻥 뚫린 채 반투명한 막으로 덮여있었다. 햇살이 비출땐 내부 조명이 따로 필요없을 정도로 밝았고, 밖에서 바라볼 땐 투명한 막에 태양빛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이 나니 도서관이 그렇게 예뻐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이 투명한 막이란게 사실은 보기에만 좋은 허울에 불과했다. 도서관 표면의 많은 부분을 마법막으로 뒤덮다보니 마력 낭비가 심했고, 밤에는 주변 거주민들의 항의로 인해 제대로 된 조명을 사용할 수 없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막진 않지만, 내부에서 나가는 빛도 막아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햇살이 강한 날에 서고 내부는 찜통으로 변하기 일수였고, 추운 날엔 보온 기능이 없는 마법막이 내부의 열을 전부 밖으로 배출해버렸다. 탁상 행정, 보여주기식 공사의 폐혜였다.

혹자는 말한다. 마법막이니까, 마법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거냐고. 햇살도 적절히 조절하고, 빛도 새어나가지 않게 하고, 온도 조절 기능도 생각해 볼 수 없는거냐고 말한다. 하지만 아까 이야기했듯, 결국은 예산 문제였다. 그렇게까지 하기엔 너무나 많은 유지비가 드는 덕분에 그 발상의 실현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고보니 그 건축가, 에아나드 내에선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했었다.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미친 기획이 가능할리 없으니까.

어찌됐던 쉬프렌 사서는 6서고에서 일하는 사실 자체는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다른 사서들은 조악한 6서고의 시설에 대해서 하루 종일 험담을 늘어놓았지만, 쉬프렌 사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지식이란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공평하고, 공정하고, 자유롭게. 그것이 그녀가 가진 지식의 정의였고, 도서관은 그런 그녀의 정의를 실현해주는 일종의 지상 낙원 같은 곳이었다. 투명하게 반짝히는 6서고의 모습은 그런 그녀의 이상에 걸맞았다. 누구나 볼 수 있고, 들어올 수 있고, 깨끗하고 투명해야하는 도서관의 이상에 걸맞는 걸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남들이 꺼리는 6서고 사서를 자신있게 자원했고, 즐겁게 해내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진 말이다.

해가 짧은 기간이었기에, 도서관의 대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느새 해가 뉘엇뉘엇 지기 시작하고, 바쁘기 그지없던 도서관 업무가 끝나가기 시작했다. 도서 반납 창구 위에 너저분하게 어질러져 있는 책들을 정리하며 쉬프렌 사서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오전 중에 왔던 소녀의 얼굴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녀가 귀찮거나, 싫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이건 순전히 그녀의 미학에 대한 문제였다. 그녀의 사상 속 도서관은 이렇지 않았다. 이래서는 안됐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하는데. 바깥 세상의 입김은 도서관 안쪽까지 스며들어와 모두에게 주어진 지식 열람의 권리를 박탈해버렸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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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눈 - 01] - 보러가기
[천개의 눈 - 02] - 보러가기
[천개의 눈 - 03] - 보러가기
[아니르의 무대] -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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